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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당(黨)문화] 제5장 선전 중에서 흔히 보는 당문화(1)·상

편집부  |  202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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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OH 자료실]


목차


들어가는 말


1. 공산당이 없으면 신(新)중국은 없다


1)노래와 거짓말


2)시기마다 껍데기만 바뀌고 내용은 그대로


3)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은 어떻게 하는가


4)공산당이 중국에 가져다준 것


**********


들어가는 말


중공 통치하의 중국에는 다른 나라와는 색다른 점들이 많다. 사람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바로 도처에 표어와 구호가 난무한다는 것이다. 네티즌들이 수집한 “중국표어대전(中國標語大全)”의 내용에는 가족계획, 범죄와의 전쟁, 육림(育林), 보통교육 보급과 문맹퇴치 등이 있으며 또 형형색색의 정치구호가 있는데, 그 거칠고 야만적이며 황당무계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입이 벌어지게 할 정도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몇십 년 동안 이런 환경 속에서 생활해 왔기에, 이것을 인류 사회의 정상적인 상태라고 여기면서 또 세계 여러 나라들도 이럴 것이라고 여긴다. 때문에 이상한 일을 겪어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산당은 무엇 때문에 문화선전방면에서 표어와 구호의 작용을 이렇게 중시하는가? 그 원인은, 다음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첫째, 표어와 구호는 간단하고 입에서 잘 나오며 생생하고 기억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작용이 직접적이고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이다. 둘째, 표어와 구호는 종종 아주 간단하기에 복잡한 논증과정을 포함할 수 없다. 때문에 그것들이 선전하는 이론 정책 자체의 황당한 오류와 겉만 번지르르한 것을 덮어 감출 수 있고 사람들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지난 몇십 년간 중공 폭정(暴政)의 역사를 관통하는 한 세트의 구호가 있다. 이 일련의 구호는 중공의 집단목표를 집중적으로 체현하였다. 중공은 일찍이 아주 큰 힘을 들여 이것을 반복적으로 주입했으며, 또 여러 가지 문예형식으로 해설하고 과장하였다. 비록 국내외적인 형세의 변화에 따라, 어떤 때는 구호의 형식만 바뀌거나 또 다른 일종 혹은 여러 가지 형식이 나타났지만, 그 정신은 실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목적은 바로 공산당에 대한 인민들의 의지와 순종을 공고하게 하여 공산당 일당독재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 일련의 구호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은 없다”


“엄마아빠가 친하다 해도 당보다는 못하다”


“당의 말을 듣고 당을 따라가자”


“당이 하라고 하면 무엇이든 한다”


우리는 제3장에서 중공의 주입수단을 논술하였다. 선전기구, 문학작품, 교과서거나 아니면 영화, 희극, 가무, 곡예 등 어떠한 문예형식이든지 막론하고 모두 악기(樂器)처럼 중공이 당문화를 주입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물론 시대 혹은 당시의 사회형태, 경제형태의 차이에 따라 구체적인 창작자가 사용한 소재가 달라질 수 있고 창작물이 달라질 수도 있다. 때문에 이런 악기들 속에서 나온 곡은 곡조(曲調)가 천차만별일 수 있지만, 표현하는 주제는 도리어 위 네 가지 구호와 궤를 같이 한다. 만약 구체적인 각종 현상에서 그것들의 주제와 표현하려는 것으로 되돌아가면, 위 네 가지 구호는 바로 선전 중에서 늘 보는 당문화의 고도의 개괄이며, 또 선전 속에서 늘 보는 당문화 창작지도의 대강(大綱)이다. 만약 선전 중에서 늘 보는 당문화의 다양한 표현의 실질을 똑똑히 알고자 한다면, 이 네 가지 구호를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1. 공산당이 없으면 신(新)중국은 없다


1)노래와 거짓말




▲ [사진=에포크타임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은 없고/ 공산당은 민족을 위해 고생하며/ 공산당은 한마음으로 중국을 구하려 하네./ 그는 인민에게 해방의 길을 가리켜 주었고/ 그는 중국을 광명으로 나아가도록 지도하고/ 그는 항일 전쟁을 8년 이상 견지했고/ 그는 인민의 생활을 개선했고/ 그는 적 후방의 근거지를 건설했고/ 그는 민주를 실행했으니 좋은 점이 많다.”


아주 널리 전해진 중공을 찬양하는 이 노래는 1943년에 창작되었다. 원래 당시 가사는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이 없다”였다. 1950년 마오쩌둥은 “중국” 앞에 하나의 “신(新)”자를 추가했고, 가사 역시 오늘날과 같이 변했다.


