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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23)

곽제연 기자  |  201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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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NEWSIS]


제16장 환경보호 운동 배후의 공산주의 주모자(상)


목차


들어가는 말


1. 환경보호주의의 공산 근원

   1) 환경보호주의 발전 3단계

   2) 마르크스주의와 일맥상통하는 환경보호주의

   3) 생태마르크스주의

   4) 생태사회주의

   5) 녹색 정치: 사실상 적색

   6) 생태테러리즘

   7) ‘그린피스’의 이면


2. 기후변화 ‘공감대’의 신화

   1) 과학’합의’의 역사

      a) 비확정적인 진술을 삭제한 IPCC 보고서

      b) ‘재앙 합의’ 강화한 IPCC 보고서

   2) ‘합의’의 확립과 공고화: 과학계의 통일사상


******


들어가는 말


지구는 인류가 생존하는 환경으로서, 인류를 위해 음식물과 각종 생존 자원과 발전의 조건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인류는 수천 년간 번영해왔다.


인류는 자연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동서양 전통문화는 모두 사람과 자연의 우호적인 공생 관계를 강조한다. 한편으로는 “천지는 만물을 낳고 이로써 사람을 기른다”[1]고 했다. 즉 하늘이 만물을 창조한 목적은 사람을 양육하기 위함이다. 인류는 만물을 선량하게 이용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사람은 생활하면서 천지의 이치를 따르고 적극적으로 인류가 생존하는 자연환경을 지켜야 한다.


서구 전통문화에서는 자연환경을 창세주가 인류에게 하사해 인류가 관리하게 한 것으로 본다. 때문에 인류는 마땅히 자연환경을 아끼고 선량하게 이용해야 한다. 중국 전통문화에서는 만사만물의 균형 발전을 중시한다. 서로 해치지 말아야 한다. '중용'에서는 “만물은 서로 기르되 서로 해치지 않으며 도는 나란히 행하며 서로 어그러지지 말아야 한다(萬物並育而不相害,道並行而不相悖)”라고 했다.


중국의 선인들은 일찍이 환경 보호에 주의를 기울였다. 사료(史料)에 따르면 우임금 때 “봄 석 달에는 산림에서 나무를 하지 않아 초목의 성장을 이룬다. 여름 석 달에는 강과 못에 그물을 던지지 않아 물고기와 자라의 성장을 이룬다”[2]고 했다. 증자는 “수목을 때에 맞춰 베고 금수는 때에 맞춰 사냥한다”[3]고 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물건을 취할 때 절제하고 아끼며 생태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근현대 산업혁명 이후 공업 오염으로 자연생태를 파괴하자 사람들은 환경 문제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각종 관련 법과 보호 조치를 실행한 후 오염은 효과적으로 다스려졌고 환경도 크게 개선됐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환경의식도 크게 강화됐고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모두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여기에서 몇 가지 개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환경 보호, 환경 보호 운동과 환경보호주의다. 환경 보호란 말 그대로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후 인류는 환경을 보호해왔다. 이런 환경 보호 활동은 그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와도 무관하다.


환경 보호 운동은 환경문제를 겨냥한 사회정치 운동이다. 그 주체는 대대적인 군중 운동을 일으키거나 언론 공세 및 복잡하고 교묘한 정치 운동을 통해 환경과 관련된 정책 및 대중의 심리와 행동 습관을 바꾼다.


환경보호주의(environmentalism)는 간단히 환경주의라고도 하는데 환경 보호 및 사람과 자연생태의 공생을 강조하는 일종의 철학 사상과 정치 이데올로기다. 환경 보호 운동과 환경보호주의의 근원은 공산주의와는 다르지만 공산사령은 대중 운동을 장악하고 조종해 사회 형세에 이용하는 데 능하다. 때문에 현대 환경보호주의가 출현한 초기부터 공산사령은 체계적으로 그것을 장악하고 이용할 계획을 배치했다.


지금 세계적으로 환경보호주의 배후의 요소는 아주 복잡하다. 그것은 감동적인 말과 사람들의 선량한 소망을 이용해 전 세계를 석권하는 정치 운동을 일으켰다. 여기에 참여하는 이들 중에는 선량하고 정의감 있고 진정으로 인류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운동의 배후 요소는 오히려 공산사령이다. 그것은 환경 보호라는 도덕을 이용해 자기 계략을 추진한다. 이 운동 중에서 환경은 고도로 정치화, 극단화되거나 심지어 종교화됐다. 전통적 도덕 기초는 오히려 망각됐고, 호도하는 선전이나 심지어 각종 강제적인 정치 수단이 주도적 요소가 됐다. 환경주의는 바야흐로 또 다른 형태의 공산주의가 됐다.


본문은 환경보호주의와 공산주의가 어떤 관계가 있고 환경보호주의가 어떻게 납치되고 변질됐으며 장차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중점적으로 토론해보고자 한다.


1. 환경보호주의의 공산 근원


공산사령은 최종적으로 인류를 파멸시키기 위해 다방면에서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 공산주의는 유럽에서 발단했지만 폭력혁명이 발생해 권력을 쥔 곳은 동방의 두 대국인 러시아와 중국이다. 공산진영과 서방사회는 냉전 중에 장기간 대치했다. 소련과 동유럽 등 공산진영이 와해된 후 공산사령은 동서방 사회에서 동시에 배치된 공산주의 요소를 발동시켜 전 세계적으로 엄밀하게 통제되는 정부를 세우고자 했다.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사령은 반드시 전 인류를 위협하는 ‘적’을 만들거나 이용해, 인류가 개인의 자유와 민족 국가의 주권을 양도하도록 협박해야 했다. 전 세계적인 환경과 생태 재앙의 위협은 그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1) 환경보호주의 발전 3단계


환경보호주의의 형성과 발전은 공산주의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구체적인 발전단계는 3가지다. 첫 번째 단계는 이론 형성기다. 이 단계는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때부터 1970년 첫 번째 지구의 날(Earth Day)까지다. 이 단계 초기에 마르크스와 그 신도들은 환경보호주의를 이론 논술의 중점으로 삼지 못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 무신론과 유물론 관점이 자연스레 환경보호주의의 주요 경향과 일치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자연(즉 환경)과 서로 대립적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 신도들은 ‘생태계(ecosystem)’라는 용어를 만들어 환경보호주의가 일부 학과 내부에서 조용히 성장하게 했다. 이 단계의 마지막 10년 즉 1960~1970년에 ‘침묵의 봄’과 ‘인구 폭탄’이란 두 권의 베스트셀러가 미국에 등장했다. 환경보호주의는 ‘환경 보호’개념을 통해 대중의 시야에 들어왔다.


두 번째 단계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은 1970년대 거행된 제1회 지구의 날 활동이다. 1972년 유엔은 스톡홀름에서 제1차 환경 회의를 개최했다. 이 단계에서 각종 조직이 신속히 생겨났고 각종 활동도 다양해졌다. 미국, 유럽에서 다양한 규모의 선전, 항의, ‘과학 연구’, 입법, 회의 등의 공세가 이어졌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1960년대 서방의 반문화 운동은 서방 내부에서 공산사령의 요소가 한차례 드러나고 열병한 것이다. 그것들은 민권운동과 평화 반전운동이라는 명의로 정치 및 사회 무대에 등장했다. 하지만 공산주의 요소는 수량이 거대하고 세력이 흉흉해 신속하게 여권운동, 동성애 합법화 운동 등 다양한 유형의 반자본주의 전쟁 속으로 퍼져나갔다.


