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17일, 유엔 국제법정은 캄보디아 공산당의 대학살 사건을 뜻하는 ‘킬링필드’의 주범, ‘크메르 루즈’ 정권에 대한 첫 재판을 열었습니다.
크메르 루주(Khmer Rouge)는 캄보디아인을 뜻하는 크메르와 적색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의 합성어로 캄보디아 공산당을 의미합니다.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 폴 포트는 유토피아적 공산국가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캄보디아 인구의 1/3인 170만 명의 자국인을 각종 고문으로 학살한 잔인한 정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국제법정에는 피의자로 투올슬렝 감옥의 교도소장이었던 카잉 구엑 에아브(66, 일명 더치)와 크메르 루주의 2인자인 누온 체아(82), 당시 국가주석 키우 삼판 및 킬링 필드를 총지휘한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98년 심장병으로 사망) 등이 30년만에 법정에 섰습니다. 한 법원 관계자는 수년 간 우여곡절 끝에 열리는 이번 재판에 대해 “캄보디아 민주화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폴포트 정권 당시 양민 1만 4000명이 투올 슬렝에 투옥됐습니다. 당시 감옥 교도소장이었던 더치는 감옥에서 벌어진 참상을 일부 자백했고, 1975년에서 79년까지 폴 포트, 크메르 루즈가 지배한 캄보디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증언했습니다.
투올 슬랭에서는 희생자들에게 물고문, 구타, 목 베기, 펜치로 신체부분 뜯어내기, 매달기 등 온갖 고문이 가해졌습니다. 희생자들은 고문의 고통을 하루빨리 끝내기 위해 없는 죄목도 만들어 자백했고, 심지어 타인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결국 죄 없는 희생자들이 끊임없이 감옥으로 잡혀와 연쇄적으로 고문을 당하고 거짓 자백하는 참상이 반복됐습니다. 과거 중국공산당의 문화혁명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 학살에서는 비단 양민들만 희생된 것이 아닙니다. 크메르 루즈 정권에 대해 충성을 맹세했던 당원 등도 결국 투올 슬랭에서 사형됐습니다.
당시 마오쩌둥의 절대적인 숭배자로 알려진 폴 포트는 1965년부터 4차례나 베이징을 방문해 직접 마오쩌둥의 양민 학살 경험을 듣고 돌아가 이를 응용했으며 이를 위해 중국공산당에게 각종 무기와 장비를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투올 슬렝 생존자 중 한 사람인 반 나스는 당시 감옥에서 벌어진 끔찍한 고문들을 그림으로 남겨 공산정권의 실상을 알리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30년 전 투올슬렝 감옥의 고문 상황 그림과 현재 중국 파룬궁 수련자들이 박해 경험을 통해 그린 그림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파룬궁 수련자들이 개최한 ‘진선인(眞善忍) 미술전’에는 현존하는 중국 공산정권의 고문 행위가 생생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중공 정권은 과거 크메르 루주처럼 파룬궁 수련자를 상대로 물고문, 매달기 및 심지어 산채로 장기를 적출해 상업용으로 팔아먹는 반인륜적인 행위까지 서슴치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반 나스와 파룬궁 수련자들의 유사한 체험은 30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공산 정권의 본성은 변치 않았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하는 셈입니다.
30년 만에 치러지는 역사적인 ‘킬링필드’ 재판은 현존하는 공산 독재국가 지도자들에게는 경고를, 세인들에게는 큰 교훈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이희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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