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운 여름 날씨가 기승을 부리는 지난 8월 4일. 한여름 여름 날씨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뿜고 있었다. 바로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관(SETEC)에서 열린 열린‘제 1회 방송 엔터테인먼트 채용박람회장’(8월 4~6일개최). 이곳에는 내일의 가수, 연기자, 댄서, 개그맨을 꿈꾸는 연예인 지망생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가수, 댄스, 연기, 개그맨 등 분야별 공개 오디션장에는 연예인 지망생들로 만원을 이뤘고 대형 연예기획사가 참가한 개별 채용관 부스에도 내일의 스타를 꿈꾸는 예비 연예인들의 발길로 가득 찼다. 연예인 지망생들이 내뿜는 연예인을 향한 첫걸음의 도전은 여름 날씨를 압도하는 정열과 열정 그 자체였다.
#2. 지난 8월 21일 서울 서초경찰서. 배우를 하겠다며 사채를 끌어 쓰다 집안의 전재산 60억원을 날린 20대 여성 오모씨(24)씨가 어머니의 고소로 경찰에 구속됐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8월 21일 사채를 끌어 쓰기 위해 가족 공동소유의 부동산 등기권리증을 훔치고 인감증명을 위조한 오모씨(24·여)를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오씨는 그동안 배우 준비를 하다 카드 빚을 지자 사채를 쓰면서 가족들의 인감도장을 훔쳐 재산권 행사에 필요한 서류를 만든 뒤 송씨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넘겨 60억원 전 재산을 날렸다. 2001년 재수 중이던 오씨는 모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예인의 꿈을 갖게 됐고 이듬해 모 대학 방송연예과에 진학한 그녀는 아르바이트 때의 인연으로 간간이 단역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배우가 되기 위한 준비가 엄청난 재산의 탕진 그리고 구속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스타 메이커’를 비롯한 케이블 방송이나 지상파 방송에선 스타 만들기 프로그램이 마련돼 수천명의 지원자가 몰리고 영화사 오디션장에는 배역을 따내기 수많은 청소년들로 장사진을 이루며 JYP 등 대형 연예기획사에서 실시하는 전국 오디션에는 한해 수만명의 연예인 지망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방송사 앞에는 어린아이를 손잡고 연출자 눈에 한번 들려고 돌아다니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연예인 예비자원을 발굴하는 탤런트 스카우터들이 자주 출몰한다는 전국 도시 번화가에는 이들을 의식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볼수 있다. 연기나 댄서 학원은 연예인 지망생들로 성업 중에 있고 연예인 발굴 관련 연예인 사이트는 급증하고 있다. 연예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인대회라는 전진기지를 활용하는 우회 전략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가 하면 대학에서 방송연예관련학과의 경쟁률은 타과의 경쟁률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연예인 공화국이다. 연예인으로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이제 더 이상 방치할 문제가 아니다. 연예인 공화국을 넘어 연예인 강권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폐해와 피해가 너무 많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신기루 같은 연예인의 꿈에 올인하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다 인생을 낭비하는 청소년에서부터 극단적인 삶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연예인의 실낱같은 꿈에 얽메여 몸을 망치고 돈을 빼앗기는 피해도 적지 않게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연예계와 연예인의 현실을 적시해줘야 할 방송, 신문, 인터넷매체 등 대중매체는 앞 다투어 청소년, 국민의 연예인화에 앞장서고 있다. 스타라는 오르기 힘든 신화의 화려한 광휘만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 지망생의 숫자는 우리의 대중문화 시장 규모에 맞는 수요 인원을 과도하게 넘어선 지 오래다. 이제 광적으로 연예계로 달려드는 유치원생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열병을 앓고 있다.
현재 청소년들의 희망 직업 1순위는 연예인이 된지 오래다. 또한 500명의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MBC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7%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답했을 정도다. 방송연예 관련학과는 전국 136개 대학에 달하고 그 정원도 1만400여명에 달한다. 매년 1만여명의 자원이 방송과 영화 등 연예관련 직종의 꿈을 안고 사회로 쏟아져 나온다.
이뿐인가. 각종 연기학원, 음악학원 등에는 스타의 꿈을 안고 유치원생부터 중년층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난립하고 있는 2,000여개의 연예기획사에선 각자 연예인 지망생을 발굴해 교육시키며 호시탐탐 연예계 데뷔를 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오죽했으면 ‘연예고시’라는 말이 사용될 정도다. 일부에선 연예인과 연예인 지망생 숫자가 100만명에 이른다는 추산을 했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연예인 지망생들은 그들이 꿈꾸는 연예인의 길을 걷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방송사PD, 영화감독, 방송연예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은 불과 지망생중 1~5%만이 연예계에 입성해 그것도 생존의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
연예인은 누구나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연예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이율배반적인 상황논리의 덫에 갇혀 평생 동안 연예인, 스타의 꿈을 저버리지 못한 채 스포트라이트 한번 받지 못하고 스러져간 사람들, 그리고 무명도 드라마나 영화 한편 출연으로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착시 현상에 사로잡혀 있다가 현실의 차가움을 느끼며 돌아서는 사람들, 그리고 화려한 스타로의 비상을 하는 사람들 등 여러 부류가 있다.
