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이클 영(영문 대기원시보 논설위원)
[SOH] 1989년에서 1991년 사이, 구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하나씩 몰락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당시 중국의 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은 대학생들이 주도한 민주화 운동을 천안문 광장에서 박살냈다.
중국 공산당(중공)은 세계 나머지 국가들의 허약한 반응 덕분에 고비를 넘기고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며, 1949년 정권을 잡을 당시 이용했던 수단인 폭력으로 통제와 지배권을 이어나갔다.
새로운 전략
덩은 공산당이 국제사회의 반공산당 분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도입했다. 이 새로운 전략에는 ‘능력을 숨기고, 때를 기다려 일을 해치우는’ 전략도 포함되었다. 이는 외교 정책에도 반영되어 세계가 중국이 공산정권의 지배하에 있으며, 이들이 서구 사회를 최후의 적으로 보고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게 했다.
천안문 학살의 충격에서 회복된 1992년, 덩은 경제 발전이 중국 국내 정책의 핵심임을 선언하고 엄격한 통제를 유지하면서 세계에는 개방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서방과 충돌하기 전 적어도 20년 동안 평화를 유지하면서 경제가 잘 성장한다면 중공의 합법성도 개선될 것으로 판단했다.
세계를 변화시키기
덩의 전략은 서구를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다. 한편 서구세계는 이미 중국이 공산주의가 아닌 정치 체제를 가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포기해버렸다. 중공의 많은 서방 ‘친구들’은 중국이 중공의 통치하에서 형편이 좀 나아졌고, 세계가 좀 더 안전해졌다는 생각을 미국 정부에 팔았다.
그 결과 서방 국가들은 중공 지도자들이 합법적이며 관리들이 마치 선거에 의해 선출됐고 이들이 민의를 대변하는 것으로 여기게 됐다.
특히 이를 토대로 서방 사업가들은 중국에 과하게 투자했고, 결국 미국에서도 공산당의 통치를 옹호하기에 이르렀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야후, 구글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들은 중공의 인터넷 검열의 도구가 되었다.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은 무역과 인권을 분리하기로 결정하고 자유무역이 중국내 인권 상황을 개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중국내 인권은 세계가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될수록 악화되었다. 일부 인권문제는 중국과의 외교에서 거의 무시되었고, 중국과 미국 간의 인권 회의는 중국의 요구에 따라 밀실에서 이루어졌다.
중공 지도자들은 서구 정부와 미국 사회가 어떻게 동작하는지에 대해 민감했고 발 빠르게 대처했다. 그들은 대리인들을 통해 서방국가의 선거 제도에서 이득을 챙겼고, 홍보회사를 고용하여 자신들의 정책과 관심을 로비했으며, 기업가, 교수, 학자, 그리고 학생단체 이름으로 수많은 기구를 만들어 자신들의 관심을 알렸다.
그들은 또한 전 국무장관을 포함하여 전직 미국 관리들에게 사업기회를 제공했고, 중국 연구자들에게 자금을 제공했으며 대학원 학생들에게는 영향력 있는 학자들을 보조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중국은 특히 소프트 파워로 미국 문화와 매체 공간에 침투하려 시도했다. 제임스타운 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은 직간접적으로 미국내 중국어 매체의 90% 이상을 통제했다. 중공을 대변하는 CCTV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은 미국과 캐나다 케이블과 TV채널을 통해 직접 방송된다. 전 세계 대학에 세워진 공자학원은 자신을 가장하여 서방세계에 영향을 미치려는 또 다른 시도이다.
중국이 서방 기업가, 정치가 그리고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들을 조정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사용함에 따라, 우리는 작가 제임스 만이 ‘중국 예외’라고 불렀던 현상을 살펴봐야겠다. 이는 미국 지도자들이 중공의 억압적인 행동을 어떻게 해명하고 중국과 비즈니스를 계속 이어가는지를 설명한다.
결국, 최근 20년동안 중공은 미국과의 거래에서 대단한 확신을 얻었다. 그들은 서방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공포가 이용되는 한 서방을 살 수 있고, 휘두를 수 있으며,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공은 체제를 위협하는 위기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세계 많은 지도자들에게 가공할 힘을 발휘하고 있다.
국내 위기와 가능한 결론
일부 미국에 있는 학자들은 중공 정권이 큰소리치는 것과 달리, 중공 정권의 안정성을 의심하며, 중공 정권이 국내 위기에 전전긍긍하고 있고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는 부패를 동력으로 삼고 있다. 투명성이 없고 사법독립이 요원하기 때문에 족벌주의와 결합된 관리들의 부패가 중국 사회의 암 덩어리가 되고 있다. 쑨리핑 교수는 그의 블로그에서 중공의 개혁은 드러내놓고 약탈한 돈과 운의 전쟁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공통의 목표나 사회적 방향이 없고, 돈을 벌 기회를 만드는데 대한 도덕적 제한이 없으므로 사회가 전체적으로 재빨리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개발은 권력유지에 필사적인 중공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어떻게든 빠른 속도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천연자원의 낭비, 환경오염, 형편없는 상품의 질, 노동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우, 새로운 건설을 위한 토지와 주택 몰수, 폭이 커지는 빈부격차 등이다.
중공은 여러 차례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왔다. 일본이 침략했을 때 중공은 국민당의 배후에서 군대를 모집했다. 그런 후 일본을 궤멸시킨 후 기진맥진해 있던 집권당인 국민당 군대가 패배하기만을 기다렸다.
현재 국가주의는 중국인들을 통합하고 조종하는 매우 강력한 수단으로 되었다. 중공으로서는 국내에서 대만, 일본, 미국 등 국가를 중국의 적으로 부각시키기만 하면 되므로 아주 편리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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