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오랫동안 고구려사를 이론(異論)의 여지없이 한국사로 보았다. 그러던 중국 역사학자들이 1994년부터 고구려는 중국의 변방정권이었으므로 당연히 중국사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고구려 민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이므로 소수민족 역사에 포함되어야 한다고도 주장하였다.
2000년부터는 고구려사 연구자를 양성하는 사업을 벌여 100여명의 학자가 자료수입 또는 유적 발굴에 참여하였으며, 이들은 고구려의 역사를 국내성을 수도로 정한 시기는 중국사, 평양 천도 이후는 한국사에 포함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2001년 북한이 유네스코에, 평양일대에 보존된 고구려 고분변화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달라고 신청하였다. 이 때 중국은 심사국의 자격으로 북한의 유적을 돌아보고 관리 소홀과 접근의 어려움을 들어 등재를 보류시키는 데 앞장섰다. 이어 자국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보수 발굴하면서 세계문화유산의 등재를 신청하였다.
왜 그랬을까?
1992년에는 한중수교가 이루어져 많은 한국인들이 만주일대로 몰려가 고구려와 발해유적을 찾아갔다. 한국인들은 단순한 관광이나 유적 답사의 차원을 넘어서는 행태를 보였다. 그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이러하다.
승용차에 “고구려는 우리 땅” 또는 “백두산은 우리 땅” 따위의 프랑 카드를 걸고 돌아다녔다. 또 많은 제물과 제수를 한국에서 꾸려가서 울긋불긋한 제복을 입고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며 제사를 올리기도 하였고 제주를 천지에 뿌리기도 하였다.
또 백두산 정상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만세 삼창을 소리 높여 외치기도 하였다. 연변 일대를 돌아다니면서도 거리나 술집에서 “간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면서 통일이 되면 우리가 찾아야 한다고 떠들었다. 연변일대에 1백만명이 넘게 거주하는 조선족이 한국과 연대하여 앞으로 독립을 요구할지 모른다는 의구심도 있었다.
만약 일본인들이 광하문 네거리에 일장기를 걸어놓고 '서울은 우리땅 ,고토수복' 이라는 플래카드
앞에서 '천황폐하 만세 ' 삼창 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처분하겠는가?
이러한 한국인들의 유치찬란한 행태와 사고방식은 도데체 어디에 뿌리를 박고 나오는 것일끼?
분열국가와 약소민족이라는 열등감 주변강대국에 대한 피해의식과 질시섞인 부러움에서인가
민족주의 교육탓일까? 서구자본주의를 조금더 일찍 받아들인 덕분에 과거에 조공을 가져다 바치던
되놈 너희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한수위라는 우월감에서일까? 지금 끊임없이 잘나가는 초강대국
미국을 흠모한 나머지 마돈나의 히트곡 '처녀처럼-like a virgin' 과 같이
미국인처럼 사고와 행동을 함으로써 잠시라도 미국인이 되고 싶은 욕망에서일까?
분명한 것은 한국인의 네쇼날리즘의 표현방법은 비성숙하고 본래의 국가 사랑 의도와는 빗나간
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라는 것이다.
-자료 출처 -
강효백 저 차이니즈 나이트 (한길사 )
오마이 뉴스 04 년 3월 11일자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