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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과 리커창의 관계... 심복인가? 적인가? (2)

편집부  |  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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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 정권은 변이된 정치제도이기 때문에 정치 체제의 권력구조, 권력의 의의와 효능도 민주국가와 다르다.


민주국가에서 정부 관료의 권력은 국민의 감독과 법률에 의해 제약되고 사회와 국민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관료의 권력행사는 정부의 정상적인 운영의 일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중공 정권에서 관료의 권력은 기득권 집단이나 관료 자신의 사익을 위한 도구이자 당국이 사회나 국민을 강권 지배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때문에 권력은 중공 내부의 다른 파벌이 반드시 투쟁해 손에 넣고 싶은 것이 되었다.


중공 내부에서는 관료가 정치자원을 얼마나 장악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권력의 크기가 정해진다. ‘정권은 무력으로 이길 수 있다(槍杆子里辺出政權)’를 신봉하는 중공의 고관들은 최고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우선 군 지배권을 장악한다.


군 외에 ‘필간자(筆杆子, 표현이나 선전을 의미)’와 ‘도파자(刀把子, 사람의 생명을 정할 권리를 의미)’, 다시 말해 사상 선전계통과 법원, 검찰원, 공안국 등을 관할하는 정법계통도 있다.


군과 사상 선전계통 및 정법계통, 이 세 가지 권력을 쥘 수 있다면 중공의 주요 권력을 손에 넣은 것과 다름없다.


그 예로 제17기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의 경우 저우융캉은 서열 9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장쩌민의 후원이 있고 또 정법계통과 일부 무장경찰부대 지배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실권은 서열 1위의 후진타오와 거의 같았다.


또 현재 제18기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서열 6위의 왕치산은 서열 1위의 시진핑에게 협력하고 적극적으로 반부패 운동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실권은 시진핑 하에서 다른 5명의 상무위원보다 높다.


그렇다면 중공 국무원 총리는 어느 정도 실권을 갖고 있을까? 과거 역대 총리를 보자. 중공이 정권을 잡은 후 현재까지 7명의 총리가 있었다.


이 7명의 총리 중 유일하게 저우언라이 총리만이 일부 군과 정보기관의 지배권을 쥐고 있었다. 그럼에도 저우는 항상 마오쩌둥의 눈치를 보았다. 그 외 6명은 앞의 세 가지 주요 권력을 장악할 수 없었다.


특히 장쩌민이 국가주석이었던 때의 주룽지 총리와 후임 원자바오 총리는 총리로서의 실권이 훨씬 적었다. 장쩌민이 당내 최고 권력을 장악한 후, 당내 관료들의 부패와 비리를 묵인함으로써 자신과 친척을 중심으로 한 장쩌민 파벌세력을 확대했다.


때문에 주룽지 총리는 세력이 강한 이 이익집단에 제압되어 자신의 경제개혁과 반부패 등을 전혀 실현할 수 없었다. 또 후진타오 정권에서도 장쩌민 파벌세력이 여전히 강했기 때문에,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도 장쩌민 파벌에 제한되었다.


후진타오 정권에서는 장쩌민의 심복인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이 군 지배권을, 저우융캉이 정법계통 지배권을, 리창춘이 사상 선전계통 지배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후진타오의 결정이 중국의 정치중추인 중난하이를 넘어 다른 지방권력을 제어할 수 없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니 총리인 원자바오는 더욱 더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중공 총리는 중공 내부의 집사에 지나지 않는다. 당내 세 가지 주요 권력을 쥔 사람의 지지가 없으면 중공의 총리는 그 권한을 거의 발휘할 수 없다. (계속)



김주혁 기자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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