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보시라이를 공개심판하기 전,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서는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에 진입한 후 24시간 동안 중공 고위층에서 벌어진 내부투쟁이 폭로됐습니다. 이 내부투쟁은 크게 후진타오 진영과 저우융캉 진영으로 나뉩니다.
지난해 2월 6일 쓰촨성 청두에 주재한 미국 영사관에 진입한 후, 미국 영사관 내 중국측 직원 중 국가안전 특무는 즉각 쓰촨 국가안전국에 통지했습니다. 쓰촨 국가안전국은 베이징 상부에 보고해 당시 저우융캉 중앙 정법위 서기가 이를 가장 먼저 알았습니다. 저우융캉은 즉시 보시라이 당시 충칭시 서기에게 전화를 걸어 일체 자원을 아끼지 말고 왕리쥔을 제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보시라이는 당시 황치판 충칭시장에게 경찰을 이끌고 청두로 가서 왕리쥔을 체포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황치판은 출발 전, 왕리쥔과 1시간 동안 전화통화하면서 왕리쥔에게 영사관에서 나오라고 했으나, 왕리쥔은 거절했습니다. 황치판은 70대의 경찰차를 이끌고 청두로 향했습니다.
왕리쥔을 미 영사관에 진입하게 한 사람은 쓰촨성 공안청 부청장으로, 그는 영사관 밖에서 왕리쥔이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왕리쥔이 나오지 않자 류치바오(刘奇葆) 당시 쓰촨성 서기에게 알렸고, 류 전 서기는 후진타오 전 국가 주석에게 보고했습니다. 이후 류 전 서기는 청두 경찰에게 영사관을 포위해 왕리쥔의 도피를 방지토록 했습니다.
한편, 황치판의 충칭 경찰은 청두에 진입한 후 류치바오의 청두 경찰과 대치하게 됐고, 미 영사관은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미 해군 해병대를 완전무장시킨 다음 영사관 내에서 내부 방지선을 설치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습니다. 2월 7일 창치우진(长邱进) 국가안전부부장은 미 영사관에 들어가 왕리쥔에게 그의 안전과 정치생명을 보장한다는 저우융캉의 편지를 전했고, 왕리쥔은 미 영사관을 떠나기로 동의했습니다.
왕리쥔이 영사관을 떠난 후, 저우융캉은 보시라이에게 충칭 경찰을 철수할 것을 요구했지만, 보시라이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저우융캉은 후 주석에게 이를 보고하고, 후 주석은 직접 보시라이에게 전화해 이번 사건으로 보시라이에게 별 영향이 없을 것을 보증한 후에야 보시라이는 철수명령을 내렸습니다.
보시라이의 부패사건은 최고 검찰원 반부패국(反贪局)의 지도로 베이징 고급 검찰원이 전문팀을 구성해 조사했지만, 이 전문팀은 두 번 해체됐습니다. 홍콩언론에 따르면, 그 중 한 번은 마카오에서 보시라이의 돈세탁을 조사한 후였고, 재경(财经) 잡지의 보시라이 사건 관련 기사가 삭제됐습니다.
시사평론가 자오페이(赵培)는 보시라이에 대한 공개심판 직전에 이처럼 왕리쥔 사건의 세부 과정이 폭로된 것은 중공 당 내부가 보시라이에 대한 경미한 판결, 저우융캉을 놓아준 것에 대한 불만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면서, 중공 내부에서 가장 완고한 사람들도 중공 중앙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고, 이미 해체가 시작됐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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