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임영(문화평론가)
[SOH] 지난 3월 14일 티베트 승려들을 중심으로 한 평화적인 시위대에 중공군이 총격을 가해 많은 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유혈참극이 발생했다.
현재 이 문제는 세계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고 국내에서도 중공(중국공산당)의 학살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민중들의 자발적인 항의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나 언론에서는 중공의 만행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못하며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심지어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들조차 이번 유혈사태의 근본이 중공의 생존위기에서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장족(藏族)과 한족(漢族)간의 민족모순으로 간주하거나 우발적인 폭력사건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본고에서는 이번 3.14 유혈학살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에 대해 중공 체제위기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전편에 이어 계속)
4. 소위 ‘티베트 폭력난동’은 중공의 날조극
이상 6.4와 파룬궁 탄압에서 사용했던 거의 모든 수법들이 이번 3.14유혈사태 때 다시 나타났다.
티베트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1989년 3월 티베트에서 발생했던 폭력사건에서도 중공 중앙의 무장경찰 본부에서 파견한 300개의 특별행동분대가 개입했다고 한다. 이들은 티베트인들의 옷으로 갈아입고 각지를 돌아다니며 상점에 불을 지르고 약탈을 자행했다. 그런 후 각 지역의 사복경찰들과 협조해 임무를 완성한 후 철수하고 중공군은 이를 빌미로 폭력진압을 개시했다.
즉 중공이 특수 임무를 띤 사복경찰들을 파견해 티베트인의 복장을 하고 방화와 폭동을 일으키게 한 후 이를 빌미로 탄압한 것이다.
지난 3월 29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달라이 라마가 인도 뉴델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 군인 수백명이 라마 승복을 지급받았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또 젊은 승려들이 폭력사태를 주도했다는 중국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그들(군인들)은 마치 승려나 불자들처럼 옷을 입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던 칼은 티베트의 것이 아닌 중국인들의 칼이었다"고 설명했다.
사실이 이렇게 명약관화(明若觀火)함에도 중공은 시위대가 폭력난동을 일으키는 화면만을 대대적으로 방송하면서 “당신들이 보라, 티베트 시위대가 저렇게 폭력적인데 우리가 진압하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단 한발의 총알도 사용하지 않았다. 모든 책임은 티베트 폭력 시위대와 이를 사주한 분리독립주의자 달라이 라마에게 있다.”라고 뻔뻔스럽게 떠들어대고 있다.

▲ 티베트인들의 평화시위(上)와 대비되는 중공이 조작한 폭력시위(下),
한족들이 사용하는 칼은 든 빨간 원안의 인물은 중국 공안으로 밝혀졌다.
그럼, 아직까지도 중공의 강경진압을 옹호하는 일부 사람들을 위해 양측의 입장을 나눠 이번 사건이 철저한 중공의 자작극임을 밝혀보고자 한다.
우선 티베트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방화와 폭력을 행사할 동기가 없다. 라마승들의 평화적인 시위는 티베트인들로서는 너무나 정당하고 당연한 항의이다. 더구나 이들이 내세운 조건은 3월 10일 연행된 사람들을 석방하라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굳이 상점에 불을 지르고 약탈을 자행하겠는가? 만약 이렇게 한다면 이미 잡혀간 사람들을 석방시키는 것은 고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잡혀갈 것이 아닌가?
둘째, 중공 CCTV 화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화면이 아주 안정적이고 카메라 각도가 아주 좋다. 돌발사건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카메라가 흔들림도 없었는데 마치 미리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카메라맨은 상점에 대한 방화와 약탈이 시작되기 전부터 미리 행동을 예측하고 있었으며 줄곧 망원렌즈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이미 사전에 각본에 따라 잘 배치된 촬영임을 알 수 있다.
셋째, 중공의 날조극은 이미 여러 차례 전과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위 문장을 참조하기 바란다.
넷째, 만약 중공의 주장대로 티베트인들이 정말 폭력난동을 일으켰다면 왜 외국 기자들을 모두 철수시키는가? 사실 중공은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기간이나 그 전에 외국기자들이 정부의 비준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게 해준다고 호언장담하지 않았는가? 중공이 만약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면 구태여 이들이 진실을 보도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겠는가?
다섯째, 중공의 주장대로 달라이 라마가 배후에서 이번 사건을 조종했다면 그만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줄곧 비폭력과 자비를 주장해왔으며 티베트 불교는 원래 폭력을 말하지 않으며 자비를 강조한다. 심지어 땅에 기어 다니는 하찮은 애벌레조차 자신의 전생 부모라고 생각하며 소중히 여기는 것이 대부분의 티베트인들이다.
