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올해 2월 청두 주재 미국 영사관에 뛰어든 왕리쥔을 붙잡기 위해 보시라이는 70대의 경찰차를 이끌고 미국 영사관을 포위한 채 폭발물 수색을 이유로 영사관에 진입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월 보시라이는 왕리쥔을 붙잡기 위해 미국 영사관으로 갔지만 쓰촨 경찰의 제지로 영사관 진입은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보시라이측과 영사관의 충돌을 막은 쓰촨성 당서기 류치바오(刘奇葆)는 베이징 입성이 유력해졌습니다.
2월 6일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에 진입한 후 류 서기는 성 공안청에서 이 소식을 전달받고 곧바로 중앙에 보고했으며 영사관 주변에 경찰병력을 배치해 왕리쥔의 탈출을 사전 예방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이때 보시라이 역시 소식을 듣고 곧바로 장갑차를 포함해 70대의 경찰차를 이끌고 미국 영사관으로 향했으나, 쓰촨 경찰의 제지를 받고 양측은 한동안 대치 상태에서 서로 총을 겨누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습니다.
이어 보시라이가 지휘한 충칭 경찰차는 바로 영사관을 포위했고 황치판 충칭시장이 영사관에 들어가 왕리쥔과 한 시간 남짓 대화를 했지만 성과가 없자 보시라이는 폭발물 수색이라는 핑계로 영사관에 진입해 왕리쥔을 붙잡으려 했습니다. 이때 영사관 내부에서는 이미 해군과 해병대를 대기시키고 방어선을 설치한 후 담 위에서 총을 겨누고 격전준비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때 류 서기는 청두 경비구역의 병력을 출동시켜 충칭 경찰을 포위한 후 국면을 점차 통제하고 충칭 경찰의 영사관 접근을 막았습니다.
만약 당시 충칭 경찰이 영사관을 향해 돌진했다면 이는 100여년 만에 중국의 무장병력이 처음으로 미국 영토를 침략한 외교적 사고가 촉발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류 서기의 신속한 결단으로 사태가 진정되고 왕리쥔은 베이징으로 이송됐습니다.
이로 인해 류 서기는 11월 열릴 18회 당대회에서 베이징에 입성할 것이며, 후진타오 주석이 그를 중앙선전부부장으로 임명할 것이라는 소식도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왕리쥔이 쓰촨 청두 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것도 후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의 류 서기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며, 이 신뢰는 바로 왕리쥔 사건을 통해 다져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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