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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인들은 폭도 아닌 의사(義士)’

관리자  |  200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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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왕화(王華, 중화권 시사평론가)


[SOH] 지난 3월 14일 이후 티베트의 라싸와 인근 쓰촨(四川), 칭하이(靑海)성 등지에서 잇달아 많은 티베트 민중들의 항의활동이 발생하고 있다. 공산당의 나팔수인 중공 매체들은 앵무새처럼 ‘폭력 난동(暴亂), 폭동, 소란, 동란(動亂)’이라고 하면서 라싸에서 발생한 발포와 심각한 폭력사건의 책임을 모두 “달라이라마 집단이 미리 꾸민 계획적인 선동이자 국내외의 티베트 분리독립 세력이 서로 결탁해 꾸민 짓”이라며 선전하고 있다.


적지 않은 해외 언론들도 평소 습관대로 중공 매체가 발표한 뉴스를 일반적인 주권(主權)국가에서 발표한 권위 있는 소식으로 여겨 전재하고 전파하며, 보도 가운데 별 생각 없이 ‘소란’, ‘폭력 난동’ 등 단어를 인용해 티베트 민중들에 대한 중공의 유혈 탄압을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 티베트와 중국 민중들에 대한 중공의 탄압을 반대하는 언론조차도 티베트 문제와 대륙 민중의 권리수호 등 폭정에 항거하는 사건을 보도할 때 여전히 이런 용어에 주의하지 않고 ‘폭력난동’, ‘폭동’과 같이 중공의 상투적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사실 중국 대륙에서 발생한 중공 폭정에 대한 민중들의 반대운동은 중공측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폭력난동’이나 ‘소란’이 결코 아니다.


티베트 문제를 예로 들자면 지난 50년 동안 중공이 말해온 소위 ‘티베트 폭력난동’에 관한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회고해보면 사실 티베트 민중들이 중공의 폭정에 반대해 일으킨 의거(義擧)이지 폭동이 아니다.


사실 중공이 ‘난동’, ‘폭도’로 규정했던 1989년 6.4 천안문학생운동이나, 최근 들불처럼 번져가는 중국 민중들의 권리수호 항쟁이나, 농민들이 자신의 생존 기반인 토지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무리하게 자신의 집을 강제로 철거당한 철거민들이거나, 비합법적으로 권리를 박탈당한 청원민중이거나, 각종 정부 정책의 피해자거나 간에 그들이 단체적으로 함께 모이는 것은 자신의 기본적인 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자 중공의 폭정에 반대해 일으킨 정의로운 의거이며 모두 ‘민주, 자유, 인권’이란 보편적인 가치를 추진하는 것으로 전 인류의 존중과 지지를 받는 것이 마땅한 선량한 행동이다.


여기서 국제사회와 수많은 민중들, 특히 국제 언론매체에 호소하는 바이다. 피비린내 나는 탄압 기계인 중공의 거짓 선전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말고 실천을 통해 보편적인 가치를 추진하고 있는 대륙 민중들의 권리수호운동을 ‘폭동, 소란 혹은 동란’이란 용어로 지칭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폭정에 맞서 용감하게 이를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런 국가와 민족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이런 세상에서 무슨 공정한 잣대나 정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폭정을 방치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1959년 ‘대약진’운동에 반대해 일어선 티베트 민중들


1950년 10월 중공이 파병한 4만의 병력이 캉짱(康藏)에서 8천 티베트군을 물리쳤다. 이후 티베트 문제에 근거한 17조 협의는 티베트 민족의 구역자치를 확정했다. 그러나 7년 후 중공은 전국적인 사회주의 개조를 시작하면서 명목상의 티베트 자치는 시작부터 와해되었다.


10대 판첸라마는 일찍이 베이징 당국에 ‘7만언서(萬言書)’를 제출해 “티베트에서 인민공사(人民公社)제도를 시행한 이후 티베트 민중들에게는 단지 한 벌의 옷과 이불, 사발과 젓가락 등 3가지 사유물품만 남았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집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가 티베트에 돌아갔을 때 많은 티베트인들이 그의 옷을 붙잡고 꿇어앉아 일어나지 않으면서 눈물로 호소했다. “중생을 굶어죽게 하지 마시고 불교가 멸망당하지 않게 하시며 우리 설역(雪域) 백성들이 멸망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1958년 일부 티베트인들이 인민공사와 대약진이 초래한 재앙을 저지하면서 적지 않은 지역에서 무장충돌이 발생했다. 1959년 마오쩌둥의 지시 하에 인민해방군이 티베트인들을 유혈 진압했고 8만여 명을 학살했다. 중공은 동시에 대량의 자치구 관리들을 체포했고 티베트 지방정부를 없애버렸다. 3월 10일 달라이라마가 이끄는 구 티베트 정부와 10만 명의 민중들이 티베트를 탈출해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웠다.


