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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22)

곽제연 기자  |  20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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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美 SNS]


제15장 테러리즘의 공산주의 근원


(동유럽 공산당이 무너졌어도 공산당 유령은 소멸되지 않았다)


목차


들어가는 말


1. 공산당 정권의 국가 테러리즘


2. 공산국가가 수출한 테러리즘


3. 이슬람 극단주의의 공산주의 뿌리

   1) 쿠틉, 이슬람 극단주의 성전의 ‘마르크스’

   2) 레닌주의의 성전 ‘선봉대’

   3) 이슬람 극단주의의 ‘공산주의 핵심’

   4) 쿠틉이 테러리즘에 미친 영향

   5) 공산주의의 희생양이 된 무슬림


4. 중공의 테러 지원

   1) 아라파트 테러 활동에 대한 중공의 지지

   2) 중공과 다른 조직의 관계


5. 서방 급진좌파와 테러리즘의 은밀한 연맹


결론


들어가는 말


2001년 9월 11일 오전, 테러범들은 민간 항공기 2대를 납치해 뉴욕의 랜드마크인 세계무역센터(WTC)와 충돌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9·11 테러 사건'이다. 이 습격으로 인해 약 3000명의 무고한 사람이 생명을 잃었고, 100여 층의 세계무역센터 빌딩 두 채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진주만 사건 이후 처음으로 외세가 미국 영토에서 대량의 사상자를 낸 공격으로서, 사망 또는 실종 인원이 심지어 진주만 습격을 넘어섰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테러리즘에 대해 더 깊은 인식을 가지면서 알카에다(Al-Qaeda)와 빈 라덴(Osama bin Laden)에 대해 잘 알게 됐다. 그러나 테러와 공산주의의 깊은 인연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테러리즘(Terrorism)과 테러리스트(Terrorist)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795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자코뱅(Jacobin) 정부가 실시한 '공포 정치(Reign of Terror)'와 관련이 있다.[1] 바로 이 혁명가들이 만든 '공포 정치'가 앞으로 공산주의의 발단이 될 토대가 됐다.


현대의 테러리즘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공산당 정권이 실행하는 국가 테러리즘, 둘째는 공산당 정권이 직접 외국으로 수출한 무장혁명이라는 이름의 테러리즘, 셋째는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극단적인 이슬람 테러리즘이다. 많은 테러 행위의 배후에는 모두 공산당의 음모와 공산주의 학설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1. 공산당 정권의 국가 테러리즘


공산주의의 백 년 실천은 가는 곳마다 거짓말과 폭력, 살육을 수반한다. 테러리즘은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추진하고 세계를 통제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공산정권 수립 후, 예외 없이 국가 기구를 동원해 대대적인 테러 행위를 했다. 이러한 정부가 주도하는 테러리즘은 바로 국가 테러리즘이다.


레닌은 테러리즘으로 집안을 일으켰다. 레닌이 '혁명 영웅'으로 인정하고 '반혁명과 파괴행위를 다루는 전 러시아 비상위원회'(체카, Cheka)의 우두머리로 임명한 펠릭스 제르진스키(Felix Dzerzhinsky)는 1918년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조직적인 테러를 대표하며, 이 점은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라는 직설적인 발언을 했다.[2] 마르크스주의자 카를 카우츠키는 1919년 '테러리즘과 공산주의'라는 책을 발표해, 레닌이 주장하는 무산계급 독재 정치가 초래할 심각한 결과에 대해 전면적으로 폭로했다. 카우츠키는 18세기 이래 프랑스의 역대 혁명 운동 중 테러 행위를 관찰한 결과 레닌의 볼셰비키와 프랑스 대혁명의 자코뱅 테러와 계승 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3] 러시아 역사학자 유리 아파나시예프(Yuri N. Afanasyev)는 레닌의 기본 국책이 바로 '국가 테러', '폭력과 무법천지', '역사 전체가 폭력으로 돼 있다'고 비판했다.[4]


훗날 스탈린, 마오쩌둥, 볼부트, 카스트로, 앙나크, 차우셰스쿠, 김일성 등 모든 공산 정권은 살육을 통해 통치를 이어 갔다. 그들의 무법 천지의 폭력과 살육의 공포 행위는 이미 앞장에서 언급되었으므로, 더 반복하여 서술하지 않는다.


폭력과 살인은 단지 공산당이 공포를 확산시키는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공산당은 정교 합일로, 장기적인 거짓 세뇌 선전과 공산당 문화 주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거짓말과 증오, 폭력의 씨앗을 심어 대대로 전해져 공산 사악을 유지하거나 조장하는 토양이 됐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이다.


2. 공산국가가 수출한 테러리즘


만약 공산 국가가 내부적으로 자국민을 대상으로 국가 테러를 실행했다면, 공산국가는 대외적으로는 혁명을 다른 국가에 수출하거나, 적국에서 혼란을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테러를 일으키는 과격 단체를 만들 것이다.


저명한 반공 문제 전문가인 '갈등 연구소'(The Institute for the Study of Conflict)의 창시자인 브라이언 크로저(Brian Crozier) 소장은 평생 동안 공산주의와 테러리즘의 관계를 연구하여 레이건 대통령, 마거릿 대처 등 반공 진영의 반공 지도자들이 공산주의의 사악과 공포의 근원을 분석하고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했다. 그는 많은 논문과 저작을 발표하여, 세인들에게 공산주의가 국가 테러리즘 및 비(非) 국가 테러리즘의 근원이라고 경고했다.[5]


소련 정보총국(GRU)을 탈출한 스타니슬라프 루네프(Stanislav Lunev)는 소련 특수 요원들이 “세계 각지 테러리스트들의 주요 교관 중 하나”라고 고발했다.[6] 팔레스타인 해방전선, 일본 적군파, 이탈리아 붉은 여단, 독일 적군파 계열, 터키 무기 밀수업자, 남미 게릴라 등의 배후에는 모두 소련 KGB의 후원이 있었다.[7] 이들 극단주의 조직들은 일련의 반미 테러에 앞장섰다. 1975년 CIA 아테네 지국장 리처드 웰치(Richard Welch)가 그리스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1979년에는 나토 사령관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Haig) 장군이 군대에서 폭탄 테러를 당해 3명의 경호원이 부상을 당했다. 1981년에는 유럽 주재 미군 지휘관 프레드릭 크로센 장군이 서독 하이델베르크에서 적군파 대원의 대전차 로켓 공격으로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구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진영의 혁명과 테러리즘 수출의 영향을 가장 깊이 받은 곳은 무슬림 국가다.


중동은 원래 영국과 유럽 국가들의 전통적인 식민지였다. 민족 독립에 따라 소련이 기회를 틈타 중동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중동 무슬림 교파들 사이의 모순과 이스라엘과의 분쟁, 중동의 석유가 서방 각국의 이익에 관련되고 이슬람 부흥운동, 중동을 둘러싼 치열한 미소 냉전, 이슬람과 서방 문명 충돌 등이 중동 사태를 아주 복잡하게 만들었다.


소련의 무슬림 지역에 대한 침투는 바로 이런 복잡한 배경에서 발생했다. 기이한 것은 무슬림이 신봉하는 이슬람교는 알라를 믿는 반면 소련의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무신론이고 종교 소멸을 자신의 임무로 하는데 양자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사실 공산주의는 바로 전염병처럼 뚫고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공산당의 최초 시도가 있었다. 바로 1920년 이란의 길란주에 소비에트 정권을 설립한 후 페르시아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Persian Socialist Soviet Republic, 약칭 길란소비에트공화국)이라 불렀다. 공화국 내부에서 반종교 선전과 부유한 지주들의 재산을 약탈하는 일련의 급진적인 운동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인심을 얻지 못한 이 정권은 단명해 1921년 9월 소멸됐다.


