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장톈량(章天亮)
[SOH] 지난해 3월 인민대표대회 폐막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올해가 중국 경제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한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절반밖에 맞추지 못했다.
원 총리의 전망대로 2008년 중국 경제는 잇따른 천재인화(天災人禍)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이제 시작일 뿐, 가장 어려운 시기는 아니다.
중공이 경제 위기에 부딪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60년대 3천 만 명이 굶어 죽은 대기근과 국민경제를 붕괴에 이르게 한 문화대혁명은 아직도 기억이 새롭다.
과거와 비교해 보면, 현재 중국은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고는 하지만 경제성장 속도가 느려졌을 뿐, GDP 수치는 여전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방대한 규모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료들의 수입과 국가 재정수입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중공 당국이 이번에 느끼는 위기감은 대기근이나 문화대혁명 시기에 비해 훨씬 심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개혁개방 전까지 중공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독재정권의 합법성을 주장했으며, 6.4천안문 민주화운동 이후에는 전적으로 경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과거의 주장을 부인했다.
때문에 경제 말고는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게 된 중공으로서는 이번 경제위기로 집권의 합법성이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중공이 지금까지 누차 말 바꾸기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전통사상을 철저히 부인하고 무신론으로 국민들을 세뇌시킨 결과였다. 천지를 경앙하는 전통사상이나 신의 가르침을 추앙하는 유신론자들과는 달리, 무신론자들은 기존의 주장을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고칠 수 있다.
때문에 이데올로기로 집권의 합법성을 주장하던 시기 중공은 사회 이념과 도덕에 대해 일방적으로 정의를 내려 사람들이 따르도록 했다. 그러나 그들의 정의는 현실에 취약했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람에 격렬한 논쟁과 투쟁이 그칠 새 없었다.
그러다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이 같은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경제라는 가시적이고 안정적인 지표로 중공의 집권 능력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거주할 집이 있는지,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는지 등이 집권자들에 대한 평가를 결정했다.
경제라는 것은 기복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당독재를 유지하려는 중공에게는 퇴로가 없었으며 경제의 하락이 곧 정권 위기를 의미했다. 때문에 중공은 경제에 사활을 걸었고 수단 방범을 가리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 생태계가 파괴되고 사회도덕이 타락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지만 중공은 죄악을 숨기기 위해 ‘발전이 곧 진리이다’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민주국가 정부도 경제를 발전시킬 의무가 있지만 중공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미국을 예로 든다면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이 실패한 것은 경제위기로 국민의 지지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정당이 집권당 위치에서 물러나면 그만, 더 이상 심각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공은 물러나는 즉시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청산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민주국가에서는 또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도 집권당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집권당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공은 모든 문제에 책임을 지게 된다.
또 민주국가 대통령은 민주선거로 당선되기 때문에 능력이 없다면 임기를 마친 후 자리에서 물러나면 되지만 중공은 항상 민중의 반항으로 정권이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중공은 그 동안 신앙자유, 언론자유, 결사자유 등 헌법이 민중에게 부여한 권리를 멋대로 박탈할 때나 주택을 강제로 철거하고 토지를 강제로 징수할 때도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는 구실을 댔지만 일단 경제가 하락한다면 피해 본 사람들의 분노도 화산처럼 폭발하게 된다.
중공은 개혁개방 이후 사람들의 물욕(物慾)을 방임하는 방법으로 집권 합법성 문제에서 사람들이 시선을 돌리게 했다. 그러나 중공은 사람들의 최고의 목표가 향락으로 변하면 더 이상 그 어떤 이념을 위해 고생을 참으려고 하지 않으며 욕망이 만족되지 않으면 즉시 모든 불만이 정권을 향해 분출된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사실 중공은 중간에 집권의 합법성을 새롭게 수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1억 명 이상이 수련했던 파룬궁(法輪功)의 출현이었다.
민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룬궁 신앙운동을 지지했더라면 중공은 사회도덕을 새롭게 건립하고 당원들의 도덕을 승화시키는 동시에 민중의 지지와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중공은 장쩌민의 뜻에 따라 파룬궁에 대해 가장 비인간적인 박해를 시작했는데 이는 자폭테러나 다름없는 선택이었다.
중공은 정권 수립이후 9자를 만나는 해마다 큰 사건이 터졌다. 1959년에는 대기근, 1969년에는 소련과의 전쟁, 1979년에는 베트남과 전쟁, 1989년에는 6.4천안문 민주화운동이 발생했으며 1999년에는 파룬궁 탄압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2009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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