이 “신(新)”이라는 글자는, 아주 궁리를 해서 추가한 것이다. 당시 중국인, 모두 중화민국(中華民國)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기에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이 없다”고 말하면 이 사람들의 인생경험과 일치하지 않기에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한 가지 이유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산당의 사전에서 “새로 생긴 사물”은 특정한 함의가 있는 명사이다. 만약 어떤 물건이 새로 생긴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반드시 역사의 조류에 부합되는 것으로 “강력한 생명력과 원대한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의 어떠한 결점이든지 모두 “새로 생긴 사물의 미성숙”에 의한 것이고, 장래에 언젠가는 이런 결점들이 모두 하나하나 극복될 것이다. 공산당은 확실히 이렇게 자신을 변호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은 이렇다. 1942년, 국민당 정부를 이끌고 일본과 전면 항전을 진행한 장제스(蔣介石)가 『중국의 운명』이란 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디가 “국민당이 없으면 중국은 없다”는 것이다. 옌안(延安)에 숨어 “정풍(整風)”하던 공산당은 이에 날카롭게 맞서서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은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발표했으며, “공산당이야말로 항일의 튼튼한 기둥이다”라고 성명했다. 때문에 이 노래의 주요내용은 “중공이 전국 인민을 지도하여 일본침략자를 물리쳤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많은 역사자료들이 증명하다시피 “항전을 지도”했다는 것은 중공의 주관적인 염원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도 아니다. 큰 적을 앞에 둔 위기의 시각에, 중공이 진정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어떻게 기회를 틈타 자신을 발전시키고 최종적으로 정권을 탈취하느냐는 것이었다. 중공은 명목상 “항일민족통일전선”을 만들고, 여론을 이용해 인심을 매수했지만, 암암리에 “1할은 항일하고, 2할은 국민당과 대처하며, 7할은 자신을 발전시켰다.” 심지어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과 암암리에 내통하여 아편을 밀거래하기도 했다.


반드시 지적해야 할 것은, 항일전쟁은 1931년 9.18 만주사변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고 14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국민당은 1932년에 “1.28 쑹후(淞?)항전”을 했고, 1933년에는 장성(長城)항전을 진행했다. 그러나 중공은 도리어 9.18사변이 발생한 두 달 후, 장시(江西)에 할거정권을 세웠다. 중공이 줄곧 “8년 항전을 견지했다”고 말하는 자체가 바로 1931년부터 1937년 사이에는 전혀 항전에 참가하지 않았음을 자백하는 것이다.


중국대륙에서 출판한<류사오치 연보(劉少奇年譜)>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강남지역에서 중공 최고 지도자였던, 류사오치 군령(軍令)과 보고를 전부 살펴보아도, 의외로 항일에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 어떻게 중화민국 군대를 타격하고 분열시킬 것인가에 온통 집중되어 있다. 중공이 참여하여 일본과 벌인 대규모 전투라고는 오직 “평싱관 전투(平型關戰役)”와 “바이퇀 대전(百團大戰)”이 있을 뿐이다. “평싱관 전투”를 말하자면, 중공은 근본적으로 “이 전투를 지휘하고 참가한 지도와 주력부대”가 아니었으며, 적군을 매복 기습한 보충부대였을 뿐이다. 이 전투는 항일 전쟁이 시작된 후 중공이 거둔 최초의 큰 승리라고 알려졌지만, 중공 역사책에는 제2차, 제3차의 승리를 언급하지 않았다. 원인은 중공이 참여한 큰 전투라고는 오직 위 두 차례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이퇀 대전(百團大戰)”은 중공 내부에서 도리어 당 중앙의 전략방침을 어긴 것이라고 여기며, 전공을 세운 펑더화이(彭德懷)는 도리어 “죄를 지은 장수”의 하나가 되었다. 1959년의 루산(廬山)회의에서, 마오쩌둥은 다시 한 번 이 사건을 가지고 펑더화이를 공격했다. “일부 동지들은 일본이 땅을 적게 차지할수록 좋다고 여기는데, 나중에야 인식을 통일했다. 일본이 땅을 많이 점유하게 해야, 애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장제스의 나라로 변해 버린다.” “우리는 바로 국민당과 일본인이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게 해야 하며, 우리는 그 속에서 발전해야 한다.” 1972년, 마오쩌둥은 중국을 방문한 일본의 다나까 가꾸에이(田中角榮) 수상에게 “당신들은 사과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오지 않았더라면(침략하지 않았다면), 우리 공산당이 정권을 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중공이 적극적으로 항일했는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일본을 지지하여 중국을 침략하게 했는지는, 마오의 대답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인민영웅기념비”에 새겨진 비문도 항일에 대한 중공의 태도를 잘 설명하고 있다. “3년 이래, 인민해방전쟁과 인민혁명전쟁 중에서 희생된 인민 영웅들은 청사에 길이 빛나리라! 30년 이래, 인민해방전쟁과 인민혁명 중에서 희생된 인민영웅들은 영원히 길이 빛나리라!” 여기서 분명한 것은 중공의 진정한 적은 국민당이었고, 8년 동안 중화민족이 외부의 침략에 저항해 목숨 걸고 피 흘려 싸운 전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중앙 당사(黨史)연구실, 국가 당안국(國家?案局)에서 운영하는 “민족 혼”사이트에 나열한 “항일전쟁시기” 희생자 명단 중, 절대 다수는 모두 국민당과 전투에서 사망했다. 단지 사망한 시기가 “항일전쟁시기”였을 뿐이다. 중국 민중들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전투영웅 둥춘루이(董存瑞), 추사오윈(邱少雲), 황지광(黃繼光) 등도 항일전쟁에서 희생된 사람은 없다.