1970년대 이후 베트남전 반대 운동이 퇴조한 후 공산주의 요소의 일부가 체제 내로 들어가 ‘체제 내 장정’을 일으켰다. 또 다른 일부는 페미니즘, 환경보호주의 속으로 들어갔다. 이것이 바로 환경보호주의 세력이 급속히 확장된 근본 원인이다. 1970년대 환경보호주의의 깃발을 내건 가장 중요한 세력은 바로 반문화 운동의 주력인 히피들이다. 사실 공산사령은 냉전이 끝난 이후를 대비해 환경보호주의의 깃발 아래 자신을 포장하고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공산주의로 불리지 않는 공산주의를 고조시키기 위해 준비했다.


세 번째 단계는 냉전이 끝나기 직전부터 시작된다. 1988년 유엔은 정부 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를 설립해 ‘기후 온난화’라는 개념으로 정치 영역에 개입하기 시작했다.[4] 1990년 소련 해체 직전 모스크바에서 국제 환경 회의를 개최한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국제적인 환경 감시 기구 설립을 제안하고 ‘환경 보호 특별구역’을 설립하는 조약에 서명하고 유엔 환경 방안을 지지하기로 했다. 또 후속 환경 회의를 브라질에서 열기로 했다.[5] 뒤이어 주지하다시피 서방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이 제안들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미국 한 유력 정치인은 ‘지구온난화 회의론자들에게’라는 공개 서신을 발표했고 ‘지구온난화’는 이 단계 환경보호주의자들(그 지도자는 얼굴만 바꾼 공산주의자들)이 인류에게 만들어준 주적이 됐다. 환경 보호를 구실로 삼아 대대적인 선전이 진행되었고 환경 입법과 환경 조약의 수량도 신속히 증가했고 규모도 커졌다. 환경보호주의는 각국 국민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민족 국가의 주권을 박탈하며 서방 자유사회를 제한적으로 공격하는 주요 도구가 됐다. 냉전이 끝난 후 소련과 동유럽의 구 공산당원들과 서방 공산주의자들 및 그 동조자들이 앞다퉈 환경 보호 운동에 뛰어들었다. 환경보호주의와 환경운동이 신속히 뜨거워졌고 목소리가 커지는 동시에 보다 선명하게 공산주의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2) 마르크스주의와 일맥상통하는 환경보호주의


동서방 정교 신앙인들이 보기에 사람은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때문에 사람의 생명 역시 지구상 다른 생명보다 더 높은 가치와 존엄을 지닌다. 같은 이치로 자연환경 역시 신이 사람에게 창조해준 것으로 사람은 자연환경을 사랑할 의무가 있다. 자연환경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하지만 무신론자들과 유물론자들이 보기에 사람의 생명은 이런 특수한 점이 없다. 엥겔스는 ‘반뒤링론’에서 “생명은 단백질의 존재 형식이다”라고 단언했다.[6] 그렇다면 사람의 생명은 단백질의 특수한 존재 형식에 불과하며 동물, 식물과 아무런 차이도 없다. 그러므로 환경 보호를 구실로 사람의 자유나 심지어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 됐다.


1862년 독일의 화학자이자 마르크스의 동료 리비히는 한 유기화학 관련 저서에서 영국 농민들이 수입한 새똥을 비료로 사용하는 것을 비판했다. 영국 농업은 새똥이라는 고효율 비료에 힘입어 작물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19세기 중엽에 이르자 영국인들이 먹는 음식은 양도 충분해졌고 질도 좋아졌다. 새똥 사업은 각국 상인, 영국 농민, 영국 대중 등 여러 방면에 동시에 수익을 주었다. 그렇다면 리비히는 왜 이런 방식을 비판했을까? 그의 ‘도덕적 분노’에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새똥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자연을 파괴한다. 둘째, 상인들이 저임금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셋째, 식량이 풍부해지면 인구 증가를 야기하고 식량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데 이는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한 것이다. 넷째, 인구와 가축의 증가는 더 많은 대변과 쓰레기를 의미한다.[7]


당시 ‘자본론’ 저술에 몰두해 있던 마르크스는 리비히의 책을 자세히 읽고 나서 “자연 과학의 시각에서 현대 농업의 부정적인 면과 파괴적인 일면을 발견했다”라고 칭찬했다.[8] 리비히와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자연 자원을 사용해 부를 창조하는 그 어떤 노력도 악순환으로 보았다. 그의 결론은 “이성적인 농업과 자본주의 제도는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9]


레닌 및 볼셰비키는 러시아에서 정변을 일으킨 후 신속하게 토지법과 산림법을 반포해 토지와 산림 수자원 광산 동식물 자원을 국유화시켜 사람들이 멋대로 개발하거나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10]


브라이언 서스만은 ‘생태 폭정’이라는 책에서 마르크스 레닌의 사유 방식이 오늘날 환경보호주의자들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즉 누구도 자연 자원 중에서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인데 “숲, 고래, 달팽이 또는 기후를 살리는 것을 막론하고 모든 이론의 기초는 뿌리 깊은 한 가지 신앙에 기초한다. 즉 이렇게 이익을 얻는 방식은 부도덕한 것으로 만약 빨리 저지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지구를 파멸시킬 수 있다”라는 것이다.[11]


전 지구적인 이 환경 운동에는 수많은 사상가, 정치인, 과학자, 사회 활동가, 언론인 등이 관련돼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일일이 모든 사상과 행동을 거론할 여유는 없지만 홀시할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다. 그는 바로 유엔 환경계획을 설립하고 1972년 유엔 인류환경회의와 1992년 유엔환경 및 발전회의를 주최한 캐나다의 모리스 스트롱(Maurice Strong)이다. 스트롱의 아내는 유명한 친공산당 기자로 중국에서 여생을 보낸 안나 루이스 스트롱(Anna Louise Strong)이다.


모리스 스트롱은 아내의 영향을 깊이 받아 “이데올로기로는 사회주의자이며 방법론에서는 자본가”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어떤 사람은 스트롱에 대해 “두려울 정도의 권력 추구자” 혹은 “그의 관점은 가장 급진적인 환경 보호 거리 시위자와 마찬가지로 급진적이지만, 국제회의에서 경찰이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향해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는 대신 회의장 내에서 의장의 신분으로 의사봉을 휘두른다”고 보았다.[12] 스트롱이 이끈 유엔 환경 계획이 표방하는 관점은 마르크스주의와 일맥상통한다. “토지 사유권은 재산 축적의 주요한 수단으로 사회를 불공평하게 이끈다. 때문에 토지 사용권은 반드시 공유해야 한다.”[13] 모리스 스트롱은 은퇴 후 베이징에 거주하다 2015년 사망했다.


구소련 문제 및 ‘심리전’ 전문가 나탈리 레가(Natalie Grant Wraga)는 일찍이 “환경 보호는 이미 서방을 공격하는 모든 것의 주요 수단이 됐다. 환경 보호라는 구실을 이용해 선진국의 산업 기초를 파괴하려는 일련의 조치들이 시행됐다. 그것은 또 (선진국의) 생활 수준을 떨어뜨림으로써 공산주의 가치관을 끌어들여 교란할 목적을 실현한다”라고 쓴 적이 있다.[14] 사실상 환경보호주의 사상은 단순히 구 공산 진영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공산사령은 동서방에서 동시에 자유세계 내부에서도 파멸의 씨앗을 심게 배치했다.


환경보호주의의 각종 학파, 단체, 운동, 정책은 대부분 공산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한다.