무슬림 지역에 '이슬람 사회주의'라는 현상이 정확하게 나타난 것은 일부 무슬림 지도자들이 이슬람교와 사회주의 사상을 종합해 만들어낸 일종의 이념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와 이집트의 지도자 나세르 등이다. PLO는 소련과 중공의 후원을 받아 다양한 테러 활동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중동의 남예멘, 중앙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 등에도 모두 공산주의 정당이 집권한 시기가 있었다. 소련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자신들이 통제하는 무슬림 지역에 자신들의 마지막 공산주의 정권을 육성했다. 하지만 10년의 헛된 노력 끝에 소련은 결국 아프가니스탄을 포기해야 했다.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종교적인 분위기가 짙은 지역에서 공산주의를 확산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소련이 이들 무슬림 지역에서 진행한 공산혁명 수출은 큰 실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공산주의가 이 지역에 중대한 정치적 유산을 전혀 남겨놓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중 일부는 이를 통해 이슬람 극단주의를 키워냈다.


1978년 미국으로 망명한 이온 미하이 파체파(Ion Mihai Pacepa) 중장은 루마니아 국가안전위원회 비서 겸 정보총국 제1부국장이자 차우셰스쿠 대통령의 산업 및 기술 발전 고문을 지냈다. 또 동유럽에서 서방으로 탈출한 최고위급이다. 파체파는 ‘러시아의 발자취(Russian Footprints)’란 글에서 중동 테러리즘에 대한 공산주의의 대량 후원을 폭로했다. “오늘날 세계는 핵무기가 무력을 유행이 지난 것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테러리즘은 당연히 우리의 주요 무기가 되었다.” 1969년 한 해 동안 무려 82건의 비행기 납치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중 상당수는 소련 KGB 및 중공의 후원과 자금 지원을 받아 PLO가 저지른 것이다.


한 번은 파체파가 사하로프스키(Sakharovsky)의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벽에 걸린 세계 지도의 바다에 작은 붉은 깃발이 세워진 것을 발견했다. 원래 이 붉은 깃발 1개는 1대의 납치된 비행기를 의미한다. 사하로프스키는 그에게 “항공기 납치는 내가 발명한 것이다”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1968년에서 1978년까지 루마니아 안전 부문에서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게 보낸 항공 화물만 해도 매주 화물기 2대 분량이었다. 동독이 무너진 후 드러난 자료에 따르면 1983년 동독 대외정보국(Foreign Intelligence Agency)이 레바논 테러 조직에 187만 7600달러 상당의 AK-47 탄약을 보냈다. 또 체코슬로바키아는 이란 테러 조직에 냄새가 나지 않는 셈텍스H(Semtex-H)라는 폭약 1천 톤을 보냈다.[8]


KGB 국장과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유리 안드로포프는 70년대 초 아주 교활하고 은폐된 선전 활동을 펼쳐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 유대주의와 미국을 반대하는 증오의 씨앗을 심어 놓았다. 안드로포프는 서방에서 ‘새로운 거짓 정보 시대의 아버지(the father of a new misinformation era)’로 불린다. 목적은 증오를 주입하고 아울러 이런 정서적 무기를 이스라엘 및 미국에 대한 테러리즘의 피비린내 나는 도살로 만들어 미국과 유대인 세력범위 내의 그 누구도 더 이상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게 만들려는 것이다.[9]


3. 이슬람 극단주의의 공산주의 뿌리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9.11 테러’는 세계의 구도를 바꿔놓았다.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 조직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이슬람 극단주의가 큰 화제가 되었다.


세계 절대다수의 사람들의 테러 공격에 대한 첫 반응은 경악과 비통이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공산당에 의해 언론 자유가 심하게 통제되는 중국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인터넷 포럼과 채팅룸에서 대학 식당에 이르기까지 모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환호했다. “잘했다!”, “미국을 겨냥한 정의로운 행동을 강력히 지지한다.” 중국 주요 포털사이트 왕이(NetEase)가 9만 1701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테러리즘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의견은 불과 17.8%에 불과했고 대다수 사람들은 ‘반미’ 또는 ‘볼만한 건 지금부터다(테러가 아직 끝이 아니라는 의미)’ 등등 남의 재앙을 보고 즐거워하는 태도를 보였다.[10] 


테러 공격에 환호하는 이들 중국인들이 평소 빈 라덴을 본 적은 없지만 이들이 표현하는 유사한 태도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의 사상 깊은 곳에는 모두 동일한 독의 뿌리에서 비롯된 독소가 자리하는데 그 뿌리는 바로 공산사령이다. 중국인들의 독으로 인한 해악은 어려서부터 악마의 당문화 중에서 자라나 악마의 사유 구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 라덴은 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에 공산주의 소련에 대항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의 테러리즘이 어쩌다 공산주의와 한 편에 서게 된 것일까?


여기서 빈 라덴 테러리즘의 사상적 내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바로 '이슬람 테러 철학자', '이슬람 성전의 마르크스'[11], '당대 선전 조직의 교부'[12]로 불리는 사이드 쿠틉(Sayyid Qutb)이다.


1) 쿠틉, 이슬람 극단주의 성전의 ‘마르크스’


테러 문제 전문가이자 전 미국 군사학교 테러와의 전쟁 센터(Combating Terrorism Center) 연구원 윌리엄 맥칸츠(William McCants)는 이슬람 극단주의가 자신들의 동기를 주장할 때 늘 쿠틉의 가르침을 인용하고 자신들을 쿠틉의 계승자로 자처한다고 지적한다.[13] 빈 라덴 사후 알 카에다를 계승한 아이만 알자와히리(Ayman al-Zawahiri)는 쿠틉의 사상을 본 후 이슬람 극단주의 성전에 불이 붙었다고 한다.


중동 문제 전문가 핫산 핫산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2016년 발표한 ‘이슬람국가(ISIS)의 종파주의-이념의 뿌리와 정치적 내포’ 보고서는 결론 부분에서 ISIS 지지자들의 대화를 통해 ISIS의 사상적 핵심을 다음과 같이 개괄했다. “ISIS는 사이드 쿠틉이 만들고 압둘라 아잠(Abdullah Azzam)이 가르쳤으며 오사마 빈 라덴이 세계적으로 확산시켰고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Abu Musab al-Zarqawi)가 현실화시켰고 아부 바쿠르 알바그다디(Abu Bakr al-Baghdadi)에 의해 실행되었다.”[14]


빈 라덴 및 그 후계자들의 이슬람 국가는 쿠틉의 사상(물론 일부 다른 사람들의 사상도 포함됨)을 계승 발전시켰다. 이런 사상은 통상 쿠틉주의로 불린다. 통속적으로 말해 쿠틉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폭력으로 부패한 ‘구세계’를 타도하고 ‘성전 참여자(jihadis 지하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자신을 바쳐 희생하며 폭력 투쟁에 의지해 ‘전 인류를 해방하도록 격려한다.[15]


이런 ‘호언장담’은 얼핏 들어도 마르크스 레닌의 공산주의와 아주 흡사하지 않은가? 그렇다. 왜냐하면 쿠틉은 일찍이 공산당원이었고 그의 사상 중에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낙인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미국 외교정책 위원회 선임연구원 로버트 라일리(Robert R. Reilly)는 쿠틉이 실제로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과 이집트 공산당의 국제 연락인이었다고 지적한다.


쿠틉은 1906년 이집트에서 태어나 1920~30년대 사회주의와 문학을 공부했고 1940년대 말에는 2년간 미국 유학을 했다.[17] 이집트에 돌아온 후 무슬림 형제단에 가입했다. 쿠틉은 평소 육군 중령 가말 압델 나세르와 왕래가 있었다. 나세르는 자유 장교 운동(Free Officer Movement) 리더였는데 이 조직은 사회주의 경향이었다. 1952년 나세르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친서방적이었던 무함마드 알리 왕조를 무너뜨렸다. 일설에 따르면 쿠틉과 무슬림 형제단이 나세르와 함께 ‘사회주의 혁명’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한다.


