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메모리 반도체의 회로도, 레이아웃 도면 등 반도체 관련 첨단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하려던 시도가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공조수사로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첨단수사부(부장검사 이건주)는 28일 자신이 다니던 반도체칩 개발회사의 가전제품 모터제어용 비메모리 반도체칩 설계 및 양산 기술을 몰래 빼돌린 뒤, 중국 현지 공장에서 복제품을 대량 위탁생산하려 한 혐의로 전 ㅇ사 영업이사 박모씨(42) 등 전직 임원 3명을 구속기소하고 사외이사인 ㅎ대 교수 곽모씨(56)를 불구속기소했다.
◇어떻게 빼돌렸나=이번 기술 유출에는 회사의 임원뿐 아니라 회사 업무를 감독해야 할 사외이사인 현직 대학교수까지 가담해 충격을 주고 있다. 게다가 정부에서 지원하는 대학연구소가 반도체칩 복제품을 개발하는 ‘중간 기지’로 활용됐다.
지난해 5월 ㅇ사가 해외영업 부진으로 경영난에 시달리자 박씨는 기술이사 황모·김모씨에게 기술을 빼돌려 세가지 모델의 반도체 복제품을 중국 공장을 통해 싼 값으로 위탁 생산해 중국시장에 판매하자고 제안했다.
황씨와 김씨는 사외이사인 곽교수에게 동참을 요청했고, ‘솔깃한 제안’에 넘어간 곽교수는 이들이 퇴사하면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대학 연구센터에 조교수로 채용해 반도체를 복제키로 했다.
같은해 6월 황씨는 비메모리 반도체 회로도 등을 메모리스틱에 복사해 갖고 나왔다. 김씨는 회사 밖에서 인터넷으로 파일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도록 인터넷 웹하드에 반도체 회로도를 저장해 놨다. 퇴사한 황씨와 김씨는 ㅎ대학 조교수로 채용돼 반도체 복제품 개발을 시작해 9월에 복제품 생산을 위한 반도체 회로도면을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ㅂ대와 ㅇ대 교수들도 돈을 받고 회로도면을 제작하는 데 동참했다.
12월 복제품 반도체 판매를 위한 회사를 국내에 설립한 박씨 등은 빼내온 기술과 도면을 중국내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ㅅ사로 보내 복제 반도체로 구성된 웨이퍼 시제품 12장을 만들었다.
◇어떻게 잡았나=국정원이 해외정보망을 통해 입수한 첩보와 박씨의 허술한 e메일 관리가 수사의 단초가 됐다.
올해 3월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는 박씨가 유출한 반도체 기술로 중국 현지에서 양산을 추진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또 ㅇ사는 퇴직한 박씨의 회사 e메일 계정을 정리하다 ‘수상한 내용’을 발견해 국정원에 제보했다.
박씨가 외부 e메일 계정으로 들어오는 메일을 자동으로 회사 e메일 계정으로 ‘포워딩’되도록 설정해놓은 것을 깜빡 잊고 그대로 놔둬 박씨가 황씨, 김씨 등과 수시로 반도체 복제기술 개발에 대해 주고받은 e메일이 ㅇ사에 들통난 것이다.
3개월간 수사를 진행한 국정원은 관련 자료를 지난 6월에 서울중앙지검에 이첩했다. 신속한 공조수사로 첨단 비메모리 반도체기술이 해외로 유출돼 대량생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
◇유출시 파장은=이번에 유출된 비메모리 반도체 기술은 아직 중국에서 양산하지 못하는 고급 반도체칩이다. 피해업체인 ㅇ사는 피해액이 2천3백50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중국에서 복제 반도체를 양산하기 시작한다면 가격 경쟁력 면에서 국산 반도체가 뒤지기 때문에 국내 반도체 업체에 심각한 피해 발생이 불가피하다. 특히 중국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5년내 한국을 추월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정보처리를 목적으로 제작되는 반도체로 고도의 설계기술을 필요로 한다.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반도체 산업보다 고부가가치 시장을 형성해 전세계 반도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영경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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