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최근 해외 중문 웹사이트는 두 장의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장쩌민 전 중국 주석과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의 아내인 구카이라이가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1999년 다롄시는 시 설립 100주년을 맞았고, 당시 다롄시장이던 보시라이는 장쩌민을 초청해 1999년 8월 16일 장쩌민은 다롄에 갔습니다. 다음날은 장쩌민의 생일이었고, 이 사진은 당시 장쩌민과 구카이라이가 장쩌민의 생일파티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다른 사진은 장쩌민과 보시라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장쩌민의 일대기에 관한 책인 ‘장쩌민 그 사람(江泽民其人)’에 따르면, 1989년 6월 4일 톈안먼 사건 전, 베이징 시장 천시퉁(陈希同)은 전 중공 지도자 덩샤오핑과 좋은 관계였습니다. 장쩌민은 톈안먼 학살을 지지함으로써 권력을 잡았습니다. 덩샤오핑은 장쩌민을 승진시켰지만 천시퉁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1995년 초, 덩샤오핑은 천시퉁과 7명의 성급 간부들이 쓴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는 장쩌민이 일본 매국노였고 러시아 간첩이었으며, 그가 사망한 군인의 후손이라는 것과 과거 중공 지하당원이었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과 함께 장쩌민의 부패 증거를 폭로했습니다.
덩샤오핑은 그 편지를 중공 중앙고문위원회 부주임이자 보시라이의 아버지 보이보에게 전했고, 보이보는 장쩌민에게 그 편지를 보였습니다.
당시 보이보의 한마디면 장쩌민의 정치생명이 끝날 수 있었으나, 보이보는 그의 아들 보시라이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장쩌민과 합의를 했습니다. 보이보는 장쩌민의 죄를 덮어줬고, 장쩌민은 그 보답으로 보시라이를 승진시켜야 했습니다. 따라서 장쩌민과 보이보는 천시퉁을 체포했습니다.
이에 대해 시사평론가 장톈량(章天亮)은, “보이보는 매우 나쁜 사람이다. 그는 톈안먼 학살의 강력한 지지자였다”고 말했습니다.
시사평론가 리산졘(李善鉴)은 “보이보는 도덕적으로 진실성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문화혁명 동안 숙청됐으나 후야오방이 그를 살렸다. 그러나 권력을 쥔 후, 그는 덩샤오핑에게 보고해 후야오방의 실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16차 당대회 전, 많은 사람들이 장쩌민이 완전히 은퇴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보이보는 장쩌민의 유임을 제안했습니다. 후에 장쩌민은 보시라이를 시골 현장(县长)에서 정치국원으로 승진시켜 중앙으로 진출시켰습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은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으나, 당 내외의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장쩌민은 박해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1999년 8월 20일 다롄을 방문했습니다. 보시라이의 운전수였던 왕씨에 따르면, 장쩌민은 보시라이에게 “파룬궁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만 승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장쩌민의 다롄 방문 직후, 보시라이는 승승장구해 2002년에 랴오닝 성장이 됐습니다.
랴오닝 성장 재직시 보시라이는 고문으로 악명높은 마싼자 노동교양소를 확장하는 등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장쩌민 파벌은 18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을 보시라이로 대체하는 정변을 계획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9월 보시라이는 뇌물수수, 횡령, 권력남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곧바로 항소했습니다. 분석가들은 보시라이의 항소에 대해,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보시라이가 다른 고위관리들의 심각한 부패를 폭로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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