3) 생태마르크스주의


19세기 말 20세기 초 최초로 생태 개념을 제시한 영국의 레이 랑케스터(Ray Lankester)와 아서 탠슬리(Arthur Tansley)는 모두 페이비어니즘(변종 마르크스주의)주의자였다. 랑케스터는 동물학자로 마르크스의 친구였다. 마르크스 말년에 랑케스터는 그의 집을 자주 방문했고 마르크스의 장례식에도 참석한 몇몇 지인 중 하나이다. 그는 일찍이 마르크스에게 편지를 써서 ‘자본론 방면에서 위대한 일’을 이해한 후 ‘큰 즐거움과 수익’을 얻었다고 했다. 탠슬리는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식물 생태학자로 생태계(ecosystem)라는 술어를 만든 인물이자 ‘영국 생태학회’ 초대 회장이었다. 탠슬리는 런던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할 당시 랑커스터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15] 


우리는 두 사람의 신상을 통해 생태학의 마르크스주의 연원을 볼 수 있다. 물론 생태학과 환경보호주의가 같은 일은 아니다. 생태학은 생물과 주변 환경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고 환경보호주의는 특히 생태 재난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생태학은 생태 재난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이론적 기초에서 환경보호주의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생태 마르크스주의(Ecological Marxism)가 바로 생태학에서 생겨난 것이다.


생태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의 경제 위기 개념 외에 생태 위기 개념을 추가했고 노동자와 자본가의 모순을 확장시켜 생산과 환경의 모순을 추가했다. 이것이 소위 이중 위기 이중 모순 이론이다. 이론적 논술로 보자면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은 바로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으로, 이것을 제1모순이라고 한다. 반면 생산력과 생산 관계는 하나로서 생산 조건(생태계)과 모순이 있는데 이것을 제2모순이라 한다. 제1모순이 경제 위기를 초래한다면 제2모순은 생태 위기를 초래한다.[16]


지난 100여 년간 자본주의 실천이 증명하다시피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경제 위기로 붕괴되지 않았고 도리어 전례 없는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이에 제2위기 즉, 생태 위기는 공산주의가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됐다. 좌파 학자들은 환경 보호 운동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 기초를 발견하고 환경보호주의를 급진화하는 데 일조했다.


4) 생태 사회주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생태 사회주의란 생태학과 사회주의가 하나로 결합된 이데올로기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수박(겉은 녹색이지만 중간은 붉다)’ 또는 홍록방(Red Greens)이라고 불리는데, 가령 사회 정의처럼 사회주의의 전형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생태학에 도입해 환경 보호로 사회주의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생태 사회주의의 입장을 가장 분명히 표시한 것은 2001년 조엘 코벨(Joel Kovel)과 마이클 로위(Michael Lowy)가 발표한 ‘생태 사회주의 선언(An Ecosocialist Manifesto)’이다. 코벨은 2000년 미국 녹색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또 다른 저자 로위는 트로츠키주의자 제4인터내셔널(Trotskyist Fourth International) 멤버다. 선언에서는 자본주의가 생태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장차 반드시 생태 사회주의로 대체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보기에 생태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한 분파나 계파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 사회주의의 새로운 명칭이다.[17] 2002년 코벨은 ‘자연의 적: 자본주의의 종말인가 세계의 종말인가?’라는 신간에서 자신의 생태 사회주의 이론을 자세히 설명했다. 또 자본주의에 대해 첨예한 비판과 함께 급진적이고 새로운 방향으로 현상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18]


5) 녹색 정치: 사실상 적색


환경보호주의자들이 정치에 들어오자 녹색정치(green politics 또는 생태 정치 ecopolitics)가 생겨났다. 세계 각국에 녹색당이 설립된 것이 바로 녹색 정치의 산물이다. 지방 및 국가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정책 결정 과정에 들어가 자신들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녹색정치의 범위는 통상 환경 보호에만 완전히 국한할 수 없다. 사회정의, 페미니즘, 풀뿌리 민주주의, 반전과 평화주의 등에도 개입했다. 세계 녹색당 연합(Global Greens)은 이들 녹색당들이 만든 국제조직으로 2001년 ‘세계 녹색 헌장’을 발표했다. 마르크스주의 색채를 진하게 띠며 평등의 구호를 내걸거나 심지어 동물도 사람처럼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9]


환경보호주의는 종종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의해 주도된다. 게다가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진영이 해체된 후 수많은 구 공산당원과 공산주의 잔류 세력이 녹색당을 만들거나 기존 녹색당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이는 녹색당 중 상당수 사람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좌편향되게 했고 녹색 좌파(Green Left)라는 명사가 나오기도 했다.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소련 해체 후 다시 정계 복귀를 원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환경보호주의자로 변신해 ‘국제 녹십자(Green Cross International)’를 만들었다. 분명한 것은 고르바초프가 공산주의 요소를 자신의 환경 사업에 끌고 들어왔다는 것이며, 그 말인즉슨 세계 정부를 만들어야 환경 재난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20]


서방 각국 공산당은 직접 환경 보호 운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호주 녹색금지(Green Ban) 운동 발기인 중 하나인 잭 먼데이(Jack Mundey)는 본래 호주 공산당원이었고 그의 아내는 호주 공산당 전국의장이었다.[21]


매년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첫 번째 지구의 날은 1970년 4월 22일(수요일)이었는데 바로 레닌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좌파가 환경 보호 운동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은 이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6) 생태테러리즘


환경보호주의는 좌파의 영향을 받아 처음부터 비교적 과격했다. 여기에는 다양한 분파들이 있는데 심층 생태학(Deep Ecology), 생태 페미니즘, 사회 생태학, 생태 지역주의(Bioregionalism)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과격하며 비교적 널리 알려진 조직이 바로 ‘어스 퍼스트(Earth First)’와 ‘지구해방전선(Earth Liberation Front)’ 등 단체다. 이들은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환경 파괴 행위를 저지하기(가령 폭탄을 설치하거나 불을 지르는 등) 때문에 생태 테러리즘(Eco-Terrorism)이라고도 불린다.


‘어스 퍼스트’는 1979년 시작됐다. 이들의 구호는 “대지를 지키는 데 타협은 없다(No Compromise in Defense of Mother Earth!)”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벌목이나 댐 건설 등을 겨냥해 직접적인 행동에 나선다. 한 가지 유명한 방법은 ‘나무 농성’이다. 즉 나무 밑에 앉거나 혹은 나무 위에 올라가 농성하며 벌목을 저지하는 것이다. 이들의 이런 방식은 많은 신입 회원의 관심을 끌었다. 그중에는 좌파, 무정부주의자, 반주류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인사들이 포함된다. 1992년 이중에서도 급진적인 구성원들이 ‘지구해방전선’이라는 분파를 만들었는데 방화를 수단으로 한다. 2000년 말 미국 롱아일랜드의 9동짜리 호화 빌라가 밤사이 잿더미로 변했다. 빌라가 천연의 복숭아밭에 건립되었기 때문이다. 지구해방전선이라는 이 악명높은 생태 테러조직은 마치 평소같이 방화 후에도 당당하게 남아서 “당신들이 건설하면 우리는 불태운다(If you build it, we’ll burn it!)”는 표어를 남겨놓았다. 2005년 미국 FBI는 ‘지구해방전선’이 미국 내에서 최대의 테러 위협으로 1200여 건의 범죄를 저질러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입혔다고 발표했다.[22]


이들의 행동은 이미 일반적인 정치적 추구나 사회적인 관점의 차이를 넘어섰다. 공산사령은 증오의 요소를 이용해 환경보호주의자들을 테러리스트와 마찬가지인 환경 보호 테러리스트로 변모시켰다.


7) ‘그린피스’의 이면


1971년 설립된 ‘그린피스’는 세계 최대 환경 보호조직이다. 40여 개국에 사무실이 있고 연수입이 3억 5000만 달러가 넘는다. 그린피스는 또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환경단체 중 하나다.


