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루주 국제전범재판소 소속 경찰과 군 관계자들은 지난 19일 ‘킬링 필드’를 일으킨 크메르루주 정권의 2인자, 누온
체아(Nuon Cheaㆍ82) 전 캄보디아 공산당 부서기장을 긴급 체포했다.
누온 체아는 지난 98년에 사망한 캄보디아 공산당 최고지도자였던 폴 포트와 함께 1975~79년 동안 캄보디아를 통치하면서, 공산 혁명을
이유로 캄보디아 인구의 약 4분의1인 200만 여명을 학살했다.
누온 체아는 태국 국경 부근에 위치한 그의 집에서 경찰과 캄보디아 특수부대에 의해 체포됐다.
그는 헬리콥터를 타고 프놈펜으로 이송되기 전 짧은 진술을 했으며 그의 집에서는 폴포트의 여러 장의 문서와 사진들이 발견됐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누온 체아는 자신의 손에 피 한방울 뭍히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프놈펜 법정에 도착한 그는 “국민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로 자신의 죄를 시인했다.
그의 아들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이미 준비됐고 모두들 이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때 늦었지만 이로써 20세기 최악의 학살로 알려진 ‘킬링필드’ 재판이 최초로 시작되게 됐다.
크메르루주와 중국공산당
크메르루주(Khmer Rouge)는 프랑스어로 ‘붉은 크메르’라는 뜻으로 1975년부터 79년까지 캄보디아를 통치한 급진 공산주의
운동단체를 말한다.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루주는 4년에 걸친 캄보디아 통치기간에 자행한 대학살로 유명하다.
이때 캄보디아 인구의 4분 1에 해당하는 200만여 명을 살해했고 다른 공산혁명과 마찬가지로 전문지식인층과 기술자층이 대부분 살해됐다.
당시 마오쩌둥의 절대적인 숭배자로 알려진 폴 포트는 1965년부터 4차례나 베이징을 방문해 직접 마오쩌둥의 혁명 경험을 듣고 돌아가 이를
응용했다.
집권 후부터 ‘진반’, 토지개혁, ‘대약진운동’ 등 일련의 공산 혁명을 통해 1억에 가까운 자국민을 학살한 마오쩌둥의 경험은 그에게 큰
뒷받침이 됐다.
왕셴건(王賢根)의 ‘월남지원과 반미항전 실록’ 기록에 의하면 1970년 마오쩌둥은 당시 폴 포트가 이끄는 3만 부대에게 각종 무기와 장비를
지원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공산당의 대량학살 경험 뿐 아니라 무기까지 지원받은 폴 포트는 정권을 탈취하고 마음껏 자국민을 유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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