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짱산(臧山ㆍ신기원 특약평론가)
[SOH] 네팔공산당이 총선에서 의회의 과반석을 차지하여 진정한 의미의 ‘집정당’이 됐다. 네팔공산당은 게릴라(유격대)로 유명하다. 외국매체는 보통 ‘마오쩌둥파 게릴라’라고 부르는데 중국 관방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중국관방 매체는 집권한 네팔공산당 지도자들을 ‘동지’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네팔공산당에 ‘마오쩌둥주의(마오주의)’라는 주석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마오쩌둥주의’란 무슨 주의인가?
과거에 중공 언론은 다른 국가 공산당 지도자가 중국 방문하게 되면 그 나라 공산당을 소개하는 글을 발표했는데 일부는 괄호 안에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글자를 써넣어 강조했지만 일부는 표기하지 않았다.
이런 구별은 사실상 ‘마르크스’가 아니고 ‘레닌’ 때문이다. 대부분의 공산당은 마르크스를 인정하지만 레닌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 공산당도 있다. 예를 들면 서유럽 대부분의 공산당은 레닌을 인정하지 않는다. 레닌이 마르크스와 다른 점이라면, 레닌은 “무산계급(프롤레타리아)은 반드시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해야 하며 자본주의 세력이 약한 국가에서 혁명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공산당은 반드시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몇 국가에서 정권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에 의해 얼음 도끼로 암살된 트로츠키도 확고한 공산주의자였다. 하지만 트로츠키는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하고 정권탈취 후 ‘무산계급독재’를 실행하는 식의 비합법적인 폭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중공의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레닌파가 아닌 마르크스주의는 전부 ‘수정주의’ 즉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한 주의’로 불린다.
마오쩌둥은 레닌주의의 계승자였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10월 혁명)의 성공은 주요 도시에서 노동자들의 폭동에 힘입어 단숨에 정권을 탈취한데 있다. 마오쩌둥은 약간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다. 그는 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국가에서의 폭력혁명은 우선 가장 가난하고 낙후한 농촌지역에서 진행하고 게릴라 방식으로 도시를 포위해 결국 국가의 정권을 탈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마오쩌둥주의는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하고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주의’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적으로 공산당의 폭력 정권탈취 운동이 벌어졌는데 주로 마오쩌둥주의였다. 당시 공산당이 흥성할 수 있는 나라는 대부분 가난한 나라였다. 때문에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 공산당, 인도네시아 공산당, 미얀마 공산당, 필리핀 공산당, 심지어 베트남 공산당과 캄보디아 공산당도 모두 마오쩌둥주의였다. 남미의 일부 공산당 게릴라도 역시 마오쩌둥주의에 속했다.
네팔공산당도 마오쩌둥파 중 하나이다. 네팔은 내륙국가이고 경제가 발달하지 못했으며 빈부격차가 심하다. 따라서 극도로 가난한 산악지역 농민들은 네팔공산당 게릴라의 주요한 지지기반이 됐다. 다른 한가지 원인은 중국공산당의 배후 지지 때문이다.
마오쩌둥주의 공산당은 일찍이 캄보디아와 베트남에서 정권을 탈취하는데 성공했지만 극히 심각한 인권 재난을 가져왔다. 마오쩌둥의 다른 한 주요사상은 “무산계급 독재하에서의 계속되는 혁명” 이론이다. 즉 정권을 탈취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혁명을 진행해 엄격한 무산계급독재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는 인구 8백만 중에 2백만을 학살한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대학살의 이론적 근거가 됐다.
네팔의 마오쩌둥파 공산당은 정권을 탈취했지만 폭력이 아닌 선거를 통하여 정권을 얻었다. 마오쩌둥주의와는 좀 어긋난다. 하지만 사람들을 우려하게 하는 점은 마오쩌둥주의를 신봉하는 네팔 공산당이 앞으로 피비린내 나는 무산계급독재를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네팔은 한 차례의 피바람 속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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