이 단체의 공동 설립자이며 1977년 그린피스와 결별한 폴 왓슨에 따르면 “데이비드 맥타가트(David McTaggart 그린피스 전 회장)의 성공 비결이 바로 그린피스 조직의 성공 비결이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상관하지 않고 사람들이 진실하다고 인정하는 것만 중시하며 매체에서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그린피스가 신화가 된 것은 신화를 만든 기구가 되었기 때문이다.”[23]


과거 그린피스 조직의 공동 발기인 중 한 명이었던 패트릭 무어는 일찍이 환경 보호 사업에 모든 것을 투입하여 아주 열심이었다. 나중에 그린피스를 떠나게 된 이유는 이 조직이 정치적으로 급격히 좌경화되어 극단주의와 정치 어젠다를 가진 조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광범위한 화학 제품에 적의를 품는다거나 과학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기초한 정책이었다.[25]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조직 내부의 급진적인 환경 보호조직의 책략을 포함한다. 이 점에서 급진 환경보호주의는 공산주의와 아주 일치한다. 2007년 6명의 그린피스 회원이 영국의 한 화력발전소에 침입해 파괴하고 약 3만 파운드의 재산 피해를 일으켜 기소됐다. 그들은 발전소를 없애려 했다고 시인했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가 보다 큰 손실(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재난)을 막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결국 법원에서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앞서 그린피스는 이미 유사한 수많은 사건에서 승소한 기록이 있다. 이 중에는 핵발전소나 자동차 회사 파괴는 물론이고 제트기 공장 등도 포함된다.[26] 많은 지식인들이 염려하는 것은 이런 논리대로라면 합법과 불법 사이에 어떤 경계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전통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유토피아라는 사악한 논설로 살인 방화와 재산 약탈을 합법화시켰다면 그린피스는 환경 보호라는 외투를 걸친 공산주의 변종으로 환경재난을 부각해 인류의 가치관을 변이시키고 있다. 위 사례 중에서 그린피스 회원은 배심원들에게 자신들의 범죄 동기에 정당성이 있음을 성공적으로 설득했다. 이는 바로 수많은 사람이 미혹돼 사이비 사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신이 정해준 보편적인 가치를 포기하게 하는 것은 바로 악마가 사람을 해치는 수단이다.


2. 기후변화 ‘공감대’의 신화


기후변화는 현재 사회적으로 가장 뜨거운 화제다. 이 화제를 둘러싸고 대중의 쟁론 역시 이상과열되었고 언론이나 대중 또는 정치권을 막론하고 모두 각종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다. 이 문제에서 가장 흔한 주장은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를 조성하고 장차 위험한 기후 재앙을 일으킨다”라는 것이다. 동시에 이 결론을 과학적인 공감대(scientific consensus)를 보았다거나 과학의 정론(settled sience)임을 강조한다. 일부 환경주의자들의 눈에 이 결론에 반대하는 것은 반과학일뿐 아니라 반인류적이다. 앞서 발전소를 파괴했던 ‘그린피스’ 멤버가 무죄 판결을 받은 이유도 바로 이런 ‘공감대’를 부추기는 저명한 전문가들이 제공한 증언 때문이다. 이들은 발전소에서 매일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이 장차 400여 종의 멸종을 초래한다는 등의 주장을 편다.


그렇다면 과학계에서 정말 공감대(의견일치)를 형성했는가? 미국 과학원 회원이자 MIT 교수인 리차드 린드젠(Richard Lindzen)은 발표한 문장에서 “기후 과학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27] 전 미국 에너지부 과학 차관 스티븐 쿠닌(Steven Koonin)도 발표된 문장에서 “기후 과학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우리는 좋은 기후 정책을 제정하기에 충분한 지식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라고 했다.[28] 또 다른 문장에서 그는 독자들을 일깨우며 “대중들은 기본적으로 기후 과학 내부의 격렬한 논쟁에 대해 전혀 모른다. 최근 한차례 국립실험실 회의에서 나는 100명이 넘는 정부 및 대학 연구자들의 상호 논쟁을 관찰하며 기후에 대한 인류의 영향인지 아니면 자연적인 기후변화인지 구별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들의 논쟁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기후에 대한 우리의 근본 인식 면에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면 의외로 지난 20년간 해수면 상승이 분명 완화됐다.”[29]


전체적으로 볼 때 지표면의 온도는 1880년대 이후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인류는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를 첨가해 지구 온도를 올리고 있는데 이런 기본 문제에서는 과학자들이 아무 이론이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이자 전문가들이 논쟁하는 초점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즉 온난화는 인류 활동이 주도적인 원인인가 아니면 자연적인 원인이 조성한 것인가? 21세기 말에 지구는 과연 얼마나 따뜻하게 변해 있을까? 인류에게는 미래 기후변화를 예측할 능력이 있을까? 온난화가 ‘재앙’을 초래할 것인가?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과학계가 마치 기후변화 문제에서 모종의 ‘의견 일치’나 모종의 ‘확정된 결론’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의견 일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언론이나 과학학술지에 게재될 기회가 아주 드물었기 때문이다.


전 미국 항공우주국(NASA) 국장이자 물리학자인 마이클 그리핀(Michael Griffin) 박사는 2007년 미국 공영라디오방송(NPR)과 인터뷰에서 “나는 지구가 온난화 추세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인지 합리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은 긍정할 수 없다. 그것을 하나의 문제로 가정한다면 이는 오늘날 지구의 기후 상태가 가장 좋은 기후라고 가정하는 것과 같다. 즉 우리가 가질 수 있거나 과거에 가진 적이 있는 가장 좋은 기후이기에 그것이 변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30]


그는 진일보로 “우선 나는 사람이 기후가 변하지 않게 할 능력이 있다고는 보지 않으며 수백만 년의 역사는 기후가 끊임없이 변해왔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나는 우리 지금의 특정한 현재 기후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가장 좋은 기후라고 그 누가 어디서 언제 결정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는지 묻고 싶다. 이는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상당히 오만한 입장이라고 본다.”[31]


그는 단지 과학이 마땅히 겸손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표시했음에도 즉시 언론과 일부 기후과학자들의 강력한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그의 주장이 ‘오만’한 태도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날 엄청난 압력 때문에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32]


이 일이 있은 지 몇 달 후 그는 또 다른 인터뷰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기후변화 토론 중에서 이미 너무 많이 나갔다고 본다. 또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 주제를 토론하는 것은 부적합하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거의 종교적인 지위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과학적 합의에 대한 그의 견해는 기후 문제에서 소위 ‘합의’가 사실은 과학적인 과정이 아님을 드러낸다. 그는 과학의 발전은 논쟁의 결과라고 본다. “당신이 한 가지 이론을 만들어 자료를 발표하고 개념을 완벽하게 만든 후에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반박하거나 반박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과학적 합의의 발전 방식이다.”[33] 분명한 것은 온갖 수단으로 과학적 논쟁을 저지하는 그 자체가 바로 과학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영국 왕립 기상학회 회원이자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소장을 역임한 레나르트 벵크송(Lennart Bengsston) 교수는 지구온난화 정책포럼(GWPF, 기후 온난화에 도전하는 싱크탱크의 일종) 학술자문위원회에 가입한 후 전문 영역에서 탁월한 성망 때문에 전 세계 동료들로부터 막대한 관심과 압력을 받았다. 2주 후 결국 압력에 굴복해 사퇴했다. 그는 사직 서신에서 “거대한 단체 압력”이 “자신의 건강과 안전에 우려”를 주고 “동료들이 더 이상 나를 지지하지 않으며 공동작업을 하던 동료들이 탈퇴하는 등”의 압력을 받았다고 했다. “원래 아주 화목했던 기상학과 같은 분야에서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변했다는 것이다.”[34] 그의 관찰은 정확했는데 “근년에 발생한 변화”는 악마가 이 학과를 납치하고 조종한 결과이다.


