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비자들 정말 너무하네
[매일경제 2006-08-29 16:47]
광고
"수박 한 통을 다 먹고 껍질만 들고 와서는 '당도 보증 한다더니 맛이 없다'며 새로 한 통을 받아가는 사례는 그래도 양반이죠. 족발뼈만 들고 와서는 '먹는 데 족발에 털이 너무 많았다'고 항의하며 보상을 요구하는 소비자도 부지기수입니다." (A마트 관계자)
"정장을 구입한 한 30대 주부는 자기 몸에 맞춰 수선까지 다 마친 뒤 만족스럽게 집으로 돌아갔는데 보름이나 지나서 무조건 환불해 달라는 겁니다. 이미 수선까지 끝낸 상태라 곤란하다고 했는 데도 막무가내입니다." (B백화점 관계자)
"어떤 고객은 친구들과 함께 백화점을 찾았다가 화장실에서 나이드신 분과 언쟁을 벌였는데 이 백화점에서 이런 기분 나쁜 일이 생겼으니 총책임자가 사과하고 적절한 피해 보상을 해 달라는 겁니다. 결국 일정 금액을 보상했죠." (C백화점 관계자)
"한 소비자가 분유에서 노란 덩어리가 나왔다고 클레임을 제기하고 언론에 제보하겠다며 보상을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사 연구소에서 검사해 보니 노란 덩어리는 아이 똥으로 확인됐습니다." (D유업 관계자)
"생수에서 벌레가 나왔다며 처음에는 100만원을 요구하더니 다음날은 300만원,그 다음날은 1억원을 요구하더군요." (E음료 관계자)
"우리 회사 제품을 먹고 살이 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정신적 위로금을 배상해 달라는 소비자도 있었습니다." (F제과 관계자)
상식을 벗어난 소비자 클레임이 급증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블랙 컨슈머', 식품업계에서는 '식파라치'로 불리는 이들 악덕 소비자들은 먹을거리 관련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한국 풍토와 대형 유통업체의 서비스 만능주의 틈새를 파고들며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툭하면 인터넷에 올리겠다, 방송에 제보하겠다며 금품을 요구하는 예가 최근 늘어나는 추세.
한 대형 식품업체 관계자는 "악성 클레임이 매년 200~300% 이상 늘어나고 있다"며 "고의적으로 이물질을 투입한 뒤 협박하거나 몇 백만 원에서 크게는 수억 원에 이르는 보상금을 요구하는 등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유업체 관계자는 "특히 경기가 안 좋아질수록 막무가내식 클레임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면서 "마시던 음료에 담배꽁초를 넣고 보상을 요구하는등 일일이 셀 수가 없을정도"라고 말했다.
제품을 먹고 탈이 났다거나 병원비를 보상해 달라거나 교환ㆍ환불을 요구하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다.
최근 한 백화점 여성의류 매장은 여름 반소매 의류를 구입해간 한 40대 주부에게서 "겨드랑이에 얼룩이 졌다"는 이유로 환불을 요구받았다. 옷을 입고 심하게 땀을 흘린 뒤 드라이클리닝을 오랫동안 하지 않아 생긴 것으로 밝혀졌지만 소비자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겠다고목소리를 높였다.
한 대형 음료업체 관계자는 "페트병에 든 탄산음료를 먹다가 뚜껑을 덮어서 차에 놓았는데 여름철이다 보니 그게 터졌죠. 그랬더니 시트가 엉망이 됐다며 차를 아예 새로 바꿔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생떼를 써도 이 같은 소비자 클레임 문제에서만큼은 대기업들이 철저히 약자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일단 시끄러워지면 기업 이미지상 문제가 되니까 가급적 조용히 처리한다"고 털어놓았다.
이 관계자는 "담당 직원을 '식파라치 학원'에 직접 보내기도 했다"며 "이들 학원에서는 일주일에 40만원 수강료를 내면 어떻게 하면 식품업체에서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각종 스킬을 교육한다"고 전했다.
최근 전문 식파라치들이 늘면서 기업체 대응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기존 방식을 벗어나는 추세.
송일섭 대상 고객만족센터장은 "상식을 벗어난 보상을 요구할 때는 소비자 구제기관이나 법률기관을 통해 정식으로 피해 보상을 요청하도록 권유하고 있는데 이때 90% 이상은 연락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소비자가 제기하는 '부당 클레임'은 해당 기업체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소비자들에게도 악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전체 비용에서 부당 클레임으로 인한 비용은 0.3% 이내지만 0.3%라도 결국은 원가에 반영되고 전체 소비자에게 비용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며 "악덕 소비자 몇 명 때문에 전체가 손해를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성천 한국소비자보호원 거래개선연구팀장은 "기업체들은 소비자가 정당한 불만을 제기해도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되고 소보원도 다른 피해자 구제에 투입해야 하는 인력을 낭비하게 된다"며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부 소비자 때문에 결국 선의의 소비자들에게도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채경옥 기자 / 심시보 기자 / 이호승 기자]
< Copyright ⓒ 매일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