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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박해 8주년, 동포들이 말하는 파룬궁

관리자  |  2007-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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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휴일인 17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파룬궁 반(反)박해 8주년 기념’집회가 열렸습니다. 종묘공원을 가득 메운 수백 명 파룬궁 수련자들과 여러 인권단체 대표들의 열띤 발언은 중공의 파룬궁 박해가 민주국가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습니다.


기공수련법인 파룬궁(法輪大法)은 중국에서 1억명에 가까운 수련자가 생길만큼 대중적 인기를 모았으나 8년 전인 1999년인 7월 20일, 당시 국가주석이었던 장쩌민에 의해 탄압받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감금, 폭행, 고문 등으로 사망한 파룬궁 수련자 수가 3천명 이상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이것은 신원이 확인된 수치일 뿐, 정확한 사망인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것이 파룬궁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지난해 7월, 데이비드 킬구어 전 캐나다 국무장관과 데이비드 마타스 국제인권변호사는 파룬궁 수련자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산채로 장기를 적출당하고 비밀리에 소각된다는 제보자의 증언이 사실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해 국제사회에 충격을 줬습니다.


중공 당국의 탄압은 중국 동포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중공 당국의 박해를 직접 겪었던 중국 동포 출신 파룬궁 수련자들의 이야기는 현재까지도 자행되고 있는 중공의 파룬궁 탄압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먼저 흑룡강성에서 온 박재만(가명)씨와 김홍권(가명)씨 그리고 연변 모 고등학교 교사였던 윤미화씨의 이야기부터 들어보겠습니다.


(박재만)“중국에 있을 때는 이전에는 이렇게 마음대로 했던건데, 99년 7월 20일부터 공산당이 파룬궁을 탄압해서 그렇게 그 때 마음대로 못했어요. 못하고 이러니까 사람들이 이거 확실히 좋은 건데, 몸에 좋은 건데 탄압하니까 숨어서 하고 했던거를...근데 한국에 오니까 한국은 자유국가이고 마음대로 하게 하니까 참 좋죠. 신체도 좋고 참 좋아요. 우리 형이랑 다 지금 다 붙잡혀 들어가 갖고 막 박해를 받고 돈을 많이 벌금하고 나왔어요. 이상하죠. 심신 수련인데 왜 붙잡아 가는지 그걸 이해를 못하죠. 그래서 집에 물어봐도 집에서도 모른대요, 왜 붙잡혀 갔는지. 그저 공산당이 하지 말란다는 이게 이유지 다른 이유는 없어요.”


(윤미화)“탄압하기 전에는 밖에 나가면 운동장부터 모든 어떤 큰 자리가 있는 곳이면 모두 파룬궁 수련자들이었어요. 작은 골목이라도 자리가 있으면 파룬궁 수련자들이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탄압 후에는 완전히 살벌했죠. 어디서나 그런 장면을 볼 수 없고 많은 수련자들이 붙잡혀 감옥에 들어갔고, 제 자신부터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기본상 모두 감옥과 노교소에 붙잡혀 들어갔다 나왔어요. 어떤 사람은 한 번 도 아니고 두 세 번씩 감옥에 들어갔다 왔거든요. 그리고 그 중에 어떤 한 분은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이에 엄마가 두 눈이 실명했는데 아들이 보고 싶어서 감옥에 전화를 했어요. 그래도 노교소에서 아들에게 연계도 해주지 않았어요. 결국 엄마가 집에서 혼자 세상 뜨셨는데 시신이 부식될 때에야 발견했어요. 근데 감옥에서 있는 이 분은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야 어머니가 세상 뜬 걸 알았어요.


중국은 99년 이후에는 완전히 수련할 수 없죠. 수련한다는 말만 들으면 다 감옥에 붙잡아 가고 노교소에 붙잡아 가는 살벌한 환경이었죠. 근데 2003년에 한국에 나와 보니까 이 사회는 민주사회이고 우리가 자유롭게 여기서 연공할 수 있고 수련할 수 있고 정말 우리가 몸이 아파도 수련할 수 있고 이래서 좋죠. 중국에서는 내가 몸이 아파서 돈이 없고 가정이 파산되고 그래도 수련하면 붙잡아 갔으니까. 그래서 한국이 좋습니다.”