사실상 기후변화 문제에서 소위 과학적 합의는 이미 기후변화 이론에서 일종의 교조가 됐다. 이것은 또한 현재 환경주의의 가장 중요한 신조이자 그 어떤 도전도 용납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신조를 받아들이는 과학자, 언론, 환경주의 활동가들은 공동으로 재난과 공포를 퍼뜨린다. 이 교조는 환경주의 배후의 악마가 인류를 위협하고 조종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 교조가 생겨나고 공고화된 과정을 둘러싸고 우리는 또 공산악마의 예리한 발톱과 ‘기만’과 ‘투쟁’의 유전자를 끊임없이 볼 수 있다.  


1) 과학 ’합의’의 역사


1988년 유엔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을 설립했다. 이 조직의 중요한 사명은 약 5년 간격으로 기존의 과학 연구와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권위 있는 성명들을 평가하고 기후 문제에서 과학적 합의를 세워 정책 결정을 위한 과학적 근거로 삼는 것이다.[35] 이렇게 발표되는 보고서에는 대표 저자, 참여 저자 및 심사 전문가 수천 명의 명단이 나열된다. 이때부터 보고서의 결론은 종종 수천 명의 전 세계 정상급 과학자들의 합의로 불린다.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일명 기후협약)은 성명을 통해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를 기후 체계가 위험에 처할 인위적 교란을 방지할 수준(주의할 것은 성명은 우선적으로 암암리에 기후변화는 주로 인류에 의해 유발되었고 위험을 조성할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기후에 대한 인류 활동의 영향 및 기후변화가 환경 및 사회 경제에 미치는 위험에 대해 평가하는 임무를 IPCC에 부여했다.[36] 기후협약 성명이 포함하는 전제 조건은 인류가 기후에 위험을 조성한 원흉이라는 것으로 이는 IPCC의 평가 방향을 한정하는 것이다. 그다음 만약 기후변화가 위험을 조성하지 않거나 또는 인류가 조성한 것이 아니라면 그럼 아무런 정책도 제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정책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IPCC도 존립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이런 ‘충돌’ 역시 IPCC의 관심 방향을 제한시켰다.[37]


이상의 역사를 종합하면 IPCC 합의의 건립 과정을 둘러싼 다음 사건들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a) 비확정적인 진술을 삭제한 IPCC 보고서


IPCC 제2차 기후변화 평가 보고서(1995년)가 발표되기 전날 세계적 물리학자이자 전 미국 과학원 원장, 록펠러 대학 총장을 지낸 프레더릭 사이츠(Frederick Seitz) 박사는 복사본을 한 부 받았다. 사이츠 박사는 심사위원들의 심사가 끝난 후 인쇄되기 전에 본문이 큰 폭으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류 활동의 영향이 확실하지 않다는 주장이 모두 삭제된 것이다. 사이츠 박사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발표한 문장에서 “나는 미국 과학원 원장과 미국 물리학회 회장 등 미국 과학계에서 60여 년 넘게 활동해오면서 지금까지 동료 평가 과정에서 이번보다 더 불안한 부패는 본 적이 없다”라고 했다.[38] 삭제된 문장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기후변화의 구체적인 원인이 온실가스의 증가로 귀결된다고 명확하게 표명하는 연구 증거는 아직 없다.” “지금까지 관찰된 기후변화가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인위적으로 조성된 원인 때문이라는 연구는 현재까지 없다.” “기후 시스템의 전체적인 자연 변화율의 불확정성이 떨어지기 전에는 중대한 기후변화를 검측하려는 그 어떤 주장도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다.”


비록 IPCC가 나중에 모든 변동이 관계자들의 동의를 거쳤다고 발표했지만 이런 변동은 적어도 보고서가 정치적 요소에 의해 좌우됨을 폭로한다. IPCC 평가 보고서는 또 독창적인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것은 주로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를 총결한 것이다. 현재 연구 중에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미 정해 놓은 ‘의견 일치’를 달성하기 위해, 보고서는 최종 결론에서 다른 의견을 전부 제거한 것이다.


2000년 4월 IPCC 제3차 평가 보고서(TAR) 초안 원문은 “인류는 지구 기후에 분별할 수 있을 영향을 끼쳤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10월 판본에는 “인류는 온실가스를 증가시켜 지난 50년간 관찰한 온난화에 현저한 영향을 끼쳤다”라고 변했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서는 더 강경한 어조로 “지난 50년간 관찰된 대부분의 온난화는 온실가스 농도의 증가로 유발되었을 가능성이 몹시 크다(90% 이상)”라고 했다. 유엔환경계획 대변인은 이렇게 바뀐 단어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있는지 질문을 받고는 “새로운 과학(발견)은 없지만 과학자들이 정책 제정자들에게 명확하고 강렬한 정보를 제출하고 싶어했다”라고 솔직히 답변했다.[39] 


간단히 말해 기본협약이 IPCC에 명확한 답안을 가진 과제를 요구했고 IPCC는 요구에 따라 ‘만족’스러운 답안을 제출한 것이다.


b) ‘재앙 합의’ 강화한 IPCC 보고서


프랑스 파스퇴르대 폴 레이터(Paul Reiter) 교수는 말라리아와 곤충 전염병 방면의 권위자다. 하지만 IPCC 보고서에 동의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IPCC 측에 법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위협한 후에야 비로소 IPCC 보고서를 지지하는 ‘2000명의 세계 정상급 과학자들’ 명단에서 빠질 수 있었다. 그는 “IPCC는 마치 모든 정상급 과학자들의 합의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40]라고 했다. 그는 2006년 4월 25일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논쟁에서 힘들게 했던 것은 이런 거짓 ‘과학’이 공공의 논단에서 영향력 있는 전문가 팀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내가 지적하는 것은 바로 IPCC다. 5년마다 이 유엔 조직이 기후변화의 각 방면에서 ‘세계 정상급 과학자들의 합의’를 발표한다. 과학자 인선 과정도 의문이지만 이런 합의 역시 정치적인 것이지 과학이 아니다”라고 말했다.[41]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줄곧 말라리아 등 곤충 매개 전염병이 기후변화에 따라 더 심해졌다고 선전해 왔다. 이 역시 IPCC의 주요 논조다. 가령 블룸버그 통신은 2007년 11월 27일 “유엔 보고서에 근거해 지구온난화가 장차 수백만 명이 말라리아와 뎅기열의 위험에 직면하게 할 것이다”[42]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레이터 교수에 따르면 기후변화와 전염병의 확산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는 말라리아가 단지 열대지역에서만 기승을 부리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말라리아 대유행은 1920년대 구소련에서도 있었고 심지어 북극에 가까운 아르한겔스크(Arkhangelsk)시에서도 무려 3만 건의 말라리아가 발생해 1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43] 2011년 네이처 보도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온도가 상승할 때 모기의 말라리아 전염성이 오히려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44] 이는 레이터 교수의 입장을 입증하는 것이다.