이것이 바로 중공이 말하는 소위 1959년 ‘무장반란’ 사건의 진상이며 국제사회에서는 보통 중공이 티베트를 무력 침입한 것으로 인정한다.


경제자원 약탈


1980년 당시 중공 총서기 후야오방이 티베트에 시찰 와서 “80년대 티베트인들의 생활수준은 오히려 30년 전만 못하다.”고 지적했다. 어떤 사람은 “중공의 티베트 통치는 단지 티베트의 부자들을 가난뱅이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최근 10여년 간 중공은 자원을 얻기 위해 티베트에 대한 투자를 증가시켰다. 그러나 이런 투자는 티베트 민중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많은 것들이 몇몇 소수 사람들에게 집중되었고 아울러 대부분의 투자는 티베트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가령 후난(湖南)성에서 티베트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12미터에 달하는 마오쩌둥의 동상을 세웠지만, 이는 많은 티베트인들에게 있어 큰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 티베트 10대 건축의 하나인 라싸 체육관, 가오얼푸(高爾夫) 구장 등은 평소 체육관에 가서 체육활동을 하지 않는 티베트인들에 대해 말하자면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1955년부터 1985년까지 단지 아바윈(阿壩運) 한곳에서만 중국 내륙으로 운반된 목재가 지구를 13바퀴 둘러쌀 정도라고 한다. 중공은 지난 50년 동안 티베트의 광물자원을 미친 듯이 채취했고 이는 티베트의 취약한 생태환경에 큰 타격을 주었다. 티베트에는 원래 4천여 개의 호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중 절반 이상이 고갈되었고 광활한 초원에 심각한 사막화가 나타났다.


티베트인들에게 있어 자연환경은 단순한 생태문제가 아니며 민족혼에 큰 상처를 입은 것과 같다. 티베트인들은 만물(萬物)에 영혼이 있고 신이 있다고 믿으며 산천초목은 모두 티베트 민족을 보호하는 보호신이라고 믿는다.


신앙에 대한 심각한 타격


물론 티베트인들에 대해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그들의 신앙에 대한 심각한 타격이다. 티베트에서 전해지는 불교는 이곳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이며 승려는 현지정치, 경제, 문화의 주요계층으로 이 일체는 모두 무신론을 기반으로 한 중공의 타도 대상이었다. 통계에 따르면 중공이 통치하기 전에 티베트 지역에는 모두 4573개의 사찰과 28만 명에 달하는 승려가 있었지만 6년이 지난 후 티베트에는 겨우 553개의 사찰과 6900여 명의 승려만 남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공은 티베트인들의 문화를 파괴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왔다. 그들은 우선 전통적인 의미의 ‘대장구(大藏區 지금의 티베트, 쓰촨, 칭하이, 윈난의 일부가 포함한 원래 티베트 지역)’을 지금과 같은 성, 시, 자치구로 분할해 티베트인들이 단결하지 못하게 했다. 1959년 전국적인 제 1차 인구조사에 의하면 티베트 3구역에 거주하는 티베트인구는 633만명에 달했지만 1980년 티베트 망명정부의 추산에 의하면 전체 대장구에 약 750만 명의 한족(漢族)들이 거주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장구에서는 한족 인구가 이미 티베트 인구를 추월한 상태이다.


인구를 제외하고도 문자의 중국화 역시 논쟁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비록 티베트에서 현재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티베트어와 중국어교육을 병행(문화혁명 당시 티베트어 교육을 중단한 적이 있음)하고는 있지만 고등교육은 여전히 중국어로만 가르친다. 그 결과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중국어는 알아도 티베트어는 모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티베트 민족의 유명한 작가인 웨이써(唯色)조차 티베트인들의 감정과 애증을 표현할 때 티베트어 대신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1989년 폭도를 사주한 중공


1989년 10대 판첸라마가 티베트에 문화혁명으로 인한 재앙을 시찰하러 왔다가 갑자기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갑작스런 사망은 티베트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도처에서 의거(義擧)가 발생했다. 3월 5일 라싸에서는 1957년 이래 최대 규모의 유혈충돌이 있었다.


