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언라이(周恩來), 주룽지(朱鎔基)로부터 원자바오에 이르기까지 역대 중국 총리들은 모두 검소하고 실제적이며 친민적인, 공식화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현임 원자바오 총리는 이번 ‘양회’가 열리기 직전, 10년 전 낡은 녹색 잠바를 다시 꺼내 입어 국내외 매체에 널리 보도되기도 했다.
전인대가 폐막되면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원 총리는 “저는 인민의 아들이며 정부는 인민의 정부입니다.”라고 두 번이나 강조했고 “총리로 있은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인민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의료, 교육, 주택 및 안전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한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라고 말했다.
원 총리는 확실히 친민적인 일면을 보여주었지만 인대는 중국 각 민족과 인민을 대표하는 최고 권력기구이므로 인민을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양회 취재를 진행했던 열흘 간을 회고해 보았는데 인민대회당에 들어갈 때마다 “인민이 어디 있는가?”라는 의문이 저도 모르게 머리에 떠오르곤 했다.
겹겹이 경계선이 쳐 놓은 데다 공안과 무장경찰이 빼곡히 깔려 있어 인대 대표들이 차량으로 천안문 광장을 자유롭게 드나들 때, 일반 대중들은 멀리 경계선 밖에서 바라만 볼 수 있었다.
오늘은 양회 취재 마지막 날이다. 하지만 이날은 더더욱 “인민이 어디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 하루였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민대회당을 나서자 경계선밖에 사람들이 새까맣게 모여들어 있었다. 경찰이 중요한 차량들을 통과시키고 경계선을 치우자 인파가 조수마냥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내 앞에서는 20대로 보이는 중국 대륙 기자 4명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자를 쓴 한 아주머니가가 급히 다가오더니 기자들의 손에 억지로 뭔가 적혀있는 종이 몇 장을 쥐어주고는 “꼭 읽어보고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네 명 기자는 마치 전기에라도 닿은 듯이 몸을 한 쪽으로 피하면서 전혀 아주머니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또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기자 맞지요? 이거 좀 보고 도와주세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묻자 아주머니는 신장(新彊)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내가 또 “인대 대표들을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오신건가요?”라고 묻자 아주머니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경찰이 다가오는 것을 본 아주머니는 재빨리 종이를 나의 손에 밀어줬다. 곁에 있던 다른 한 아주머니도 손에 종이 몇 장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 아주머니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처음에 왔던 아주머니가 “뭘 말하려고 그래, 빨리 주지 않고.”라고 하면서 종이를 나에게 넘겨주고는 즉시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천안문 광장을 벗어나자 나는 종이를 펼쳐 보았고 처음에 만났던 아주머니가 스훙메이(師洪梅)라고 부르며 신장 스허쯔(石河子)라는 곳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주머니의 고소장에는 “기소인: 스훙메이, 피고: 스허쯔공안국파출소, 기소사항: 1.불법감금 2.고문치사죄... ...”라고 적혀있었다.
두 번째 아주머니는 펑융지(馮永紀)라고 불렀고 역시 신장 스허쯔에 살았다. 고소장의 맨 처음 부분에는 양회기간 CCTV 유명 MC 바이옌쑹(白岩松)이 사회하는 특별 프로그램 ‘옌쑹 편지함’에 보내는 글이라고 밝혀져 있었고 편지에는 남편이 당한 억울한 사연을 적었다. 두 고소장에는 모두 집 전화가 적혀 있었다.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신장에서 천안문에 온 두 아주머니는 경계선으로 막힌 몇 백 미터 때문에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아주머니들은 인민대표들이 그들을 위해 억울한 사연을 해결해 줄 것을 바랐으나 결국 한 낯선 기자에게 고소장을 넘겨주는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밤, 두 아주머니는 나에게 고소장을 넘겨줬다는 이유로 한시름 놓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전보다 더 초조한 마음으로 기적이 나타나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나 역시 아무런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BBC 가오이(高毅) 기자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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