(김홍권)“제가 99년도 7월 20일날 탄압 상황을 다 경과하고 그걸 직접 목격을 했어요. 그날 아침 제가 일찍 좀 연공장으로 나가 관찰을 해봤는데요. 몇 명 동수(同修)분이 연공을 했을 때, 공안들이 와서 직접 체포하고 막 강제로 끌고 가는 그런 장면도 봤었거든요. 제가 공원에서 그저 연공한다는 이유로 한 달간 구치생활도 했고요. 감옥에 갇혀서 그런 고문도 받았고요. 무시무시한 굵은 방망이로 온 몸을 막 때리는 고문도 당했습니다. 저희들 같이 갇혀있던 동수들도 많은 고문을 당하는 걸 봤는데요. 경찰들이 쓰는 고무방망이가 있는데 우리 동수분을 끌고 나가서 10분 안 돼서 엉덩이를 완전히 새까맣게 만들어서...


탄압을 8년간 했지만 아직도 중지하지 않고 아직도 계속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에서는 파룬궁을 자유롭게 수련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너무 좋고요. 중국에서는 파룬궁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옥살이를 해야 되는 상황이고요. 한국에서는 인권, 자유가 있으니 너무 좋습니다.


중국에서는요, 중공에서는 지금 이익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그런거거든요. 지금 국외의 많은 사람들도 피해를 보지만, 중국에서 만든 식품이나 모든 것에 독이 있고 좋지 않은 물건이나 독성 있는 물건이나 (상관없이) 돈을 위해서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사용하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거죠.”  


중국 동포 김학철씨는 중국 장춘(長春) ‘지린 정다(正大)유한공사’에서 근무했던 평범한 젊은이입니다. 2003년 2월 28일 김학철씨는 장춘시의 한 거리에서 파룬궁 진상 자료를 전달하던 중, 잠복중인 사복경찰에 체포되어 10년형을 판결 받았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아들의 구명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학철씨 어머니 권청자씨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저의 아들 김학철도 97년에 법을 얻어서 수련을 했는데, 수련을 통해 정말 심신이 건강해졌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서 근무도 잘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효자였어요. 그런데 2003년에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국 장춘시에 있는 공안 경찰에 의해 체포가 됐어요. 그래서 갖은 고문, 혹형을 다 받고.. 경찰들이 잡아가서 고문을 할 때, 수갑을 등 뒤로 두 손을 채워서 구타하여 두 팔이 다 부러지고 또 비닐봉투를 머리에 씌워서 여러 번 질식시키고 의자에 묶어놓고 전기봉으로 생식기를 지져 오줌도 가리지 못하고 대변도 가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학철이는 갖은 고통을 다 받고 고문을 다 받고 결국 10년 형 선고를 받고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파룬궁 탄압이 지금 8년까지 됐는데, 오늘까지, 최근에 와서는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서 탄압이 중지되지 않고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의 며느리 김미자도 금년 1월 27일에 퇴근하여 집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경찰들이 급습하여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역시 불법적으로 1년 3개월 노동교양 판결을 받고 지금 장춘시 헤이쭈이쯔(黑嘴子) 여자 노교소에서 노동교양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 길림성 왕청현 임업국에서 고급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박계숙(62)씨는 한국에 피신 온 중국동포 파룬궁 수련자입니다. 역시 파룬궁을 수련했던 남편은 박계숙씨가 떠난 2004년 5월 경, 왕청현 공안과 학교 내 공산당조직의 엄밀한 감시 하에 혼자 사망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사망한 후 파룬궁을 수련하던 둘째 아들과도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모든 보도참이 파괴되고 자료점이 없어지고 기본상 장춘이 마비상태에 처했어요. 5일 동안에 다 체포를 했어요, 5천 명을. 나는 당원이었고 아들은 장춘에서 수련했어요. 그 때는 애들이 어떤 정황이었냐면 정지 상태였기 때문에, 지하도 있잖아요, 하수도 밑에서 애들이 <전법륜> 같은 것을 손으로 해서 다 나눠주고 CD판 있잖아요, 그것도 애들이 거기서 다 했어요. 며칠 동안 굽고 더 지탱할 수 없으니까 우리 둘째 아들이 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우리 집으로 거지처럼 분장을 하고 나한테 돈 얻으러 왔어요. 이때 내가 돈을 많이 지원했어요. 이걸로 인해서 내가 고발됐어요, 신고당했어요. 신고당해서 파출소에서 와서 나한테 얘기를 했어요. 빨리 떠나야 한다고. 떠나지 않으면 이 가정이 몽땅.. 특히 내가 공산당원이니까, 식구 넷인데 셋이 하니까 이런 위험에 봉착했어요. 그래서 내가 한국에 온거예요. 지금 소식이 단절이 됐어요. 감옥에 갇혀는 있지 않지만 항상 은폐해 다니고 있지요. 지금 걔가 어느 곳에 있는지 잘 모르고 있어요.