쿠틉은 나세르가 이슬람 정권을 수립하길 원했지만 나세르는 세속화의 길을 걸었다. 1954년 나세르는 무슬림 형제단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에 쿠틉의 형제단은 나세르 암살을 준비한다. 하지만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쿠틉은 살인 혐의로 감옥에 들어간다. 감옥에서 3년간 쿠틉은 혹독한 고문을 당한다. 나중에 상황이 좋아지자 저술을 허락받았다. 그는 감옥에서 자신의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저서 ‘쿠란의 그림자에서(In the Shade of the Qur’an)’와 ‘이정표(Milestones)’를 발표했다. 이 두 권의 책에서 그는 쿠란과 이슬람 역사 이집트 및 서방사회 등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이고 반세속적이며 반서방적인 극단주의적 주장을 체계적으로 논술했다. 1966년 쿠틉은 나세르 대통령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쿠틉의 체제 전복 사상은 이슬람교의 지하드(Jihad) 개념에 새로운 해석을 주었다. 일단 지하드를 언급하기만 하면 많은 사람들은 곧바로 성전(holy war)을 연상한다. 사실 아랍어의 지하드는 그 자체가 투쟁과 항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주류 무슬림들에게 있어 지하드는 내심의 투쟁(자아 완성)일 수도 있고 외적에 대한 저항(defensive jihad, 방어적인 지하드)일 수도 있다.[18] 쿠틉은 이를 무제한적이며 주동적으로 폭력적인 수단을 취하는 ‘성전’으로 개념을 확장시켰다.[19] 쿠틉은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성전’의 이념적 기초를 다지고 본인 역시 교수형에 처해쳐 추종자들에게 직접 순교의 모범을 보였다.


쿠틉의 학설은 세속적인 법률을 따르는 사회나 혹은 세속 도덕을 따르는 사회체제는 바로 비이슬람적인 '구사회' 즉, 자힐리야(jahiliya, 원래 의미는 이슬람이 전해지기 전의 사회로 종교 진리에 대해 무지하다는 의미)라는 주장이다. 이런 사회는 자칭 무슬림 사회라고 해도 역시 자힐리야에 속한다. 사실상 그가 생활한 이집트 사회체제는 그에게 여전히 자힐리야였고 마땅히 전복시켜야 했다.[20]


쿠틉에게 있어 이런 ‘구사회(즉 자힐리야)’는 단지 무슬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슬람 가치관과 법률을 준수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런 ‘구사회’는 사람들에게 인위적으로 가해진 것으로 그들의 자유를 박탈한다. ‘구사회’의 사람은 노역당하는 생활(즉 노예)을 한다. 노예(즉 피압박자)에게 있어 폭력 성전은 이슬람교가 허락하는 것이다. 쿠틉은 성전을 통해 “전 인류를 해방(무슬림과 비무슬림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1] 수많은 무슬림 지도자들이 쿠틉이 너무 멀리 나갔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의 책은 출판 후 이단시되었다.[22]


쿠틉은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의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 개념(보통 민중은 통치자의 '허위의식'을 받아들여 자신이 압제당하는 것을 모른다. 이들은 자본주의를 전복시키고 사회주의로 대신하도록 스스로 원하지 못한다)을 차용했다. 자힐리야에서 생활하는 사람 역시 자신이 '노역'당하고 있고 ‘압제’당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며[23] 또한 자발적으로 일어나 성전에 참여하고 '스스로를 해방'하지 못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는 레닌이 쓴 팸플릿의 제목이자 질문이다. 쿠틉은 레닌에게서 답안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2) 레닌주의의 성전 ‘선봉대’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익숙한 학자들은 쿠틉의 저작을 연구할 때 종종 일부 친숙한 개념을 발견하게 된다. 가령 선봉(Vanguard), 국가, 혁명 등등이다. 이는 전형적인 레닌주의 술어들이다.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책을 쓸 때 직면한 상황과 도전이 쿠틉과 아주 흡사하다. 레닌은 혁명 성공의 희망을 프롤레타리아 선봉에 기탁했는데 쿠틉은 이 이론을 가져다 단지 프롤레타리아 대신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바꿨을 뿐이다.


레닌은 조직과 선봉의 역할을 대단히 강조했다. 그는 자발성과 자각성을 구별하고 ‘당 건설 이론’을 제출했다. 그는 단지 자발적인 요소에 의지할 경우 노동자는 단지 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표면적인 요구만 제출할 수 있으며 ‘전 인류의 해방’이라는 소위 깨달음은 불가능하다. 레닌은 노동자들을 선동하고 세뇌시켜 혁명만이 유일한 출로임을 인식하게 하고 “전 인류가 해방되어야만 최종적으로 자신도 해방될 수 있다”라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하려면 외부 ‘선진 분자(이들은 종종 자본가 계급 지식인들인데, 충분히 교육받을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믿었다. 이 ‘선진 분자’의 역할을 발휘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은 치밀한 정당으로 그들의 생활을 전부 포함하며 그들이 비밀 공작을 할 조건을 만들어 그들이 직업적인 혁명가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정당, 이 프롤레타리아 정당이 바로 프롤레타리아의 선봉이다.[24]


미국 해군 대학원의 중동 문제 전문가 글렌 로빈슨(Glenn E. Robinson) 교수는 “비록 모두가 아는 원인에서 출발했다 해도 성전주의 사상가들은 직접적으로 레닌을 그 사상적 계몽으로 인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자의 개념과 논리 특히 쿠틉은 그(레닌의) 영향을 잘 드러낸다. 1940년대 이집트에서 받은 교육에서 쿠틉은 분명 레닌의 저작을 읽어 보았을 것이다. 쿠틉의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은 직접적으로 레닌에게서 온 것이다. 바로 선봉(jama’a)과 강령(manhaj)이 그것이다”라고 지적했다.[25]


쿠틉은 레닌주의의 ‘정수’를 배워 무슬림판 혁명 선봉대를 조직했다. 그의 이상은 거의 레닌의 이상과 같다.


로빈슨 교수는 “쿠틉은 무슬림 세계를 (레닌과) 마찬가지로 진단한다. 대다수 무슬림들은 부패된 체계의 부정의와 반이슬람적 통치에 빠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무기를 들고 저항할 줄 모른다. 반드시 직업적인 훈련을 받은 성전 선봉대가 국가 기구에 대해 반항하도록 조직해야만 한다.”[26] 이외에도 “레닌은 선봉대를 유지하는 핵심은 바로 상세하고 치밀하게 협조하는 강령이 있어야 하며 그 후 구체적으로 혁명을 실시한다고 보았다. 쿠틉의 책에도 이와 유사한 이슬람 판본이 있다.”[27]


쿠틉에게 있어 그가 인정하는 ‘진정한 무슬림(극단주의자)’으로 만든 선봉만이 바로 이슬람과 세계 문명을 구원할 ‘혁명의 중책’을 맡을 수 있다. 선봉은 ‘가짜 무슬림과 허위’를 공격해야만 하며 그가 이해한 이슬람 이념에 따라 해야 한다. 선봉은 또 그가 이해하는 이슬람 이념에 따라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 또 폭력을 사용해 이슬람이 전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


선봉 외에도 쿠틉의 학설에는 사회 평등, 계급 소멸, 정부 소멸, ‘전 인류의 해방’과 같은 내용이 있다.[28] 이들 내용은 모두 공산주의를 연상하게 한다.


쿠틉이 사망한 후 그의 동생인 무함마드 쿠틉이 계속해서 형의 책을 출판했다. 1993년 출판된 쿠틉의 책 ‘Ma’arakat ul-Islam war-Ra’samaaliyyah’는 다시 한번 쿠틉의 공산주의 사상의 뿌리를 드러냈다. 이 책 61페이지에서 쿠틉은 솔직하게 이슬람교는 “하나의 독특하고 건설적이며 실증주의적인 교의를 지녔다. 그것은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가장 완벽한 방식을 융합시켜 모든(즉 기독교와 공산주의) 목표를 포괄하며 아울러 그들의 조화와 균형 및 정의를 증가시켰다.”[29]


3) 이슬람 극단주의의 ‘공산주의 핵심’


이슬람 극단주의의 근원을 분석할 때 일부 학자들은 또 다른 마르크스주의 이론인 ‘계급 투쟁’ 학설을 지적한다. 마르크스는 평생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모순을 선동했다. 그는 이 모순은 화해할 수 없는 것으로 오직 ‘혁명’만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슬람 극단주의가 채택한 것도 이런 전략이다. 생각해 보라,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폭파시키면 쿠틉의 이슬람 대동 세계를 실현할 수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극단주의는 서방과 무슬림의 모순을 만들고 모순을 극대화한다. 먼저 서방의 무슬림에 대한 증오를 도발한 후 이런 증오로 보다 많은 무슬림들이 서방을 증오하도록 선동한다.[30] 이는 바로 마르크스 레닌이 주장한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모순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화해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해야만 혁명을 발동할 기회가 생긴다. 공산주의의 이런 생각은 그 영향을 받은 이슬람 극단주의 역시 이렇게 생각한다.