국제인권조직에서는 중공이 사주한 사람들이 혼잡한 틈을 타 항의하는 민중들 속에서 전문적으로 살인, 방화, 약탈 등 폭력을 저질렀고 이것이 중공 군대가 무력 진압할 구실을 만들어주었다고 지적했다. 충돌이 이틀 동안 지속된 후 다자오쓰(大昭寺)에 티베트 깃발인 설산사자기(雪山狮子旗)가 올라갔고 수십 명의 승려들이 다자오쓰를 걸어 나올 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따르며 “종교 인사를 박해한 흉수를 엄벌할 것을 단호히 요구한다!” “티베트인을 살해한 무장경찰을 사형에 처하라!”라고 크게 외쳤다.


그러나 이 사건은 중공에 의해 티베트 독립의 전조(前兆)로 인정됐고 이후 대량의 유혈진압이 시작됐다. 진압 후 티베트 지식인인 승려들은 대량 숙청됐다. 그들은 강제로 달라이라마와 결별하도록 협박당했고 공산당이 정한 ‘새로운 계율’을 받아들이지 않는 많은 승려들은 사원에서 쫓겨났다. 쌍둥바리쓰(桑東巴日寺) 한곳만 예를 들자면 약 200여명의 승려들이 쫓겨났고 겨우 12명남 남았다.


달라이라마, “나는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


티베트 문제를 제기하기만 하면 중공은 줄곧 달라이라마가 분열을 획책하고 티베트의 독립을 꾀하고 있다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달라이라마는 여러 차례에 걸쳐 티베트가 추구하는 것은 독립이 아니라 중국헌법의 틀 아래에서 자치라고 말했고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임을 승인했다. 단지 베이징 당국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티베트 자치의 기초로 동의해줄 것을 바랐을 뿐이며 아울러 자치문제에 대해 베이징과 수십년 간 담판을 해왔다.


그러나 이 담판은 아직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달라이라마는 어쩔 수 없이 “반농담을 하자면 나는 독립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여섯 글자를 수천 번도 더 말해왔지만 그들(중공)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사실 중공이 그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럴 생각이 없는 것이다. 기왕에 티베트가 자신의 수중에 들어왔는데 그들에게 보다 많은 권력을 줘서는 무엇 하겠는가? 현재 중공의 정책은 바로 시간끌기이며 달라이라마가 원적(圓寂)한 이후 중공이 지정한 달라이라마를 내세워 티베트를 통치하려는 것이다. 티베트인들의 눈에 달라이라마는 한족(漢族)의 관세음보살과 마찬가지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존재이다.


달라이라마의 전생도 공산당의 비준을 받아야


2007년 9월 1일 발효된 “티베트불교 활불 전생에 관한 관리방법”이란 명문규정에 의하면 “정부의 동의 없이 환생 활불이라고 칭하는 것은 불법이며 또한 무효”라고 정해져 있다. 외부에서는 이는 중공이 법률의 방식을 이용해 앞으로 있을 달라이라마의 전생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본다. 13년 전 달라이라마가 티베트에서 판첸라마의 11대 전생을 찾아낸 후 중공은 지금까지 그를 감금한 상태이며 오히려 같은 해 다른 남자 아이를 지정해 판첸라마의 전생활불로 인정했다.


만약 티베트족이 한족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말한다면 바로 그들에겐 태어나면서 갖고 있는 신앙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인류 생활은 ‘3층집’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1층에 사는 사람들은 물질생활이 좋으면 그만이고 호의호식하고 자손이 잘살면 곧 아주 만족스러워 한다. 2층에 사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생활을 좋아하는데 ‘지식인’, ‘학자’, ‘예술가’ 등이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위로 승화할 사다리를 찾는데 이들이 바로 3층에 사는 종교 신도들이다.


중공은 전(全) 방위적으로 티베트인들의 경제, 문화, 정치, 종교, 신앙 각 방면의 권리를 박탈해왔고 2008년 3월 10일은 중공이 티베트를 통치한 지 49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3월 14일 이후 티베트 라싸와 인근 지역에서 잇달아 수많은 티베트인들의 단체 항의활동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또한 올림픽을 앞둔 중공의 인권박해란 측면에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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