편안하지 못한 이런 생활에서 지금 한국에서 어떤 곤란이 있다고 해도 중국에 비할 수 없어요. 지금 한국이 생각하는 중국의 형세가 그렇지 않아요. 아주! 말할 수 없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화 같은 것도 서로 하지 못해요. 그리고 스카이프같은 것도 못하고 있어요. 왜 그러냐면은 감독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한국이라서 괜찮지만 상대방 대륙으로 놓고 볼 때, 모든 게 다 감시가 있어요.”


중국 동포 고성녀(30)씨는 한국 천안에 사는 곽병호(39)씨와 2003년 5월 중국에서 결혼한 후, 한국으로 출국 준비를 하던 중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불법 감금되었으나 한국 사회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조기 석방돼 남편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래 고성녀씨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길에서 걸어가는데 그냥 파룬궁하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붙잡혔어요. 판결은 아무런 과정도 없고 그냥 무조건 노동교양소에 들어갔어요. 그 때는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을 알게 되죠. 경찰들이 맨날 욕하고 소리치고 파룬궁 수련생 때리고 그래서 거기서 살기 힘들죠. 1분도 거기 있기 싫죠. 노동교양소에 들어가면 말도 못하게 하고 서있든지 앉아 있든지 마음대로 못해요. 제가 몸이 안 좋으니까 파룬궁 연습하려고 하는데 연습하니까 경찰들이 와서 때리고, 그래서 제가 쓰러졌어요. 쓰러진 상태에서 경찰들 몇 명 들어와 가지고 저를 수갑으로 침대 위에 채워놨어요. 그래서 제가 많이 힘들었어요. 죽어도 못 죽고 살자 해도 숨이 안 올라오는 것 같고.


제가 한국에서 이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수련하는 거 너무 좋습니다. 중국에 있을 때는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들을 노동교양소에 잡아넣고 감옥에 잡아넣고 때리고 고문하고 그러는데, 한국 사람들 덕분에 제가 한국에 왔는데 한국 사람들이 서명 24만 명 했는데, 한국 국회도 많이 도와주고 시의원들도 서명 많이 해줘서 제가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파룬궁 반대하는 거 세계적으로 중국뿐입니다. 왜냐하면 중국은 공산당이니까. 다른 국가에서는 파룬궁 인기 많습니다.”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 동포 출신 파룬궁 수련자 27명과, 한족 파룬궁 수련자 5명은 3년째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으며 한국 정부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법무부는 “중국에 돌아가도 박해를 받을 만한 충분한 공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소송의 마지막 재판은 8월 29일에 열린다고 합니다. 이국땅 한국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이겨내며 중공 독재정권을 향해 평화적인 반박해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에 대해 한국 정부가 현명한 선택을 하길 기대해 봅니다.


SOH 희망의소리국제방송 유인순이었습니다.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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