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관계 고위직 여성 약진…(시사저널)
대륙 휩쓴 치맛바람 “남자들 꿇어”
중국 정·관계 고위직 여성 약진…외교 쪽은 거의 ‘남녀 동등’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다.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시대의 대표적 여성 비하 표현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을유년(乙酉年) 닭 해를 맞아 중국에서는 암탉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요즘 중국에서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칭하이성(靑海省)이다. 동부 연해에 치중된 불균형 발전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고 중국 전역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 2001년부터 야심차게 시작된 서부 대개발 계획의 핵심 지역이기 때문이다. 칭하이성은 최근 또 다른 이유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이 전략 지역에서 여성 성장이 탄생한 것이다.
‘서북 개발’ 핵심 지역 성장도 여성
올해 49세인 송시우옌(宋秀巖)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원래 베이징 부근의 톈진(天津) 출신이었으나, 어릴 적 부모를 따라 칭하이성으로 이주한 후, 줄곧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칭하이성위원회 부서기와 부성장을 거쳐 이번에 칭하이성 성장이 되었다.
칭하이성은 중국 서부 티베트 고원 동쪽에 있으며, 중국 대륙에서 네 번째로 넓은 성이다. 고원 지역으로서 땅이 척박하고 경제가 낙후했을 뿐만 아니라, 소수 민족 문제가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서부 대개발의 거점이다. 이처럼 비중이 큰 지역의 총책임자로 여성이 등장했다는 것은 중국인들에게 경이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여성 성장의 등장이 1983년 장쑤성(江蘇省) 구시우롄(顧秀蓮) 성장 이후, 신중국 건국 이래 두 번째라는 사실도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은 여권이 신장되고 여성의 정치 참여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1월 기준으로 세계 각국 여성 의원 비율은 평균 14.8%인데, 중국은 그보다 훨씬 높은 21.8%이다. 반면 한국 국회의 여성 의원 비율은 겨우 5.9%이다.
1954년 중국에서 제1기 전국 인민대표대회가 열렸을 때, 여성 대표는 1백47명으로 전체의 11.9%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개혁 개방 이후 여성 간부의 활동 환경은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2000년 말에는 여성 간부가 1천4백89만명에 달했다. 이는 전체 간부의 36.2%를 차지하는 수치였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중국 여성 정치인으로는 단연 우이(吳儀)가 꼽힌다. 그녀는 중국 최고 행정기관인 국무원의 부총리 4명 중 한 사람이며, 2003년 사스 파동 이후 국가 위생부 부장(장관)을 겸임하고 있다. 우이는 지난 해 <포브스>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여성 100인’을 선정했을 때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뒤를 이어 2위 자리에 올랐으며, 지난해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명단에도,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함께 나란히 ‘국가 지도자 그룹’ 항목에 올랐다.
‘담판의 귀재’라고 불리는 우이는 대외무역부 부장으로서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대미 교섭에 적극 나섰으며, 슈퍼 301조ㆍ지적재산권 등을 둘러싸고 미국과 담판할 때 놀라운 언변을 자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게 된 계기는 사스 위기 때 보여준 위기 대처 능력과 리더십이었다. 당시 우이는 사스 예방 퇴치 지휘부의 책임자로 나서 중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중국 관가에서 특히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진 분야는 외교 실무 쪽이다. 지난해 말, 브뤼셀 대사로 임명된 장치웨(章啓月)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으로서 최장기 활동(만 6년)을 하고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속에 영전했다. 중국은 국가 외교 정책 관련 정보를 엄격히 단속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과 관련한 대외 창구는 외교부 대변인이 거의 유일하다. 그래서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입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외교부 대변인들이 임무를 마친 후 대체로 중국 외교의 핵심 국가에 대사로 발령되는 사실은 중국에서 외교부 대변인의 위상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1982년 외교부 대변인 제도가 생긴 이후 지금까지 대변인 21명이 거쳐갔다. 이 중 장치웨는 열아홉 번째 대변인이고 여성으로서는 세 번째다. 또한 장치웨가 대변인 활동을 시작한 1999년 1월의 나이는 39세였다. 이 점도 그녀를 특별히 주목되게 한 이유가 되었다.
1970년대 중국이 세계와 활발히 접촉하기 시작한 이후, 해외 공관에 파견된 여성 대사는 37명이다. 초기에 여성 대사가 파견된 국가는 대다수가 외교적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의 중소 국가였다. 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변화가 일기 시작해 외교부 초대 여성 대변인이었던 리진화(李金華)가 뉴질랜드 대사로 임명되었다. 이 때부터 세계는 중국 여성들의 ‘치맛바람’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리진화를 필두로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서유럽 주요 국가에 여성 대사들이 속속 입성하고 있다. 2004년 3월 몽골족 여성 대사 추안잉(傳瑩)이 오스트레일리아 대사로 임명되었고, 이번 장치웨가 브뤼셀 대사로 임명된 것은 그야말로 중국 외교계가 남녀 평등 시대로 한 발짝 더 다가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 등 최고위층에는 진입 못해
중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 당국이 모든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참여를 ‘여성 해방’의 필수 조건으로 인식하고, 사회 활동에서 여성의 역할 확대를 적극 장려한 사회주의 정책의 결과이다. 중국 정부와 산하 기관들이 중국 여성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데 각별한 관심을 쏟아온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여성의 정치 참여를 증진하기 위한 법률, 예컨대 ‘여성 권리 보호법안’과 ‘여성 세력화를 위한 지침’ 등을 제정해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중앙 조직 부서와 중화인민여성연합 등 관련 단체는 최근 여성 공무원 진출을 촉진하기 위해, 중국 정부 내 모든 단위의 주요 직책에 ‘여성 할당제’를 도입하려는 심포지엄을 두 차례 열기도 했다.
그러나 지구상의 그 어느 나라도 근접해본 적이 없는 진정한 남녀 평등은 중국에서도 여전히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중앙 무대에서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여성의 이름은 없다. / 베이징ㆍ정주영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