IPCC를 탈퇴한 또 한 명의 과학자에 따르면 ‘재앙 합의’는 조직 운영 문화의 일부를 반영한다. 미국 해양 대기국의 허리케인 전문가 크리스토퍼 랜드 시(Christopher Landsea)는 IPCC 제4차 평가 보고서를 작성한 주요 멤버 중 하나다. 하지만 2005년 1월 그는 IPCC를 탈퇴했다. 그는 공개 서신에서 “나는 이 일련의 과정에서 이미 정해진 의제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또 불건전한 과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IPCC의 해당 보고서에서 과학적 입장을 견지하고 의도적으로 부풀리지 않게 하도록 간청했다.[45]


오클라호마 대학의 지구과학 전문가 데이빗 데밍(David Deming)은 ‘사이언스’에 빙하 코어를 이용해 150년간 북미의 역사적 온도 자료를 발표했으며, ‘합의’ 이론 제창자들과 동료로 간주됐다. 한 번은 IPCC 대표저자 중 한 사람이 이메일을 보내 “우리는 당연히 (역사기록 곡선 중에서) 중세 온난화를 뺐으면 합니다”[46]라고 했다. 중세 온난화란 950년부터 1150년 북대서양 지역의 기후가 온난했던 시기로 기후변화 역사 곡선에서 이 부분을 없애면 오늘날의 온난화가 ‘전대미문’의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아주 많다. 미국 경쟁기업 연구소의 크리스토퍼 호너(Christopher C. Horner) 연구원은 자신의 저서 ‘뜨거운 거짓말(Red Hot Lies)’에서 원래 IPCC에 속했다가 결론과 정치적인 운영에 반대한 많은 전문가들을 열거하고 있다.[47] 그들은 IPCC의 소위 ‘합의’에 대해 근거 있는 질의와 도전을 던졌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학술과 언론 환경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2) ‘합의’의 확립과 공고화: 과학계의 통일사상


기후변화 문제에서 소위 ‘합의’의 확립과 공고화는 악마가 환경보호주의를 이용해 인류를 조종하고 재난 의식을 확대시켜 인류의 가치관을 변이시키고 최종적으로 슈퍼 정부를 세워 공산주의의 주요한 발걸음을 추진하기 위해서이다. 이 한걸음은 주로 과학계에서 완성되었지만 동시에 언론, 정부 및 학술기관의 공동 노력에 의지했다.


제아무리 학술계에서 성망이 높은 과학자라 할지라도 일단 소위 ‘합의’ 교조에 대해 의심하면 곧장 통제에 따르라는 동료 및 학술기관의 거대한 압력을 받는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유사한 경험이 있는데 다만 압력을 받는 사람이 의심하는 대상이 공산당의 교조라는 점만 차이가 난다.


영국의 저명한 환경운동가 데이비드 벨라미(David Bellamy)는 왕립 야생동물 보호재단 이사장이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지구온난화란 ‘합의’에 대해 불신을 표시한 이후, 야생동물기금은 불만을 표시했다.[48] 얼마 후 그는 더 이상 재단 이사장을 맡을 수 없었고 전에 그를 존경하던 환경주의자들이 태도를 돌변해 그의 지력에 문제가 있다거나 혹은 석유회사의 돈을 받았다고 했다.[49]


네덜란드 왕실 기상학회 회장 헨드릭 테네케스(Henk Tennekes)는 기후변화 문제에서 교조를 지지하지 않아 해고됐다. 유사한 사례로는 세계기상기구 직원이었던 악셀 빈 닐센(Aksel Winn-Nielsen)은 ‘산업계의 도구’라는 모함을 받았다. 이탈리아의 알폰소 수테라(Alfonso Sutera) 연구원과 안토니오 스페란자(Antonio Speranza) 연구원은 기후온난화 이론에 의문을 표시한 후 더는 연구비를 받을 수 없었다.[50]


미국 기후학회 전 회장이자 버지니아 대학 기후학자 패트릭 마이클스(Patrick J. Michaels)는 자신의 저서 ‘기후의 극단: 그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지구온난화 과학’에서 환경보호주의자들이 각종 정치적인 수단을 동원해 이의 제기를 억누른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기후가 재앙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는데 이런 낙관적인 입장은 ‘합의’ 교조와 일치하지 않는다. 어느 날 그는 주지사로부터 주 기후학자의 신분으로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해 발언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결국 사직해야 했다.


또 다른 기후학자인 오리건 주립대학의 조지 테일러도 비슷한 문제로 결국 사직했다. 델라웨어 대학 기후연구센터 센터장이었던 데이비드 레거트(David Legates) 박사도 마찬가지로 주지사로부터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해 주 기후학자의 신분으로 발언하지 말라는 통지를 받았다. 워싱턴 주의 기후학자 비서였던 마크 올브라이트(Mark Albright) 역시 상사의 경고를 무릅쓰고 신문기자와 주 거주민들에게 이메일로 캐스케이드산 강설 기록 일부를 선별(기후온난화를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부분)하지 않고 전체 기록을 발송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51] 여기서 주목할 점은 논쟁의 초점이 기후학자의 전문 영역인 기후과학이지 주의 정책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공산국가에서는 정치 깡패가 과학에 간섭하는 상황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서방 국가에서 마귀가 이용한 환경보호주의 정치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학문의 자유에 대해 간섭하고 있다.


‘합의’ 교조를 의심하는 모든 학술 연구가 학술지에 게재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이런 현상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마이클스 교수는 1990년 영국 채널4에서 제작한 ‘온실 음모’라는 영화에서 언급했다. “한 개인의 관점이 만약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곧 번거롭게 될 수 있다. 그의 논문은 반드시 다른 논문보다 더 높은 심사 표준을 통과해야만 한다. 언급하고 싶은 것은 1990년 IPCC 보고서는 당시 인식으로 지구온난화의 폭이 기후의 자연 변화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이클스의 관점이 비록 다른 많은 사람과 다를지라도 그가 아주 ‘이단’일 수는 없다. 하지만 ‘합의’를 세우는 목표가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악마의 지휘를 받은 여러 방면에서 목표를 향해 노력했다.


정부의 자금 쏠림도 ‘합의’ 형성과 공고화에 큰 작용을 했다. 인류가 지구온난화와 그것이 초래할 재앙을 일으켰다는 가설은 기후변화 연구에서 정책 결정자들에게 각종 자문 지위를 주었다. 때문에 이 가설을 지지하는 연구는 자연스레 대량의 연구 자금을 끌어들이고 상응하는 대량의 학술 논문도 발표할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다른 가능성을 향한 과학자들의 탐구와 연구를 방해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허리케인 연구 선구자 빌 그레이(Bill Gray) 교수는 기후 이론의 ‘합의’ 교조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연구기금 신청이 잇달아 거부됐다. 이유는 그가 제기한 연구가 현재 중점사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52]


2008년 3월 기후 문제 ‘합의’ 교조에 회의적인 과학자들이 뉴욕에서 학술 교류회를 개최했다. 과학자들은 학술 잡지에 발표된 자신들의 연구 성과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각종 장애에 부딪혔다고 했다. 전 미국 기상학회 회장이자 기상전문가인 조셉 달레오(Joseph D’Aleo)는 일부 동료들이 해고가 두려워 이 회의에 참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기후학과 기상학 및 관련 과학에서 침묵하는 대다수 과학자들이 소위 말하는 ‘합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53]고 봤다.


