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피로 얼룩진 문화대혁명 40주년이 다가왔지만, 중국 공산당은 논평 한마디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마오쩌둥은 사망했고 문화대혁명이 끝난지도 이미 4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이 암흑시대를 회고하는 어떤 행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 1966년 5월, 마오쩌둥은 적들을 소탕하고 공산당에서 자신의 지도기반을 굳힐 목적으로 전국적인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주자파, 즉 자본주의 노선을 걷는 실권파관료들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끈 이 투쟁은 중국을 10년간의 폭력과 억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르게 몰고 갔습니다.
중국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급진적인 홍위대(隊)를 형성했고 마오쩌둥의 지령에 따라 수백만의 시민들을 공격했습니다. 수 천만 명이 이 투쟁의 숙청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문화대혁명 40주년이 조용히 지나가는 현실에서, '문혁'이라는 단어는 오늘날에도 지방박물관, 책과 일상대화 속에서 여전히 검열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공식논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단체들은 투명성 제고를 위해 작지만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외치고 있는 이들 지식인들 중 한 사람인 '위제'는 그 여파가 식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위제: 문화대혁명은 문화유물을 파괴시켰고 환경을 훼손했습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화시켰습니다. 그 영향 하에서 중국 국민들은 그들의 신념을 잃었고 도덕성을 상실했습니다. 문화대혁명과 오늘날의 “돈이면 다 된다”라는 생각에는 일련의 연결고리가 있는 것입니다. 문화대혁명에 의해 야기된 중국사회의 폐해는 오랜 동안 지속될 것입니다.
베이징의 칭하오 대학은 1966년 '권위를 무너뜨리라'는 마오쩌둥의 선동에 가담한 최초의 대학들 중 한 곳으로, 중국 현주석 후진타오 또한 이곳의 정치적 지도자였습니다. 후진타오는 중국 근대사에 대한 공식적인 검열을 완화할 의사를 전혀 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은 일부 사립박물관에 마오쩌둥 뺏지와 포스터를 전시하고 있을 뿐, 문혁의 희생자들에 대한 공식적인 기념비조차 세우지 않았습니다. 소수 허가된 역사연구들에 대해서도 엄격한 검열이 이루어집니다.
문화대혁명은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과 함께 막을 내렸으며, 문혁 40주년 대신 '마오쩌둥 사망 추모일'은 올해 달력에도 중요한 기념일로 표시돼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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