중공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은, 마오쩌둥에 의해 “산 아래서 복숭아를 딴다(下山摘桃子)”고 비웃음을 당했던 장제스 국민당 정부가 1937년부터 1945년 사이에 국민혁명군을 이끌고 전쟁터에서 일본군과 소형전투 총 3만 8,931차례를 치렀고, 중대한 전투 1,117차례와, 큰 전투 22차례를 치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희생된 고급장교만 200명 이상이고 사망자수는 330여만 명에 달한다. 타이얼좡(台兒莊), 쑹후(淞?), 창사(長沙), 두산(獨山) 등 정규전쟁과 상하이(上海), 젠차오(?橋) 등 공중전에서 일본군을 크게 타격했고 최종적으로 간고하고 탁월한 노력을 통해 나라를 지키는 전쟁에서 승리했다.


공산주의 이상이 이미 사람마음을 미혹시키는 모든 능력을 상실한 오늘날, 중공은 민족주의 깃발을 자주 사용하면서 스스로 중화민족의 정통대표라고 자칭하기에, 절대로 “항일전쟁의 튼튼한 기둥”이라는 월계관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의 진상은, 전국 인민이 온 힘을 기울여 외부 침략자에 대한 반격이 가장 필요할 때, 중공은 도리어 수치스럽게 조국과 인민을 배반했다.


2)시기마다 껍데기만 바뀌고 내용은 그대로




 ▲ 항일전쟁 전: “내전을 중단하고 공동으로 항일하자”(중화민국 정부군 170만 Vs 중공군 7만)항일전쟁 후: “전 중국을 해방시켰다”(중화민국이 항일전쟁으로 심각한 피해를 보자 중공은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고 90만 정규군을 동원해 정권을 탈취했다.) [사진=에포크타임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은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이런 구호는 이미 몇십 년 전의 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중공의 선전 아래, 구호에 나오는 “신중국(新中國)”은 중공이 1949년 건립한 “신중국”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중공이 정권을 건립한 후 각 시기의 중국을 가리키며, 이 구호는 시기마다 각기 다른 내포와 표현이 있다.


이 구호가 바로 당문화 선전 중의 지도사상이며 여러 가지 구체적인 선전내용은 모두 그것을 지도로 삼았다. 선전 중에서 각종 방법을 사용하여 각종 구호를 말하고, 각종 좋은 일을 말하며, 각종 사회현상을 해부하는데, 모두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이용한다.


아래에서는 이 구호가 다양한 역사 시기 선전 중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 1949-1959 정권 강화 단계


문공단(文工團), 양거대(秧歌隊), 퍼레이드, 표어, 전단지 중에서 말하는 것은 모두, “세 개의 큰 산을 타도하고 중국 인민은 일어났다. 해방을 이룬 것은 공산당에 그 공적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중공이 정권을 건립하기 전에 있었던 외적의 침입과 중공의 무장봉기로 인한 장기적인 혼란국면은, 바로 “낡은 중국”의 “암흑”에 대비해 “신중국”의 “우월”을 돋보이게 하는 밑천이 되었다.