또한 달라이라마는 90년대 이후 독립을 주장하는 대신 중국의 틀 내에서 자치를 주장해왔고 2000년 이후 중국 지도자가 해외를 방문할 때도 항의시위를 벌이지 못하게 했다. 그런 그가 무엇을 얻기 위해 이번 폭력난동을 획책했겠는가?
끝으로 티베트인들은 기본적으로 경건한 신앙인들이며 물질적인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이런 티베트인들이 사찰을 부수고 상점에 불을 지르며 차에 불을 지르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평소 티베트인들의 순박한 풍속이나 경건한 신앙을 생각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5. 중공의 생존위기와 폭력적 본질
그렇다면 중공은 왜 이번에 다시 도살용 칼을 치켜들고 무고한 티베트인들을 학살하지 않을 수 없었을까? 그 대답은 2004년 11월 『9평 공산당』이 발표된 후부터 시작된 자발적인 중공 조직 탈퇴와 중공 해체운동 때문이다. 현재까지 대기원시보에 중국 공산당, 공산주의 청년단, 소년선봉대를 탈퇴한다고 공개적으로 성명한 사람의 숫자는 무려 3천4백50만 명이 넘는다. 이중 약 60%가 중공을 탈퇴한 것으로 계산하면 전체 중공 당원의 20%가 훨씬 넘는 숫자가 자발적으로 중공을 탈퇴한 셈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중공 체제 내부의 고위층 인사들까지도 실명으로 탈당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20년 전 구(舊) 소련과 동유럽 공산당들이 무너질 때와 너무나 비슷하다.
때문에 중공 고층은 최근 멸망에 대한 위기감으로 심각한 내분에 휩싸여 있으며 이전처럼 중국인들을 뜻대로 다스릴 수 없게 되었다.
노자에 이런 말이 나온다. “백성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어찌 죽음으로 그들을 겁줄 수 있겠는가?” 여기서 백성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극한적인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상황에 이르면 더 이상 통제가 불가능해져 결국 파국을 초래한다는 뜻이다.
현재 중공이 처한 상태가 바로 이런 파국의 전야이다. 중국 역사상 역대 왕조의 말기에는 늘 잦은 천재인화와 민란이 발생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구세력의 기도는 언제나 실패로 돌아갔으며 근본적인 모순을 해결하자면 결국 낡은 왕조가 타파되고 새로운 왕조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중공의 폭력성이 노골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의 생존이 절박하다는 반증이다.
재미있는 것은 1989년 덩샤오핑이 말한 20년의 안정이 끝날 때가 되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덩샤오핑은 20년 후에 중공이 멸망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결론: 티베트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법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금까지 중국에서 발생한 모든 학살사건의 배후에는 중공이 도사리고 있다. 중공을 해체하지 않는다면 언제고 다시 제2, 제3의 6.4, 제2, 제3의 티베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중공의 사악한 본성을 분명히 직시하고 그것의 거짓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며 중공을 해체하는 노력을 도와 중공을 평화적으로 해체하는 길만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이다.
역사상 중공의 탄압은 민족, 문화, 지역을 가리지 않았고 그것이 탄압하는 유일한 목적은 오직 공산정권의 유지에 있다. 이번 사건을 한족(漢族)과 장족(藏族)간의 민족대결로 몰아가는 것은 사실 중공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중공은 애초부터 민족이나 국가의 이익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공이 하는 모든 일들, 인민들을 세뇌하고 개혁개방을 하고, 생태환경을 파괴하며, 일부 사람들이 먼저 부자가 되자는 모든 주장들은 사실 다 중공의 정권유지를 위한 것에 불과하다. 만약 중공을 그대로 둔다면 언제고 다시 오늘날 티베트인들이 겪은 비극이 다시 재연될 것이다.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중공의 사악한 본질을 똑똑히 알고 티베트인들의 정의로운 항거를 지지해야 한다. 세계가 나서 한목소리로 중공의 만행을 제지해야 한다.
이 세상은 중공과 같이 사악한 것들이 함부로 날뛰는 곳이 아니다.
중공을 해체하지 않으면 티베트의 자유는 없고, 중공을 해체하지 않으면 새로운 중국이 설 수 없으며, 중공을 해체하지 않으면 중국인들의 미래는 없으며, 중공을 해체하지 않으면 세계평화는 공염불에 불과하다.(끝)
※ 외부 필자의 글은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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