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반세기가 지났지만 중국과 북한 공산당은 아직도 6.25 한국전쟁의 진실을 은폐하면서, 남한이 먼저 일으킨 전쟁이라고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중공 당국은 한국전쟁을 ‘북한을 지원해 미국을 물리치자’는 의미의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었으며, 북한이 중국 정부에 파병을 요청해 참전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교과서는 왜 전쟁이 시작됐는지, 전쟁 과정에 인민군의 실제 상황은 어떠했는지 등은 언급하지 않은 채 민족감정과 애국을 고취할 만한 대목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대부분 중국인들은 한국전쟁이 미국과 결탁한 남한이 중국의 동맹국인 북한을 침공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중공군의 참전이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일부 용기 있는 역사학자들을 포함한 세계 역사학자들은 6.25 전쟁은 북한 김일성의 치밀한 계획으로 일어난 비극적인 민족전쟁이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에 대해서만 20년 이상 연구한 미국의 대표적인 한국역사학자 웨더스비(Kathryn Weathersby) 박사는 한국 전쟁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1950년 4월 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모스크바에 찾아 갔고 스탈린은 세계 2차 대전으로 경험이 풍부한 전쟁 전략가를 소개해 주는 등 김일성의 전쟁 준비를 위한 모든 도움을 주었습니다. 스탈린으로부터 전쟁 허락을 받은 김일성은 이번에는 중국으로 가서 모택동의 동의를 얻었고 이렇게 소련, 중국과 사전 협의를 모두 마친 김일성은 마침내 1950년 6월 25일 남한을 침범해 6.25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중국사회과학원 역사학자 선즈화(沈志華) 교수도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공개된 비밀문서를 대량 인용한 서적 ‘마오쩌둥, 스탈린과 한국전쟁’을 발표해 중공이 숨겨온 진실을 폭로했습니다.
구소련 해밀 문서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김일성과 스탈린 사이의 대화 녹취록이었습니다. 이 녹취록에 따르면 1950년 1월, 김일성은 남한을 미국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전쟁을 하게 해달라고 스탈린을 찾아가자, 그동안 김일성의 전쟁의지를 반대해 온 스탈린은 극동에서 소련의 이익을 고려해 한국 전쟁을 허락합니다.
2개월 뒤 김일성과 북한 군사대표단은 모스크바에 머무르면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소련 홍군과 함께 작전 계획을 짰습니다. 큰 자신감을 얻고 평양에 돌아 온 김일성은 같은 해 6월 25일 새벽, 인민군을 동원해 남한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6.25한국전쟁은 북한의 김일성이 구소련, 중국 공산당과의 협의를 거쳐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일으킨 전쟁이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중공은 ‘인해전술’을 내세워 총 130만 지원군을 한반도에 투입했으며 90만 명에 이르는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했습니다.
중국으로 돌아간 포로들은 귀국 후 철저한 조사를 받고 서로 배신자를 적발해야 했으며 전부 농촌으로 추방되었습니다. 게다가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투쟁에 몰리는 등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을 통해 실력 있는 야전군 사령관들을 없앰으로써 군사권을 장악하고 더욱 잔인무도한 폭정을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중공이 정권을 수립한 초기에 발생한 이 전쟁으로 이미 항일전쟁과 내전을 겪은 중국의 경제상황은 더 어렵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전쟁은 중국인민들의 선혈로 김씨 부자에게 독재왕조를 세워주워 오늘날까지 북한 주민들을 인간 지옥에서 생활하게 만들었습니다.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양수진, 최창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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