토지개혁에서 “마오쩌둥은 인민을 구원한 위대한 별”이 되었고, “오직 공산당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한국전쟁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 보가위국(保家衛國)”이라고 선전했는데 그 의미는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이 망한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전쟁은 북한의 김일성이 주동적으로 남한에 발동한 침략전쟁으로, 유엔에서 결의를 통해 북한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을 향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미국이 중국을 노렸다고 한다면 이는 완전히 중공의 허구적인 조작이다. 1950년 가을 린뱌오(林彪)가 병을 핑계로 정부에 나오지 않을 때 다음과 같이 지적한 적이 있다. “미국은 중국을 침략할 의도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3년 내전 때 이미 개입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공은 50만 명 이상의 관병을 희생하면서 한국전쟁에 참가했으며, 육성시킨 것은 도리어 백여만 명의 자국민을 학살하고 굶어죽게 한 북한 독재정권이었다. 북한이 고집을 부려 개발한 핵무기는 현재 중국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백모녀(白毛女)>를 대표로 한 각종 형식의 문예작품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낡은 사회”와 “신(新)사회”의 대비를 선전한다. 낡은 사회는 1949년 이전의 전체 사회 역사를 가리키는데, 국민당 통치, 북양(北洋)정부, 청나라 더 나아가 더 오래 전 고대 등을 가리킨다. 또는 구시대(舊時代)라고 부른다. “온갖 악을 갖춘 낡은 사회” 또는 “신구 사회 두 하늘”이라고 말한다. 1949년 중공이 정권을 건립한 것을 경계로 그 이전은 반동, 압박, 암흑, 착취, 추함, 우매, 재난, 공포, 불의(不義)이고, 그 이후는 진보, 해방, 광명, 복지, 아름다움, 문명, 행복, 평화, 정의 등이다. 하나는 “천당”이고, 다른 하나는 “지옥”이라는 것이다. 중심은 바로 공산당이 없으면, “신사회”와 “신중국”이 없다는 것이다.


▶1959-1966 “사회주의” 건설단계


중공은 “대약진”과 “인민공사(人民公社)” 운동 중에서 선전하기를 “한 무(畝)에서 만 근을 생산하고, 강철생산을 갑절로 늘려 10년이면 영국을 추월하고 15년에 미국을 따라잡자.”, “공산주의로 달려 들어가자.”, “전 인민이 강철을 정련하다.”, “철강산업을 기간산업으로 하자.”, “마오 주석은 우리에게 대약진, 공사화를 하고, 공산주의를 실현하라고 하셨다.”, “인민공사는 공산주의 천당으로 올라가는 하늘 사다리다.”


이런 선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산당의 지도하에 중국이 소위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목표”를 실현하고, 공산주의를 실현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때문에 중국이 강국이 되려면 공산당에 의지해야 하고 공산당이 없으면 “공산주의를 실현”한 “신중국”이 없다. 하지만 중공이 지금까지도 감히 공개하지 못하는 것은, 이 당시 중국에서 3,4천만 명이 이것 때문에 무참하게 굶어 죽었다는 것이다. 중공은 이것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으로 “3년 자연재해”라고 부른다.


▶1966-1976 문화대혁명


모범극, 마오쩌둥 사상 문예선전대, 대자보, 영화, 선전 포스터, 교재 등을 전국에 널리 보급하고, “무산계급 독재 하에서 계속 혁명하자”, “전국의 산하를 온통 빨갛게 하자.”, “전 인류를 해방하자.”, “무산계급혁명사업의 후계자가 되자.”, “혁명 사업을 위해 한껏 솜씨를 발휘하자.”, “착취계급의 일체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습관을 크게 타파하자.”, “일체 온갖 잡귀신을 타도하자.”, “각 문화영역을 포함한 상부구조에 대해 무산계급의 독재를 실행하자.”고 선전했다. 이름은 혁명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공산당이 계속 지도하려는 것이다. 근본적인 의미는 반드시 시시각각 경각성을 높여 도처에 존재하는 “적”들의 “파괴와 전복”을 제거하여, 중국 사람들이 또 다시 “온갖 악을 갖춘 낡은 사회”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되풀이해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며, 공산당이 중국에 가져온 “사회주의제도”하의 이른바 “신중국”을 공고히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1976-1992 독재정치 하의 경제개혁개방


1976년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중공은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고, “4인방을 타도하자”, “10년 동란”, “10년 큰 재난”, “4인방의 앞잡이, 잔당” 등을 고취하였다. 또 중공 통치가 위기에 직면하여 어쩔 수 없이 민족에 대한 발광적인 약탈과 파괴를 중단하지 않을 수 없고 사회 각 층면이 재생되어 일으킨 변화를 이용해, 당의 “집권능력”과 “잘못을 바로잡는” 결심을 증명했다. 또 당이 “혼란 상태를 수습하여 바로잡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했고, 중국이 혼란 상태를 벗어나 “신중국”을 건설하려면 반드시 공산당에 의지해야 함을 증명하였다.