과장이 아니라 쿠틉의 학설은 이슬람 교의 보다는 공산주의에 더 가깝다. 비록 종교적으로는 공산주의를 반대하지만 오히려 공산주의 혁명의 모든 ‘정수’를 흡수했다. 어떤 학자는 테러리즘의 실질에 대해 “자유세계와 대항하는 진정한 적은 여전히 공산주의며 이슬람 극단주의는 다만 공산주의가 전통 이슬람의 옷을 걸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31]


이외에도 서방 반문화 운동이 좌파 사상을 전 세계에 널리 전파함으로써 또 일부 사람들이 보다 쉽게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종교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다. 핀란드 정치사학자 안테로 라이징어(Antero Leitzinger)는 현대 테러리즘이 1966~67년에 시작되었고 국제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보았다. 1960년대 서방의 급진 학생운동 중 무슬림 세계에서 온 수많은 유학생들이 서방에서 좌파 사상을 접촉했다. 이들은 ‘혁명’, ‘폭력’ 등 외래 관념을 갖고 돌아와 테러리즘이 전파되는 토양을 제공했다.[32]


카이로의 아메리칸 대학에서 매체를 연구하는 압달라 슐라이퍼(Abdallah Schleifer) 교수는 일찍이 1974년에 나중에 알카에다 조직의 2인자가 되는 아이만 알자와히리(Ayman al-Zawahiri)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카이로 대학 의대에 재학하던 알자와히리는 슐라이퍼에게 이슬람 극단 조직이 엘리트 대학 특히 의대와 공대에서 가장 많은 조직원을 모으고 있다고 자랑했다. 슐라이퍼는 이것이 놀랍지 않다고 대답했는데 왜냐하면 1960년대에 이들 대학은 줄곧 마르크스주의 청년들의 거점이었다. 그는 이슬람 운동은 단지 60년대 학생 운동의 최신 발전 추세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슐라이퍼는 “아이만 들어봐, 나도 전에 마르크스주의였잖아. 네가 말할 때 난 문득 내가 당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았어. 전통적인 무슬림과 같이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아”라고 말했다.[3]


어떤 사람은 이슬람 극단주의가 파시즘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모종의 이유에서 공산주의 근원을 언급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파시즘은 민족주의의 일종으로 전문적인 종교 기초가 없다. 이슬람 극단주의의 전 인류관과 종교적 정서를 결합해서 말하자면 이슬람 극단주의는 공산주의 근원과 더 긴밀하다.


4) 쿠틉이 테러리즘에 미친 영향


쿠틉의 저서는 수많은 젊은 아랍인들에게 영향을 줬다. 이중 파키스탄 학자이자 훗날 알카에다 창립자 중 하나인 압둘라 유수프 아잠(Abdullah Yusuf Azzam)도 있었다.[34] 9.11 조사 위원회 보고서는 쿠틉이 빈 라덴의 세계관에 대한 영향을 언급하면서 아잠을 가리켜 직접적으로 쿠틉의 제자라고 밝혔다.[35]


그의 저서와 추종자들이 전달한 영향 외에도 쿠틉의 동생인 무함마드 쿠틉 역시 형의 사상을 전파한 주요 인사 중 하나다. 무함마드 쿠틉은 나중에 사우디로 가서 이슬람을 연구하는 교수이자 형의 학설을 출판 편집하고 널리 보급하는 책임을 맡았다.


빈 라덴은 학생 시기 쿠틉의 책을 읽었다. 또 무함마드 쿠틉과 잘 아는 사이로 매주 정기적으로 대학 내 공개강좌에 참가하기도 했다. 전 CIA 빈 라덴 팀의 일원이자 제임스타운 재단(Jamestown Foundation) 선임연구원 마이클 슈유어(Michael Scheuer)는 쿠틉을 직접 빈 라덴의 스승이라고 불렀다.[36]


앞에서 언급한 알카에다 2인자 아이만 알자와히리도 쿠틉의 광적인 추종자였다.[37] 알자와히리는 소년시기 숙부로부터 여러 차례 쿠틉의 ‘품격’과 ‘그가 감옥에서 감내한 고통의 위대함’[38]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쿠틉이 사망한 후 알자와히리는 회고록에서 “나세르 정권은 쿠틉과 그 동지들을 처단해 이슬람 극단주의 운동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고 여겼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조용히 가라앉은 것 같던 쿠틉의 사상은 발효되어 이집트 현대 이슬람 성전의 핵심을 형성했다”[39]라고 말했다. 쿠틉이 교수형을 당하던 해에 알자와히리는 지하 급진 조직 건설에 참여해 “쿠틉의 이상을 실현”하기로 결심했다.[40] 당시 그의 나이 15세였다. 이후 자와히리는 이집트 이슬람 성전 조직에 참가했고 나중에 빈 라덴과 함께 알카에다 조직을 만든 주요 인사가 되었다. 빈 라덴이 피살된 후 자와히리는 알카에다의 두목이 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중동 문제 전문가 글렌 로빈슨은 수니파 무슬림 세계에서 쿠틉은 폭력 성전을 강조한 가장 중요한 사상가라고 지적한다.[41] 거의 모든 수니파 성전 조직의 개념과 사상은 기본적으로 쿠틉의 책에서 나온 것이다.[42] 비록 다양한 유형의 성전 조직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즉 이슬람의 깃발 아래 폭력을 통해 그 정치적 강령을 실현한다는 것이다.[43]


1981년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를 암살한 이집트 이슬람 성전 조직, 이슬람 테러 조직 알 감마 알 이슬라미야(al-Gamma al-Islamiyah 1990년대 정부 관료, 세속 지식인, 이집트 기독교도 및 여행자들을 습격) 등은 모두 쿠틉주의를 따른다.[44]


쿠틉주의를 따르는 급진 성전 조직들은 사라피 지하드 조직(Salafi jihadi terrorists)으로 분류된다. 멜버른의 라트로브 대학 정치학과의 로버트 만(Robert Manne) 교수는 쿠틉을 사라피 지하드 조직의 아버지이자 이슬람 국가의 개척자로 본다.[45] 그는 자신의 저서 ‘이슬람 국가의 마인드: ISIS와 칼리프의 이념’(The Mind of the Islamic State: ISIS and the Ideology of the Caliphate)에서 “사이드 쿠틉이 처형된 지 50년이 지나면서 이것은 사라피 지하디즘의 전통이자 이슬람 국가의 사상이 되었다. 아직 이정표는 없지만 우리는 이미 지옥의 입구에 도달했다”라고 언급했다.[46]


미국의 싱크탱크 랜드사(Rand Corporation)의 ‘지속적인 위협: 알카에다 조직과 다른 사라피 지하디스트들의 진화(A Persistent Threat: The Evolution of al Qa’ida and Other Salafi Jihadists)’라는 보고서에서 사라피 지하디스트에 대한 쿠틉의 영향을 설명하면서 거의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40여 개 사라피 지하드 조직들을 열거했다.[47]


이슬람 극단주의의 각종 조직들을 살펴보면 이들 간에 모순이 있고 이념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절대다수는 모두 한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바로 모두 쿠틉의 공격형 지하드로 투쟁하고 쿠틉의 유산을 잇는 것이다. 그런데 쿠틉주의는 사실 공산주의 폭력 혁명의 다른 형태에 불과하다.


5) 공산주의의 희생양이 된 무슬림


2011년 미국 대테러센터(National Counterterrorism Center) 보고서에서는 “종교와 연결된 테러 사건으로 확인된 사안 중 지난 5년간 테러 사건 피해자로 사망한 사람의 82~97%가 무슬림이다.”[48] 미국 국무부 2016년 보고서에서는 2016년 발생한 1만 1072건의 테러 사건 중 사망자 2만 5621명(이 중 6755명은 테러 가담자)이었다. 비록 이 사건들이 104개 국가에서 발생했지만 지리적으로 아주 집중되어 있다. 사상자가 발생한 테러 습격의 75%는 5개 국가(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에서 일어났다.[49] 이들은 모두 무슬림이 집중된 국가들이다.