전 조지아공대 지구 및 대기과학 대학원 원장인 주디스 커리(Judith Curry) 교수는 2015년 하원 청문회에서 NASA에 고용된 한 과학자가 자신을 고소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미국 항공우주국과 관련된 과학자들의 작은 회의에 참가한 적이 있다. 당시 한 고위 인사가 자신의 NASA 책임자가 ‘우리는 현재 지구온난화 논조와 상반되는 논문을 발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어쩔 수 없이 반박하는 과정에서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킬까 봐 골치가 아프다는 것이다’고 했다.”[54] 커리 교수는 증언에서 “기후 과학자들이 기후 논쟁 중에서 불확실하거나 모종의 회의를 표시하면 곧 ‘부인하는 자’나 ‘의혹의 상인(merchant of doubt, 화석연료 업계의 자금 지원을 받았음을 암시)’으로 동기를 의심받거나 혹은 화석연료 업계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는다. 나 자신은 공개적으로 IPCC가 어떻게 불확실한 문제를 대하는지 토론했다가, 동료를 배반한 ‘기후 이교도’라는 낙인이 찍혔다. 기후 과학자들이 직면한 거대한 압력은 그들이 소위 ‘합의’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한다. 이런 압력은 단지 정치인뿐 아니라 연방 후원기관이나 대학 및 전문가 단체에게서도 오고 심지어 녹색(환경보호주의)운동가나 선도적인 과학자들로부터도 온다. 금전, 명예, 권력의 동력이 이런 합의를 대대적으로 강화한다.”[55]


커리 교수는 미국 기상학회 회원으로 일찍이 미국국립학술원(National Research Council) 기후연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그녀는 비록 학술적 성과가 탁월했음에도 지속적인 압력에 견디다 못해 정년을 남겨 두고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그는 최근 IPCC의 ‘합의’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각종 더러운 낙인이 찍혔다. 예를 들면 ‘기후 거짓 정보 유포자’, ‘반과학, 부인하는 자’ 등이다. 이러한 것은 언론뿐 아니라 과학자나 하원의원도 있다. 모 의원은 심지어 조지아 공대 총장에게 따로 서신을 보내 커리의 동기를 의심하기도 했다.[56] 그가 명예퇴직을 선택한 또 다른 원인은 학생들 및 박사후 과정 연구원들에게 ‘기후과학 영역의 광풍’ 속에서 어떻게 탐구해야 하는지 알려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57] 콜로라도 대학의 로저 피엘크 주니어(Roger Pielke Jr.) 교수는 전에 커리 교수와 기후변화 문제 관련 협동연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원래 이 대학 환경 협력연구센터(CIRES)에 소속이었다. 비록 IPCC 합의의 대부분 결론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데이터 상으로 보면 허리케인 등 극단적 기후사건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지적을 했다는 이유로 유사한 압력을 받았다. 그는 결국 콜로라도 대학 스포츠 관리센터(CIRES)로 전출됐다.[58]


피엘크 교수의 지적과 커리의 사례가 보여주다시피 “종신 교수직을 갖고 있어도 학문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없다.”[59]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원이자 NASA의 뛰어난 대기과학자였던 조안 심슨(Joanne Simpson)은 퇴직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합의’ 교조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졌다고 발표했다.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조직에도 속해 있지 않고 그 어떤 자금 지원도 받지 않기에 이제는 아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과학자로서, 나는 회의적인 태도이다.”[60] (계속) / 출처: 대기원 <9평>편집부


(<9평>편집부 신서 <악마가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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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중서(董仲舒), 『춘추번로‧복제상(春秋繁露‧服制像)』, 제14

https://ctext.org/chun-qiu-fan-lu/fu-zhi-xiang/zh.


[2] 『일주서·대취해(逸周書‧大聚解)』

https://ctext.org/lost-book-of-zhou/da-ju/zh.


[3] 『예기·제의(禮記‧祭儀)』

https://ctext.org/text.pl?node=61379&if=gb&show=parallel.


[4] Rupert Darwall, The Age of Global Warming: A History (London: Quartet Books Limited, 2013), Chapter 1.


[5]  Wes Vernon, “The Marxist Roots of the Global Warming Scare,”  Renew America, June 16, 2008, https://web.archive.org/web/20100724052619/http://www.renewamerica.com:80/columns/vernon/080616.


[6] 엥겔스, 『반뒤링론』, 제1편 8장

https://www.marxists.org/chinese/marx-engels/20/003.htm#8.


[7] Brian Sussman, Eco-Tyranny: How the Left’s Green Agenda Will Dismantle America (Washington D.C.: WND Books, 2012), 8-9.


[8] Quoted in Brian Sussman, Eco-Tyranny: How the Left’s Green Agenda Will Dismantle America, 10.


[9] Quoted in Brian Sussman, Eco-Tyranny: How the Left’s Green Agenda Will Dismantle America, 11.


[10] Brian Sussman, Eco-Tyranny: How the Left’s Green Agenda Will Dismantle America, 14-15.


[11] Brian Sussman, Eco-Tyranny: How the Left’s Green Agenda Will Dismantle America, 11.


[12] Wes Vernon, “The Marxist Roots of the Global Warming Scare,”  Renew America, June 16, 2008, https://web.archive.org/web/20100724052619/http://www.renewamerica.com:80/columns/vernon/080616.


[13] Quoted in Brian Sussman, Eco-Tyranny: How the Left’s Green Agenda Will Dismantle America, 35.


[14] Wes Vernon, “The Marxist Roots of the Global Warming Scare,”  Renew America, June 16, 2008, https://web.archive.org/web/20100724052619/http://www.renewamerica.com:80/columns/vernon/080616.


[15] John Bellamy Foster, “Marx’s Ecology in Historical Perspective,”  International Socialism Journal 96, Winter 2002, http://pubs.socialistreviewindex.org.uk/isj96/foster.htm.


[16] James O’Connor, “Capitalism, Nature, Socialism: A Theoretical Introduction,”  Capitalism, Nature, Socialism 1, no. 1 (1988): 11-38, http://www.vedegylet.hu/okopolitika/O%27Connor%20-%20Capitalism,%20Nature,%20Socialim.pdf.


[17] Joel Kovel and Michael Löwy, “The First Ecosocialist Manifesto,” September 2001,http://green.left.sweb.cz/frame/Manifesto.html.


[18] Joel Kovel, The Enemy of Nature: The End of Capitalism or the End of the World? (London: Zed Books, 2002).


[19] Kevin Andrews, “The Ideological Drive behind the Greens,” ABC News, November 11, 2010,  http://www.abc.net.au/news/2010-11-12/the_ideological_drive_behind_the_greens/41010.


[20] Mikhail Gorbachev, “We Have a Real Emergency,” The New York Times, December 9, 2009, http://www.nytimes.com/2009/12/10/opinion/10iht-edgorbachev.html; Mikhail Gorbachev, “What Role for the G-20?” The New York Times, April 27, 2009, http://www.nytimes.com/2009/04/28/opinion/28iht-edgorbachev.html.


[21] “Jack Mundey,” Sydney’s Aldermen, http://www.sydneyaldermen.com.au/alderman/jack-mundey/.


[22] Noel Moand, “A Spark That Ignited a Flame: The Evolution of the Earth Liberation Front,” in Igniting a Revolution: Voices in Defense of the Earth, eds. Steven Best and Anthony J Nocella, II  (Oakland, CA: AK Press, 2006), 47.


[23] Leslie Spencer with Jan Bollwerk and Richard C. Morais, “The Not So Peaceful World of Greenpeace,” Forbes, November 1991,  https://www.heartland.org/_template-assets/documents/publications/the_not_so_peaceful_world_of_greenpeace.pdf.


[24] Ted Thornhill, “Humans Are NOT to Blame for Global Warming, Says Greenpeace Co-founder, as He Insists There Is ‘No Scientific Proof’ Climate Change Is Manmade,” Daily Mail, February 27, 2014, http://www.dailymail.co.uk/sciencetech/article-2569215/Humans-not-blame-global-warming-says-Greenpeace-founder-Patrick-Moore.html#ixzz2vgo2btWJ.


[25] Patrick Moore, “Greenpeace Has Evolved into an Organization of Extremism and Politically Motivated Agendas,” The Wall Street Journal, April 22, 2008, https://www.wsj.com/articles/SB120882720657033391.


[26] John Vidal, “Not Guilty: the Greenpeace Activists Who Used Climate Change as a Legal Defence,” The Guardian, Sept 11, 2008,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08/sep/11/activists.kingsnorthclimatecamp.