1979년 후 중공은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을 중점적으로 선전했다. 지도사상은 공산당이 없으면, 경제적으로나 생활에서 일체 좋은 변화가 없다는 것이며, 중공이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의 사상을 포기하고 강제적으로 경제와 과학기술영역을 “지도”한 후, 사회가 정지에서 발전으로 나아가고, 봉폐에서 개방으로 나아간 것을 “중공 제11기 3중전회”의 공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중공이 정부를 건립하기 전에, 중국은 줄곧 개방정책을 행했음과 중국사회의 봉폐는 완전히 중공이 만들어냈다는 것은 무시하였다.


1989년 이후, 중공은 “자유화”를 반대하고, 6.4학살의 정확성을 선전하였다. 국민경제는 중공의 층층 속박을 벗어난 후 점차적으로 재생되었고 전 세계적인 경제 조류 속에 융합되어 들어갔는데, 중공정권의 합법성을 증명하는 주요한 논거가 되었다. 중공은 이 기회를 빌려 혼란한 논리를 만들어 공산당이 학생들을 탄압하지 않았으면, 중국은 해체되고 난리가 났을 것이며 오늘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즉, 중국은 공산당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1992-1999 경제발전시기


“GDP성장”, “거시 조정”, “발전이야말로 확실한 도리”, “홍수와 투쟁에서 승리”, “올림픽 신청”, “홍콩반환”, “마카오 반환”, “3강(講)”, “인민생활수준제고” 등 각종 선전은 공덕을 찬양했다. 즉, 공산당이 조국의 강토를 수호하고 경제건설을 지도했으며 중국의 국제적인 지위를 제고하고 인민의 생활수준을 제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을 따져보면, 중국의 잠재 소비량, 중국인의 근면성, 과거 몇십 년 동안 사회경제에 대한 중공의 파괴로 조성된 중국인의 값싼 노동력, 대량 국제자본의 유입, 또 거대한 경제적 투입, 생태자원과 사회도덕의 파괴를 대가로 한 이른바 경제의 “고도성장”은, 현재 일정 정도 민중들의 물질수요를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중공은 도리어 이 기회를 이용해, 마치 모든 성과는 오직 공산당에 의거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듯이 계속적으로 고취하고 있다.


▶ 1999-현재


“3개 대표”, “파룬궁 적발 비판”, “평화적인 굴기(和平?起)”, “8영8치(八榮八?)”, “조화사회(和諧社會)”, “강국부민(强國富民)”, “경제기적”, “공산당원 선진성 유지”, “사스에 대항”, “후진타오-원자바오 신정부(胡?新政)”, “과학발전관” 등. 중공은 여러 가지 매체 중에서 제멋대로 물질적인 소비의 번영과 GDP 성장을 선전하고, 잘사는 사람의 생활방식을 선전하며, 부동산과 각종 건설항목의 시설을 선전한다. 중공의 이른바 “경제개혁”은 본질적으로 사회모순을 완화시키고 자신의 통치를 연장하기 위한 것이지, 국가와 민족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맹목적인 “고도성장”에 뒤따른 폐단은 점차적으로 사회의 불만을 일으켰다.


예를 들면 생태환경의 파괴로 조성된 오염, 자연자원에 대한 약탈과 파괴로 인해 빈번하게 나타나는 “백년” 심지어 “천년에 한 번 있을” 자연재해, 도시와 농촌 및 서부와 동부의 극단적인 발전 불균형으로 조성된 사회의 빈부격차 심화, 국가 장기적인 발전의 기초인 교육방면에 대한 장기적인 저투자, 의료방면의 불합리한 정책 및 물욕에 대한 극단적인 추구가 가져온 사회도덕의 타락과 부패 등이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새로운 문제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중공은 “조화사회”와 “후진타오-원자바오 신정부”, “지속 가능한 발전” 등을 강력하게 선전했고, 이런 “과학”, “현대”란 허울을 쓴 새 명사를 이용해 현실에 불만이 있는 중국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키려고 시도했으며 사람들에게 중공은 여러 가지 문제를 근절할 “결심이 있다”는 가상을 심어주었다. 중국 문제는 그래도 결국 당에 의지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중공은 국경절 열병식을 대대적으로 행하고, 사이트와 매체를 이용해 군대와 무기건설을 선전했으며, 대만을 공격하고 일본을 공격하는 것을 고취하며, 대국굴기(大國?起)와 철혈확장(鐵血擴張)을 선전했다. 그 의도는 공산당이 중국의 국력과 군사력을 확장시켰고, 공산당이 정권을 건립한 후 해놓은 “좋은 일”이 없었다면 오늘날 “신중국”의 대국(大國)지위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계속) / 에포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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