이와 비교하면 서방에서 테러 공격으로 발생한 사망자 수는 훨씬 적다. 카토 연구소가 2016년 9월 조사한 한 연구에 따르면 1975년부터 2015년까지 외국 출생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약 3024명(이 숫자에는 9.11 테러로 사망한 2983명을 포함한 것)의 미국인이 사망했다.[50] 매년 평균 약 74명의 미국인이 사망한 셈이다.


극단 테러 조직이 비록 이슬람 깃발을 치켜들긴 하지만 결국 실질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무슬림 사회다. 테러리즘 배후의 악마에게 있어 어떤 깃발을 드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각종 수단을 통해 인류를 파멸하는 것만이 그것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4. 중공의 테러 지원


중공의 테러 지원은 이미 수십 년의 역사가 있다. 아라파트는 미국이 인정하는 유명한 테러리스트로 현대 테러리즘의 시조이자 빈 라덴의 선배다. 사람들은 빈 라덴이 여객기를 납치해 9.11 테러를 주도한 것은 잘 알지만 비행기 납치의 원조는 사실 아라파트였다. 아라파트의 테러리즘은 중공의 지지와 후원을 받은 최초의 사례다.


1) 아라파트 테러 활동에 대한 중공의 지지


아라파트는 1959년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Palestinian National Liberation Movement 약칭 FATAH)을 만들어 1988년 11월 팔레스타인을 만들 때까지 줄곧 각종 무장 조직의 두목이었다. 전 중동 지역에서 그만큼 중공의 총애를 많이 받은 사람이 없다. 그는 일찍이 4차례나 중국을 방문했고 거의 매번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장쩌민 등 중공 당 두목들을 만나곤 했으며 중공에 대해 잘 알았다. 그의 테러 공격은 여러 차례 순조롭게 목적이 달성될 수 있었고 국제 정치 무대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며 좋은 시절을 보냈다.


1964년 아라파트는 FATAH 무장 테러조직 알 아시파(al-‘Asifah, 폭풍이라는 뜻)를 조직한 후 곧장 베이징에 가서 저우언라이 등과 장시간 회담을 가졌다. 당시 저우언라이가 지적한 것은 투쟁 전략에 주의해야 하며 ‘이스라엘을 바다로 몰아내자’와 같은 구호는 제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런 구호는 팔레스타인의 투쟁에 불리하기 때문이다.[51]


중공은 아라파트에게 무기와 경제 원조 외에도 여러 차례 편의를 봐주었다. 또 어떻게 미국이나 이스라엘을 상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국제적인 영향을 확대할 수 있는지 알려줬다. 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선발해서 중국에 보내 학습과 훈련을 받게 했다. 중공으로부터 배운 것을 가지고 1965년 1월부터 아라파트는 유격대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북부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전쟁을 시작했다. 1965년 6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약칭 PLO)를 조직해 베이징에 연락사무소를 설립했다. 중공은 이 사무소가 외교기관의 대우를 누릴 수 있게 했으며 또 국제 외교 장소에서 PLO를 지지했다.


1988년 11월 팔레스타인 전국위원회 제19차 특별 결의를 통해 팔레스타인 건국을 결정했다. 중공은 즉각 승인하고 같은 해 11월 20일 팔레스타인과 수교했다.


2000년에서 2001년 아라파트는 중공 두목 장쩌민과 상호 방문했다. 이 사이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대규모 유혈 충돌이 발생했고 이스라엘은 아라파트가 테러의 배후 주역이라고 거듭 비난했다. 중공의 지지하에 아라파트는 이스라엘 및 미국과 대항해 중동 지역에서 끊임없는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FATAH와 PLO 등은 아라파트의 지도하에 공개적으로 지하 군사 테러 활동에 연루되었다. 이들은 폭력 혁명만이 ‘고향을 해방할 유일한 수단’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공산주의 폭력 혁명과 사상이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아라파트는 또 세계 다른 공산 국가들과 관계도 아주 긴밀해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멤버였다. 또 유럽 사회당(Party of European Socialists)의 옵저버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줄곧 아라파트를 일련의 중동 테러 사건의 배후 인물로 보았다. 그가 조직한 FATAH와 PLO는 1988년 이전까지 줄곧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테러 조직이었다.[52]


FATAH는 1970년 요르단 국왕 후세인 빈 타랄(Hussein bin Talal) 암살을 계획했으나 끝내 실패했다.[53] 같은 해 9월에는 TV 카메라 앞에서 영국, 독일, 스위스 3개국의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국제사회를 경악하게 했다. 테러리스트들은 “우리가 1대의 비행기를 납치하는 것이 전투에서 100명의 이스라엘 군인을 사살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54] FATAH는 이후 세계 항공기 납치 테러의 선례가 되었다. 이후 수십 년간 민항기 납치는 테러리스트들의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1972년 PLO 소속의 테러조직 검은 9월(Black September)이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들을 학살하는 테러를 일으켰다. 이 사건을 계획하고 도발한 알리 핫산 살라메(Ali Hassan Salameh)는 원래 아라파트의 경호 책임자이자 FATAH 정보 부문 책임자였다. 당시 테러리스트들은 독일 뮌헨에서 거행된 하계 올림픽에서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들을 납치했다. 또 이스라엘 선수들을 사살함과 동시에 독일 경찰 한 명을 사살했다.[55] 지난 수십 년간 국제 테러의 범람과 무고한 시민의 살해에는 무고한 시민에게 최초로 테러를 가한 아라파트에게 미룰 수 없는 책임이 있다.


2) 중공과 다른 조직의 관계


중공과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와의 관계는 이미 오래되었다. 또 줄곧 빈 라덴을 비호한 탈레반과도 은밀한 거래를 맺어왔다. 1980년 중공은 파키스탄에 있던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mujahideen, 이슬람 전사라는 의미)의 훈련 기지에 약 300명의 군사 고문을 파견한 외에도 신장 카슈가르와 호탄에도 군사 캠프를 설치해 무기 및 폭탄 사용법과 전략 전술, 선전 기술 및 간첩 활동 등을 가르쳤다. 신장은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과 소련의 작전 기지가 되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중공군은 적어도 수천 명의 지하디스를 훈련시키고 그들을 위해 2억~4억 달러 상당의 총, 로켓 발사기 및 지대공 미사일 등을 제공했다.[56]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정권을 잡은 후에도 중공은 탈레반 및 알카에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탈레반이 빈 라덴의 알카에다를 비호한 시기도 포함된다. 비록 알카에다의 미국 대사관과 미 해군에 대한 테러 공격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은 유엔에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거부했다. 하지만 중공은 유엔의 탈레반 제재를 줄곧 반대해왔다. 1998년 미국이 크루즈 미사일로 알카에다 기지를 공격하자 중공은 1천만 달러를 들여 알카에다 측으로부터 불발된 미국 미사일을 사들여 자신들의 미사일 발사 능력을 향상시켰다.[58]


2000년 말 유엔 안보리가 탈레반 제재안을 제안해 탈레반 정권에 영내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양성 기지를 폐쇄하도록 압박했지만 중공은 기권표를 던졌다. 그 이후 중공은 계속해서 탈레반과 비밀 협상을 벌여 화웨이가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광범위한 군사용 통신 계통을 설치하도록 돕는 데 합의했다.[59] 9.11 테러가 발생하던 당일에도 중공은 탈레반 측과 경제 및 과학 기술 협력을 확대하는 협정에 서명했다.[60]


더 놀라운 것은 9.11 사건이 발생한 후, 중공 군인 2명이 1999년에 ‘초한전(超限战 Unrestricted Warfare)’이란 책을 저술했다는 이유로 영웅 칭호를 받았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만약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공격을 받게 되면 미국 측에 아주 곤란한 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제안하고 있다. 그들은 또 명확하게 “빈 라덴은 자신의 조직을 이용해 이런 공격을 할 능력이 있다”고 언급했다.[61] 한마디로 중공의 초한전 이론이 빈라덴의 테러 공격 수단 발전을 이론적으로 지도했고 빈 라덴은 단지 그것을 실천했을 뿐이다.