연예인 지름길이라는 KBS, MBC, SBS 등 방송 3사의 탤런트 공채시험의 현황을 보면 간단하게 알 수 있다. 이들 방송사 PD들은 말한다. 매년 한번씩 탤런트 공채를 실시하면 6,000~8,000명이 응시하고 이중 20명 안팎을 뽑는데 이들 중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은 숫자라는 것이다.
SBS드라마국장을 역임한 운군일 제작위원은 “매년 탤런트 공채를 통해 그리고 각종 방송 아카데미를 통해 방송사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많으나 이중에서 생명력을 갖고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사람은 응모자의 1%도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망생 대비 연예인 진출 현황에 관한 우리의 구체적 자료는 없다. 연예계의 생리와 지망열기가 비슷한 미국의 하나의 자료는 우리에게도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 스타의 전당이라는 할리우드에서 12년 동안 2만명의 단역배우(이는 이미 연예계에 입성한 사람들)중 12명만이 스타가 됐다. 연예인 지망생에서 연예계 진출을 하는 것에서부터 스타로 부상하는 것이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처럼 힘든 일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숫치다.
원빈, 수애 등을 발굴해 스타로 발돋움시키고 많은 연예인을 양성하며 20여명의 스타를 매니지먼트하는 스타 제이의 정영범대표는 “연예인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과도한 연예인 열기에 휩쌓여 있다. 학교를 가나 길거리를 가나 연예인을 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문제는 이들의 연예인이 되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돈이 결실을 맺지 못한채 소진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연예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의 인생 소비인 동시에 국가적인 낭비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연예인 공화국의 폐해는 실로 크다. “우리 애를 스타로 만들어 달라며 수억원을 뿌리는 사람이 한해 80~90명씩 여의도를 돌아 다닌다”는 한 기획사의 사장의 말은 허언이라고만 볼 수 없을 정도다. 이처럼 연예인 지망생은 쏟아지고 연예인이 될 수 있는 숫자는 한정돼 있고 이러다보니 불미스러운 일까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지난 2004년 한 신인 여배우가 한 스포츠지와 인터뷰를 통해 충격적인 폭로를 했다. 이 폭로에 대해 어떤 이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이는 연예판은 원래 그런 곳이라고 냉소적 반응을 보냈다. 방송 단막극에 얼굴을 내밀고 영화 몇 편에 출연했던 이 신인 여배우는 영화 출연을 미끼로 유명 영화 감독이 성관계를 할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로 폭로 내용 수사가 진행되지 않아 그 내용의 진위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채 유야무야됐다.
이 여배우의 폭로는 한국판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에 대한 문제와 캐스팅 카우치들이 양산될 가능성을 상존하게 하는 우리의 과도한 연예인 지망 열기의 이면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최근의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연예인 지망생을 둘러싸고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도 마찬가지다.
캐스팅 카우치는 ‘잠자리’ 또는 ‘소파’를 뜻하는 카우치에서 알 수 있듯 영화감독, PD, 작가, 매니저들에게 잠자리(성상납)를 제공하고 배역을 받거나 영화, 드라마,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을 지칭한다. 연예인 지망생중 캐스팅 카우치라도 해서 연예인이 되려는 사람도 있다. 또한 돈을 주고서라도 배역을 따내려는 부모와 연예인 지망생도 있다.
가끔 연기자 지망생과의 대화의 자리에서 듣는 소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여자 수강생들은 한결같이 궁금해 했고 공통된 질문을 했다. “기자님, 정말 배역을 따내려면 몸을 줘야하나요. 적지 않은 연기자 지망생들이 그것도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 제의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은 연예계 진출 가망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이 같은 사회문제뿐만 아니라 연예인 공화국의 폐해로 인한 인력 손실, 경제적 손실은 실로 엄청나다. 특히 연예인을 지망하다 허송세월하거나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허망한 꿈에 사로잡혀 흘려보내다 좌절하는 청소년들의 문제는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닌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될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연예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수요 인원에 비해 과도하게 공급 인원이 많아 이처럼 사회문제가 되고 있고 인력손실, 경제적 낭비 등 숱한 문제를 파생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을 지망하는 사람들은 줄지 않고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일까?
우선 그 원인을 진단하기 전에 MBC가 청소년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사 대상자의 47%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응답했고 그 이유는 개성발휘가 62%로 가장 많았고 화려해서가 27%,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큰 돈을 벌어서라고 응답한 사람이 9%였다.
이 설문조사 결과를 낳은 것이 바로 대한민국을 연예인 공화국으로 만든 원인과 직결돼 있다.
[KBS와 SBS에서 방송했던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 사진=마이데일리 사진DB]
*이글은 월간 ‘말’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knbae@my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