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9년 전 1월 17일, 자오쯔양 전 중공 총서기가 사망했습니다. 자오 전 총서기의 생일이나 기일이 되면, 지금도 자오 전 총서기가 살던 집을 방문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덩샤오핑과 장쩌민에 의해 15년간 가택연금된 자오 전 총서기가 왜 지금도 존경받고 있을까요?
9년 전 1월 17일, 자오 전 총서기는 15년간의 연금 끝에, 85세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실각원인은 톈안먼 사건에 대한 무력 탄압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자오 전 총서기의 생일이나 기일이 되면, 지금도 많은 시민들이 자오 전 총서기의 옛집에 가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종종 당국의 방해와 폭력을 당해 왔습니다.
올해 82세의 ‘공산당 중앙 농촌 정책 연구실’의 야오젠푸 연구원은 당국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만년의 자오 총서기를 만났습니다. 그는 “시민에게 사랑받는 것은, 자오 전 총서기가 진리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당국의 압력과 유혹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러한 공산당 지도자는 보기 드물다. 그는 모범이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톈안먼 사건 직전, 장쩌민 당시 상하이시 서기는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주간지 ‘세계경제도보(世界经济导报)’ 발행을 정지시켰고, 이로부터 부패 반대 시위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됐습니다. 공산당은 당시 일당독재를 지키기 위해 정치개혁, 심지어 학생과의 대화도 거부했습니다.
1989년 5월 19일, 오전 4시 50분, 학생들을 동정한 자오 전 총서기는 톈안먼 광장에서 단식투쟁중이던 학생들을 방문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오 전 총서기는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 학생들의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에 온 것은 용서를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학생 여러분은 체력을 소모하고 있다. 단식도 벌써 7일째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6월 4일, 톈안먼 광장, 창안가 및 주요 교차로에서 덩샤오핑의 명령을 받은 군대가 비무장 학생과 시민을 무력으로 탄압했습니다. 6월 하순, 덩샤오핑의 탄압 결정에 반대한 자오 총서기는 해임 및 연금됐습니다.
야오씨는 “자오 전 총서기는 반인륜범죄에 대한 반대를 선택했다. 덩샤오핑이 한 것은 역사, 중국인, 인류에 대한 범죄이다. 반인륜범죄에는 시효가 없다. 장래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 도덕의 법정, 역사의 법정, 그리고 국제법정에서…”라고 강조했습니다.
1997년 덩샤오핑이 사망한 후, 자오 전 총서기는 두 차례 서한에서 톈안먼 사건의 재평가와 연금해제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최고 지도자는 ‘세계경제도보’를 폐간한 장쩌민이었습니다. 2002년, 장쩌민은 퇴임시 차기 지도자들에게 톈안먼 사건의 재평가를 금지했고, 그 결과 자오 전 총서기는 사망할 때까지 연금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톈안먼 사건에 참여했던 중국의 인권 변호사 푸즈창(浦志強)은 “자오 전 총서기에 탄복한다. 적어도 그때 그는 진심이었다. 다른 공산당 총서기와는 다르다. 톈안먼 사건으로 그는 자신의 이념을 관철했다. 그 때문에 죽을 때까지 연금되었다. 공산당 통치하에서 정의의 힘은 비극의 운명임을 말해준다”고 말했습니다. 2005년 초 자오 전 총서기의 사후, 그의 딸은 “아버지는 마침내 자유로워졌다”고 한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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