9.11 테러 발생 후 유엔 안보리가 탈레반 정권에 대한 제재를 진행할 때도 중공은 투표에 기권했을 뿐 아니라 미군이 탈레반을 목표로 공습을 개시할 때도 여전히 군사 인력을 파견해 탈레반 정권을 도와주었다. 9.11 사건 후 미국 정보 부문은 중공 군부와 연계된 ZTE, 화웨이 두 회사가 탈레반 정권의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전화 통신망을 깔아주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62]


2004년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중공 정보기관이 유령 회사를 이용해 세계 각지 금융시장에서 빈 라덴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대주고 돈 세탁을 도와주었다.[63]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폭력적인 공산주의 진영은 와해에 직면했다. 중공은 구소련의 유지를 이어받아 어쩔 수 없이 독자적으로 자유세계의 강력한 압력을 지탱해야 했다. 미국과 자유세계의 주의력이 공산주의 폭정을 비난하는 데로 전환되기 시작할 때 9.11 테러가 발생했고 세계정세는 크게 변화했다. 공산주의에 대항하려던 자유세계의 계획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대신 테러에 대한 공격으로 완전히 전환되었다. 사실 이는 공산사령이 시선을 옮겨 중공의 목숨을 부지하고 세력을 키우게 하려는 수법이었다. 서방이 반 테러로 분주할 때 미중간의 거대한 부의 이전이 조용히 발생했고 공산사령은 자본주의의 영양을 이용해 공산주의를 강화시켰다.


세계 반공 진영이 공산 세력을 소탕하려고 할 때마다 공산사령은 종종 테러조직을 사주해 사건을 만들고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사악한 공산당 및 그것이 인류를 파멸하려는 활동을 돌아볼 여유가 없게 만든다. 테러 조직과의 교전에 바쁘고 반 테러와 테러 방지에 큰 힘을 쏟는 사이에 세상의 정과 사의 대결에서 주요 전투는 한 편에 방치되어 돌아보지 못하게 한다.


5. 서방 급진좌파와 테러리즘의 은밀한 연맹


이것은 ‘전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품이다’는 말은 한 독일 음악가의 단언이다. 그가 논평한 것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아니라 9.11 테러 공격이었다.[64]


9.11 테러 사건이 발생한 후 서방의 급진 좌파와 지식인 및 언론들은 가장 먼저 테러리스트들을 향해 환호하고 그들을 변호하며 죄를 벗겨주려 했다. 한 미국 작가는 테러리스트를 ‘최고의 총명’이라고 칭찬했다. 그의 눈에 테러는 정상을 참작해 줄만 하다. 왜냐하면 미국 역사상 저지른 잘못의 일체가 그 바벨탑(세계무역센터를 말함)을 만들었기 때문에 큰 빌딩은 반드시 파괴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 이탈리아의 작가는 “월가의 투기꾼들이 가난 때문에 매년 천만 명 이상을 죽게 만들었는데 뉴욕에서 2만 명이 죽은 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65]라고 했다. 콜로라도 대학 볼더 캠퍼스의 한 교수는 9.11 수난자들을 ‘작은 아이히만(루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나치 전범이다)’이라고 비유했다. [66]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군사력 동원을 저지하기 위해 각종 급진 좌파 세력들이 연합해 대규모 반전 운동을 펼쳤다. 언어학자이자 급진좌파 사상가인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MIT 강연에서 미국을 “최대 테러리즘 국가”라고 하면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조용한 집단 학살(a quiet genocide)’ 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 지역 좌파들도 ‘철야 평화 집회’와 항의 집회를 개최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치열하게 진행할 때도 촘스키는 전쟁 지역에 인접한 인도를 2주간 방문해 백만 명이 넘는 무슬림과 힌두교도들에게 거짓말을 퍼뜨렸다. 그는 미국이 굶겨 죽이는 방식으로 3~4백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살해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테러 국가이며 미국이 저지른 짓은 9.11보다 훨씬 더 흉악하고 잔인하다고 주장했다.[67]


콜롬비아 대학의 한 교수는 미군이 “백만 번의 모가디슈(Mogadishus) 전투를” 경험하길 원한다고 했다.[68] 여기서 모가디슈 전투란 1993년 소말리아에서 알카에다가 미군 부대를 습격해 18명의 미군 병사들이 사망한 사건이다. 급진 좌파들이 일으킨 반전 운동은 자유세계의 기수인 미국을 겨냥해 자유 사회의 테러에 대한 공격을 후퇴시켰다. 객관적으로 테러분자들과 내부에서 호응한 셈이다.


2003년 2월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한 달 앞두고 빈 라덴은 알 자지라(Al Jazeera) 방송을 통해 사람들이 미국에 대항해 일어나 시가전으로 미군에 중상을 입힐 것을 호소하는 녹음을 발표했다. 그는 여기서 공개적으로 “반전이라는 점에서 무슬림의 이익은 사회주의자의 이익과 일치한다”라고 주장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좌파 조직들에게 동원령을 내리게 했다.[69]


가장 널리 폭로된 반전 조직 ‘A.N.S.W.E.R(Act Now to Stop War and End Racism)’은 전형적인 좌파 급진 조직으로 구성원 대다수가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또는 진보주의자들이다. 주요 조직자의 상당수는 국제행동센터(International Action Center)와 노동자 세계당(Workers World Party) 관련자들이다. 노동자 세계당은 미국의 극단적인 공산당 조직으로 소위 A.N.S.W.E.R는 사실 스탈린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반전에 참가한 또 다른 조직인 혁명적 공산당(Revolutionary Communist Party)의 전위조직인 ‘Not in Our Name’이 있는데 혁명적 공산당은 중공과 연계된 마르크스 레닌주의 정당이다.[70]


테러분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며 반전 운동에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외에도 법조계의 급진 좌익들은 전력을 다해 ‘9.11’ 직후 의회를 통과한 애국법(Patriot Act)을 반대했다. 이 법안은 미국의 대테러 능력을 강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 전 FBI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온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 컴퓨터학과 교수 사미 알 아리안(Sami Al-Arian)을 체포하기 위해 7년을 기다려야 했다. 만약 애국법이 있었더라면 그를 앞당겨 체포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9.11 테러를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71]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사건을 일으킨 맹인 교사 오마르 압델 라흐만(Omar Abdel-Rahman)은 1995년 종신형 판결을 받고 수감 중이다. 그의 변호를 맡은 린 스튜어트(Lynne Stewart)는 감옥에서 라흐만을 접견할 기회를 이용해 중동의 추종자들에게 대신 정보를 전달해 테러 활동을 계속하도록 부추겼다. 스튜어트는 2005년 유죄 판결을 받았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유죄 판결을 받은 후 도리어 좌파들의 정치적 우상이 되었으며, 대학과 로스쿨 및 다른 집회에서 여러 차례 강연 요청을 받았다.[72]


미국 학자 데이비드 호로비츠(David Horowitz)는 2004년 출판한 저서 ‘사악한 동맹: 급진 이슬람교와 미국 좌파(Unholy Alliance: Radical Islam and the American Left )’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미국 급진좌파 간의 위험한 관계를 드러냈다. 그는 분석을 통해 국제 급진 좌파는 이미 이슬람 지하드 조직의 변방 전사가 되었다고 지적했다.[73]


서방 급진 좌파는 왜 테러리스트들과 같은 전선에 서서 서방의 민주국가를 반대하는가? 서방 급진 좌파는 체제 내 장정을 발동해 내부에서 서방 문명을 파괴하는데 전력을 기울이는데 이 목표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세력은 그들이 연합할 대상이 된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좌파 이념과 이슬람 극단주의의 이념이 크게 다르지만 양자의 목표가 아주 흡사하기 때문에 서방 문명에 반대하는 위험한 동맹이 결성되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양자는 모두 공산사령이 인류를 파멸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결론


파리코뮌과 레닌의 국가 폭력과 테러 정책부터 중공의 국가 테러리즘에 이르기까지 공산주의는 줄곧 테러를 중요한 도구로 삼아왔다. 이뿐만 아니라 공산국가 밖에서도 공산사령은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사람들을 조종해 그것이 테러리즘의 목적을 실현하는 도구로 삼았다. 여기에는 테러리스트를 이용해 세계정세를 좌우지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끄는 것을 포함한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도덕적 단속이 없는 테러리스트들이 갈수록 쉽게 각종 수단을 통해 테러를 자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인류는 시시각각 그들의 위협에 처하게 되었다.