[27] Richard Lindzen, “The Climate Science Isn’t Settled,” The Wall Street Journal, November 30, 2009, https://www.wsj.com/articles/SB10001424052748703939404574567423917025400.


[28] Steven Koonin, “Climate Science Is Not Settled,” The Wall Street Journal, September 19, 2014, https://www.wsj.com/articles/climate-science-is-not-settled-1411143565.


[29] Steven Koonin, “A ‘Red Team’ Exercise Would Strengthen Climate Science,” The Wall Street Journal, April 20, 2017, https://www.wsj.com/articles/a-red-team-exercise-would-strengthen-climate-science-1492728579.


[30] “NASA Administrator Not Sure Global Warming A Problem,” Space Daily, May 30, 2007, http://www.spacedaily.com/reports/NASA_Administrator_Michael_Griffin_Not_Sure_Global_Warming_A_Problem_999.html.


[31] 위와 같음.


[32] Alicia Chang, “NASA Chief Regrets Remarks on Global Warming,” NBC News, June 5, 2007, http://www.nbcnews.com/id/19058588/ns/us_news-environment/t/nasa-chief-regrets-remarks-global-warming/.


[33] Michael Griffin: “NASA at 50 Oral History Project,” NASA Johnson Space Center, September 10, 2007, https://www.jsc.nasa.gov/history/oral_histories/NASA_HQ/NAF/GriffinMD/GriffinMD_9-10-07.htm.


[34] “Lennart Bengtsson Resigns: GWPF Voices Shock and Concern at the Extent of Intolerance within the Climate Science Community,” The Global Warming Policy Foundation, May 5, 2014,  http://www.thegwpf.org/lennart-bengtsson-resigns-gwpf-voices-shock-and-concern-at-the-extent-of-intolerance-within-the-climate-science-community/.


[35] Judith Curry, “Climate Change: No Consensus on Consensus,” CAB Reviews Vol 8, No 001, 2013, 1-9.


[36] Judith A. Curry, “Statement to the Committee on Science, Space and Technology of the United States House of Representatives,” Hearing on Climate Science: Assumptions, Policy Implications and the Scientific Method, March 29, 2017, https://docs.house.gov/meetings/SY/SY00/20170329/105796/HHRG-115-SY00-Wstate-CurryJ-20170329.pdf.


[37] 위와 같음.


[38] Frederick Seitz, “Major Deception on Global Warming,” The Wall Street Journal, June 12, 1996, https://www.wsj.com/articles/SB834512411338954000.


[39] Larry Bell, “The New York Times’ Global Warming Hysteria Ignores 17 Years Of Flat Global Temperatures,” Forbes, August 21, 2013, https://www.forbes.com/sites/larrybell/2013/08/21/the-new-york-times-global-warming-hysteria-ignores-17-years-of-flat-global-temperatures/.


[40] Christopher C. Horner, Red Hot Lies: How Global Warming Alarmists Use Threats, Fraud, and Deception to Keep You Misinformed (New York: Simon and Schuster, 2008) , 319.


[41] Paul Reiter, “Malaria in the Debate on Climate Change and Mosquito-Borne Disease,” Hearing Before the Subcommittee on Global Climate Change and Impacts of the Committee on Commerce, Science, and Transportation United States Senate, April 25, 2006, https://www.commerce.senate.gov/pdf/reiter-042606.pdf.

[42] James Tylor, “Mosquitoes Ignore Global Warming Predictions,” Forbes, October 5, 2011, https://www.forbes.com/sites/jamestaylor/2011/10/05/mosquitoes-ignore-global-warming-predictions/#7ace656c1b7d.


[43]  Paul Reiter, “Malaria in the Debate on Climate Change and Mosquito-Borne Disease,” Hearing before the Subcommittee on Global Climate Change and Impacts of the Committee on Commerce, Science, and Transportation United States Senate, April 25, 2006, https://www.commerce.senate.gov/pdf/reiter-042606.pdf.


[44] Zoë Corbyn, “Global Warming Wilts Malaria,” Nature, December 21, 2011, https://www.nature.com/news/global-warming-wilts-malaria-1.9695.


[45] James Tylor, “Climate Scientist Quits IPCC, Blasts Politicized ‘Preconceived Agendas,’” The Heartland Institute, April 1, 2005, https://www.heartland.org/news-opinion/news/climate-scientist-quits-ipcc-blasts-politicized-preconceived-agendas?source=policybot.


[46] David Deming, “Statement to the U.S. Senate Committee on Environment & Public Works,” Full Committee Hearing on Climate Change and the Media, December 6, 2006, https://www.youtube.com/watch?v=u1rj00BoItw.


[47] Christopher C. Horner, Red Hot Lies: How Global Warming Alarmists Use Threats, Fraud, and Deception to Keep You Misinformed, 329.


[48] Jonathan Leake, “Wildlife Groups Axe Bellamy as Global Warming ‘Heretic’,” Times Online, May 15, 2005, https://web.archive.org/web/20080906161240/http://www.timesonline.co.uk/tol/news/uk/article522744.ece.


[49] Christopher C. Horner, Red Hot Lies: How Global Warming Alarmists Use Threats, Fraud, and Deception to Keep You Misinformed, 110-111.


[50] 위와 같음.


[51] Patrick J. Michaels and Robert C. Balling, Jr., Climate of Extremes: Global Warming Science They Don’t Want You to Know (Washington DC: Cato Institute, 2009), x-xiii.


[52] Christopher C. Horner, Red Hot Lies: How Global Warming Alarmists Use Threats, Fraud, and Deception to Keep You Misinformed, 73.


[53] “Climate Skeptics Reveal ‘Horror Stories’ of Scientific Suppression,” U.S. Senate Commettee on Environment and Public Works Press Releases, March 6, 2008, https://www.epw.senate.gov/public/index.cfm/press-releases-all?ID=865dbe39-802a-23ad-4949-ee9098538277


[54] Judith A. Curry, “Statement to the Subcommittee on Space, Science and Competitiveness of the United States Senate,”  Hearing on “Data or Dogma? Promoting Open Inquiry in the Debate over the Magnitude of Human Impact on Climate Change,” December 8, 2015, https://curryja.files.wordpress.com/2015/12/curry-senate-testimony-2015.pdf.


[55] 위와 같음.


[56] Judith A. Curry, “Statement to the Committee on Science, Space and Technology of the United States House of Representatives,”  Hearing on Climate Science: Assumptions, Policy Implications and the Scientific Method, March 29, 2017,
 https://science.house.gov/legislation/hearings/full-committee-hearing-climate-science-assumptions-policy-implications-and.


[57] Scott Waldman, “Judith Curry Retires, Citing ‘Craziness’ of Climate Science,”  E&E News, January 4, 2017, https://www.eenews.net/stories/1060047798.


[58] Rich Lowry, “A Shameful Climate Witch Hunt,” National Review Online. February 27, 2015, https://www.nationalreview.com/2015/02/shameful-climate-witch-hunt-rich-lowry/


[59] Scott Waldman, “Judith Curry Retires, Citing ‘Craziness’ of Climate Science,”  E&E News, January 4, 2017, https://www.eenews.net/stories/1060047798.


[60] “U. S. Senate Minority Report: More Than 650 International Scientists Dissent Over Man-Made Global Warming Claims Scientists Continue to Debunk ‘Consensus’ in 2008,”   U.S. Senate Environment and Public Works Committee Minority Staff Report (Inhofe), Dec 11, 2008, https://www.epw.senate.gov/public/_cache/files/8/3/83947f5d-d84a-4a84-ad5d-6e2d71db52d9/01AFD79733D77F24A71FEF9DAFCCB056.senateminorityreport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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