테러리스트들은 폭력을 이용해 세계 질서를 파괴하고 두려움을 이용해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하는데 사용한 수단은 도덕에 반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것으로 도달하려는 목적은 사악한 것이다. 이 핵심 이념은 공산주의와 뿌리가 같다. 한 마디로 말해 공산사악의 요소는 테러리스트들을 위해 사악한 가치를 제공하는 튼튼한 버팀목이 되었고 이들이 자랄 토양과 온상을 제공했다.


테러리즘의 최대 희생양은 보통 테러리스트를 만들어낸 집단이나 국가가 된다. 비록 매체에서 보도되는 것들은 늘 서방에 대한 테러 공격이지만 이슬람 극단 테러분자들이 살육하는 최대 희생양은 오히려 무슬림들이다. 이 점은 공산주의가 살육한 1억이 넘는 사람들 중 절대다수가 자기 백성인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테러리즘이 가져온 폭력, 증오, 학살, 공포, 폐허와 비극의 피해자는 전 인류다. 테러리즘과 공산주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공산주의 자체가 이미 최대의 테러리즘인 동시에 다른 형식의 테러리즘을 부추긴다. 때문에 사람들이 통상 알고 있는 테러리즘과 비교하면 공산주의야말로 인류의 근본적인 위협이다. 테러리즘의 뿌리를 뽑아내지 않으면 세상에 편안한 날은 없다. 공산사령이야말로 인간 세상 테러 세력의 근원임을 똑똑히 알고 신과 같은 편에 서서 신이 사람에게 남겨준 전통의 바른길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사령이 인류를 이용해 인류를 파멸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에 도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계속) / 출처: 대기원 <9평>편집부


<9평>편집부 신서 <악마가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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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rian Whitaker, “The Definition of Terrorism,” The Guardian, May 7, 2001 ,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01/may/07/terrorism.


[2] “Lenin and the Use of Terror,” World Future Fund, http://www.worldfuturefund.org/wffmaster/Reading/Quotes/leninkeyquotes.htm.


[3] K. Kautsky, Terrorism and Communism: A Contribution to the Natural History of Revolution (1919), https://www.marxists.org/archive/kautsky/1919/terrcomm/index.htm.


[4] Carey Goldberg, “‘Red Saturday’ Not Such a Celebration for Lenin,” Associated Press, April 21, 1990,https://apnews.com/0f88bdb24ea112b606c9c56bca69e9dd; Francis X. Clines, “Upheaval in the East; Soviet Congress Debates New Presidency,” The New York Times, March 13, 1990, https://www.nytimes.com/1990/03/13/world/upheaval-in-the-east-soviet-congress-debates-new-presidency.html.


[5] Brian Crozier,The Rise and Fall of the Soviet Empire (Rocklin, CA: Prima Lifestyles, 2000).


[6] Stanislav Lunev, Through the Eyes of the Enemy: The Autobiography of Stanislav Lunev (Washington D.C.: Regnery Publishing, Inc., 1998), 80.


[7] “The KGB’s Terrorist Footprints,” The Washington Post, September 23, 1981,https://www.washingtonpost.com/archive/politics/1981/09/23/the-kgbs-terrorist-footprints/16f129fd-40d7-4222-975c-6e39044768bf/?utm_term=.0f15a9d808da.


[8] Ion Mihai Pacepa, “Russian Footprints,” National Review, August 24, 2006, https://www.nationalreview.com/2006/08/russian-footprints-ion-mihai-pacepa/.


[9] Ion Mihai Pacepa and Ronald Rychlak, Disinformation: Former Spy Chief Reveals Secret Strategies for Undermining Freedom, Attacking Religion, and Promoting Terrorism (Washington D.C.: WND Books, 2013), Chapter 33.


[10] 「9/11 테러공격에 따른 중국 국민의 여론을 표본 추출한 결과(911恐怖分子袭击事件之后:国内言论摘登)」, 당대중국연구(当代中国研究), 2001년 제4호. http://www.modernchinastudies.org/us/issues/past-issues/75-mcs-2001-issue-4/596-911.html.


[11] Paul Berman, “The Philosopher of Islamic Terror,” The New York Times Magazine, March 23, 2003, https://www.nytimes.com/2003/03/23/magazine/the-philosopher-of-islamic-terror.html.


[12] Raymond Ibrahim, “Ayman Zawahiri and Egypt: A Trip Through Time,“ The Investigative Project on Terrorism: A Special Report, November 30, 2012, https://www.investigativeproject.org/3831/ayman-zawahiri-and-egypt-a-trip-through-time.


[13] Quoted in Dale C. Eikmeier, “Qutbism: An Ideology of Islamic-Fascism,” Parameters (Spring 2007), 85–98, http://strategicstudiesinstitute.army.mil/pubs/parameters/Articles/07spring/eikmeier.pdf.


[14] Hassan Hassan, The Sectarianism of the Islamic State: Ideological Roots and Political Context (Washington: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2016), 26, https://carnegieendowment.org/files/CP_253_Hassan_Islamic_State.pdf.


[15] Andrew McGregor, “Al-Qaeda’s Egyptian Prophet: Sayyid Qutb and the War On Jahiliya,” Terrorism Monitor 1, No. 3, https://jamestown.org/program/al-qaedas-egyptian-prophet-sayyid-qutb-and-the-war-on-jahiliya/.


[16] Robert R. Reilly, The Roots of Islamist Ideology (London: Centre for Research into Post-Communist Economies, 2006), 4, http://crce.org.uk/briefings/islamistroots.pdf.


[17] Paul Berman, “The Philosopher of Islamic Terror,” The New York Times, March 23, 2003, https://www.nytimes.com/2003/03/23/magazine/the-philosopher-of-islamic-terror.html.


[18] Andrew McGregor, “Al-Qaeda’s Egyptian Prophet: Sayyid Qutb and the War On Jahiliya,” Terrorism Monitor 1, No. 3, https://jamestown.org/program/al-qaedas-egyptian-prophet-sayyid-qutb-and-the-war-on-jahiliya/.


[19] A. E. Stahl, “ ‘Offensive Jihad’ in Sayyid Qutb’s Ideology,” International Institute for Counter-Terrorism, March 25, 2011, https://www.ict.org.il/Article/1097/Offensive-Jihad-in-Sayyid-Qutbs-Ideology#gsc.tab=0.


[20] Andrew McGregor, “Al-Qaeda’s Egyptian Prophet: Sayyid Qutb and the War On Jahiliya,” Terrorism Monitor 1, No. 3, https://jamestown.org/program/al-qaedas-egyptian-prophet-sayyid-qutb-and-the-war-on-jahiliya/.


[21] A. E. Stahl, “ ‘Offensive Jihad’ in Sayyid Qutb’s Ideology,” International Institute for Counter-Terrorism, March 25, 2011, https://www.ict.org.il/Article/1097/Offensive-Jihad-in-Sayyid-Qutbs-Ideology#gsc.tab=0


[22] Andrew McGregor, “Al-Qaeda’s Egyptian Prophet: Sayyid Qutb and the War On Jahiliya,” Terrorism Monitor 1, No. 3, https://jamestown.org/program/al-qaedas-egyptian-prophet-sayyid-qutb-and-the-war-on-jahiliya/.


[23] Roxanne L. Euben, “Mapping Modernities, ‘Islamic’ and ‘”Western’,” in Border Crossings: Toward a Comparative Political Theory, ed. Fred Reinhard Dallmayr (Lanham, MD: Lexington Books, 2013), 20.


[24] Vladimir Lenin, What Is to Be Done? Trans. Joe Fineberg and George Hanna, https://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01/witbd/.


[25] Glenn E. Robinson, “Jihadi Information Strategy: Sources, Opportunities, and Vulnerabilities,” in Information Strategy and Warfare: A Guide to Theory and Practice, eds. John Arquilla and Douglas A. Borer (London: Routledge, 2007), 92.


[26] 위와 같음.


[27] 위와 같음.


[28] Andrew McGregor, “Al-Qaeda’s Egyptian Prophet: Sayyid Qutb and the War On Jahiliya,” Terrorism Monitor 1, No. 3, https://jamestown.org/program/al-qaedas-egyptian-prophet-sayyid-qutb-and-the-war-on-jahiliya/.


[29] Impaling Leninist Qutbi Doubts: Shaykh Ibn Jibreen Makes Takfir Upon (Declares as Kufr) the Saying of Sayyid Qutb That Islam Is a Mixture of Communism and Christianity,” http://www.themadkhalis.com/md/articles/bguiq-shaykh-ibn-jibreen-making-takfir-upon-the-saying-of-sayyid-qutb-that-islam-is-a-mixture-of-communism-and-christianity.cfm.


[30] Damon Linker, “The Marxist Roots of Islamic Extremism,” The Week, March 25, 2016, http://theweek.com/articles/614207/marxist-roots-islamic-extremism.


[31] Chuck Morse, Islamo-Communism: The Communist Connection to Islamic Terrorism (City Metro Enterprises, 2013), Introduction.


[32] Antero Leitzinger, “The Roots of Islamic Terrorism,” The Eurasian Politician, No. 5 (April-September 2002), http://users.jyu.fi/~aphamala/pe/issue5/roots.htm.


[33] Lawrence Wright, The Looming Tower: Al-Qaeda and the Road to 9/11 (New York: Knopf Publishing Group, 2006), 21.


[34] Dawn Perlmutter, Investigating Religious Terrorism and Ritualistic Crimes (New York: CRC Press, 2004), 104.


[35] The 9/11 Commission Report, The 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Upon the United States, 72, https://www.9-11commission.gov/report/911Report.pdf.


[36] Michael Scheuer, Through Our Enemies’ Eyes: Osama bin Laden, Radical Islam, and the Future of America, 2nd ed. (Washington: Potomac Books, 2006), 114.


[37] Lawrence Wright, The Looming Tower: Al-Qaeda and the Road to 9/11 (New York: Knopf Publishing Group, 2006), 36.


[38] Lawrence Wright, “The Man Behind Bin Laden: How an Egyptian Doctor Became a Master of Terror,” The New Yorker, September 16, 2002,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02/09/16/the-man-behind-bin-laden.


[39] Lawrence Wright, The Terror Years: From Al-Qaeda to the Islamic State (New York: Vintage Books, 2016), 17.


[40] Lawrence Wright, The Looming Tower: Al-Qaeda and the Road to 9/11 (New York: Knopf Publishing Group, 2006), 36.


[41] Glenn E. Robinson, “The Four Waves of Global Jihad, 1979-2017,” Middle East Policy XXIV, No. 3 (Fall 2017), 70.


[42] Glenn E. Robinson, “Jihadi Information Strategy: Sources, Opportunities, and Vulnerabilities,” in Information Strategy and Warfare: A Guide to Theory and Practice, ed. John Arquilla, Douglas A. Borer (London: Routledge, 2007), 88.


[43] Glenn E. Robinson, “The Four Waves of Global Jihad, 1979-2017,” Middle East Policy, Vol. XXIV, No. 3 (Fall 2017), 85.


[44] Anthony Bubalo and Greg Fealy, “Between the Global and the Local: Islamism, the Middle East, and Indonesia,” The Brookings Project on U.S. Policy Towards the Islamic World, No. 9 (Oct. 2005):7, https://www.brookings.edu/wp-content/uploads/2016/06/20051101bubalo_fealy.pdf.


[45] Robert Manne, “Sayyid Qutb: Father of Salafi Jihadism, Forerunner of the Islamic State,” The ABC, November 7, 2016, http://www.abc.net.au/religion/articles/2016/11/07/4570251.htm.


[46]Joshua Sinai, “Mining the Roots of the ‘Why and How’ of Terrorism,” The Washington Times, October 31, 2017, https://www.washingtontimes.com/news/2017/oct/31/book-review-the-mind-of-the-islamic-state-by-rober/.


[47]Seth G. Jones, A Persistent Threat: The Evolution of al Qa’ida and Other Salafi Jihadists (Rand Corp, 2014), 64-65, https://www.rand.org/content/dam/rand/pubs/research_reports/RR600/RR637/RAND_RR637.pdf.


[48]2011 Report on Terrorism, National Counterterrorism Center, 14, https://fas.org/irp/threat/nctc2011.pdf.


[49] Country Reports on Terrorism 2016, Bureau of Counterterrorism and Countering Violent Extremism, https://www.state.gov/j/ct/rls/crt/2016/272241.htm.


[50] Alex Nowrasteh, Terrorism and Immigration: A Risk Analysis, Cato Institute, September 13, 2016, https://object.cato.org/sites/cato.org/files/pubs/pdf/pa798_1_1.pdf.


[51] 시얀춘(时延春), 『저우언라이와 중동(周恩来与中东)』,당사종횡(党史纵横),2006년 제1호, 7-8항. http://waas.cssn.cn/webpic/web/waas/upload/2011/06/d20110602193952375.pdf.


[52] “U.S. Orders Closure of Palestine Information Office – Department Statement, September 15, 1987 – Transcript,” US Department of State Bulletin, November, 1987,https://web.archive.org/web/20090808192756/http://findarticles.com/p/articles/mi_m1079/is_n2128_v87/ai_6198831/.


[53] Andrea L. Stanton, Edward Ramsamy, Carolyn M. Elliott, Peter J. Seybolt, eds., Cultural Sociology of the Middle East, Asia, and Africa: An Encyclopedia, Vol. 1 (Los Angeles: SAGE, 2012), 274.


[54] Stefan Aubrey, The New Dimension of International Terrorism (Zürich: vdf Hochschulverlag AG an der ETH, 2004), 34.


[55] Stefan Aubrey, The New Dimension of International Terrorism (Zürich: vdf Hochschulverlag AG an der ETH, 2004), 34-36.


[56] S. Frederick Starr, Xinjiang: China’s Muslim Borderland, 1st Ed. (London: Routledge, 2004), 149.


[57] John Hooper, “Claims that China Paid Bin Laden to See Cruise Missiles,” The Guardian, October 20, 2001,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01/oct/20/china.afghanistan.


[58] Ted Galen Carpenter, “Terrorist Sponsors: Saudi Arabia, Pakistan, China,” The Cato Institute, November 16, 2001, https://www.cato.org/publications/commentary/terrorist-sponsors-saudi-arabia-pakistan-china.


[59] “China’s Role in Osama bin Laden’s ‘Holy War’ On America,” The Population Research Institute 3, No. 23, https://www.pop.org/chinas-role-in-osama-bin-ladens-holy-war-on-america/.


[60] Yitzhak Shichor, “The Great Wall of Steel Military and Strategy in Xinjiang,” in Xinjiang: China’s Muslim Borderland, ed. S. Frederick Starr (London: Routledge, 2004), 158.


[61] John O. Edwards, “China’s Military Planners Took Credit for 9/11,” NewsMax, September 24, 2002, https://rense.com/general29/sdspl.htm.


[62] “Chinese Firms Helping Put Phone System in Kabul,” The Washington Times, September 28, 2001, https://www.washingtontimes.com/news/2001/sep/28/20010928-025638-7645r/.


[63] D. J. McGuire, “How Communist China Supports Anti-U.S. Terrorists,” Association for Asian Research, September 15, 2005, http://www.asianresearch.org/articles/2733.html.


[64] Jamie Glazov, United in Hate: The Left’s Romance with Tyranny and Terror (Los Angeles: WND Books, 2009), Chapter 14.


[65] 위와 같음.


[66] “Ward Churchill Profile,” Discoverthenetworks.org, http://www.discoverthenetworks.org/individualProfile.asp?indid=1835.


[67] Jamie Glazov, United in Hate: The Left’s Romance with Tyranny and Terror (Los Angeles: WND Books, 2009), Chapter 14.


[68] “Nicholas De Genova Profile,” Discoverthenetworks.org, http://www.discoverthenetworks.org/individualProfile.asp?indid=2189.


[69] Jamie Glazov, United in Hate: The Left’s Romance with Tyranny and Terror (Los Angeles: WND Books, 2009), Chapter 14.


[70] 위와 같음.


[71] 위와 같음.


[72] “Lynne Stewart Profile,” Discoverthenetworks.org, http://www.discoverthenetworks.org/individualProfile.asp?indid=861.


[73] David Horowitz, Unholy Alliance: Radical Islam and the American Left (Washington D.C.: Regnery Publishing, Inc., 2004),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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