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맨들에게는 박정희는 특별하다
KIST맨들에게 박정희는 특별하다.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를 일으켜 보겠다고 몸부림치던 60년대, 청와대에 과학기술 비서관을 두고 허허벌판에 KIST를 세워, 해외의 우수한 한국인 과학자들을 불러들였다. 대우는 미국에서 받던 봉급의 4분의1밖에 안됐지만 국내 국립대학 교수의 3배나 되고 대통령 봉급보다 많았다. 대통령이 KIST를 찾아와 “도와 주시오. 고맙소” 항상 이런 말로 격려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과학기술 입국의 열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충정을 그들은 잊지 못한다.
대덕 화학연구소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만난 여성 과학자들은 이렇게 말했다(2004년 5월).
“대통령께서 지어주신 과학기술원 아파트에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어려웠던 그 시절에 과학기술을 키우시고 우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과학자들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당시 의료보험이 국내에 없어 미국 회사와 계약하여 가입시키고, 자녀 교육대책까지 세워주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인심도 변했건만 여성 과학자들은 대통령의 딸에게 이구동성으로 감사를 표했다.
박근혜 대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버지는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것을 좋아하셨다. 말만 앞세우는 것을 싫어하셨다. 과학자, 기술자, 기능공들이 국가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을 중시하는 사회 기풍을 만들려고 노력하셨다. 각종 연구소들은 그때 설립되었다”
당시 경제발전을 하려면 기업을 키워야 하고, 그러자면 산업기술을 연구개발하여 기업에 연결시켜줄 국가기관이 절실히 요구되었는데, 미국 대통령 존슨이 월남파병의 보답으로 한국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고 싶다는 제의를 해옴에 따라 한미 두 나라가 1천만불씩 2천만불을 출연하여 KIST가 설립되었다. 그때가 1966년 2월.
KIST에는 ‘영원한 KIST맨’ 최형섭이 있다.
KIST는 대통령 박정희가 구축한 하드웨어에 최형섭이 소프트웨어를 채워넣어 한국과학기술의 총본산으로 성장시킨 합작품이다. 초대 KIST소장인 최형섭은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하에 연구개발된 산업기술을 기업에 이전하고 수익을 함께 창출함으로써 KIST의 성과를 철두철미 국가이익에 결부시키는 실용주의로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대통령 박정희가 세상을 뜨고, 최형섭에게 남은 것은 과학기술 입국의 노하우.
80년대 중반, 인도반도의 가난한 나라 방글라데시에서 그에게 과학기술 개발에 조금이라도 도와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해왔다. 후진국이 겪는 기술 빈곤의 공허함과 아픔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는 방글라데시를 세차례 방문해서 강연도 하고 조언을 했다.
방글라데시에는 우수하고 애국 열정에 불타는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추진하는 과학기술개발 계획은 대통령의 무관심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방글라데시 과학자들은 최형섭에게 와서 “그동안 도와주신 보람 없이 우리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 우리는 이제 끝난 것 같다”며 절망했다.
최형섭은 그들을 위로했다.
“실망하지 말라. 우리 한국도 박대통령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박정희를 기다렸었다!
건국 이후 박정희라는 지도자를 기다렸고 그를 만났기에 과학기술 입국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시대가 인물을 낳고, 인물이 시대를 새롭게 바꾸어 가는 것이 역사이다. 때가 와야 한다.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 선남선녀가 인연이 닿아야 혼인을 하듯이 세상 만사엔 운때가 있다.
박정희 시대의 전직 관료는 자기가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냈으면서도 “과기처 장관은 내가 아니라 박대통령이었다”고 술회했다.
그 정도였다. 지도자의 의지, 미래를 내다보는 창조적 안목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최고권력에 올망졸망 매달렸다 사라진 대통령들.
말로는 모두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그 누구도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모두가 권력 유지와 정치 공방에 급급, 임기가 갈마들 때마다 권세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했을 뿐이었다.
과학기술 분야 국책연구소의 고위 간부는 “박대통령 이후로 20여년 동안 우리 연구소를 방문한 대통령은 한명도 없었다”고 했다.
과학기술은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국민소득 1만불을 넘어선 것이 1995년. 박정희 개발연대의 경제성장 모멘텀에 의해 서울올림픽을 치르고 1만불까지 왔었다. 작년이 1만4천불이니, 10년째 1만불 대에서 질퍽거리고 있다.
2만불로 가고 3만불을 넘어가는 선진국 대열의 고지를 바라보노라니, 아득한 가파름이 지난날의 보릿고개를 떠올리게 한다.
무얼 가지고 선진국으로 갈 것인가라는 물음과 국민이 무얼로 먹고 사는가라는 물음의 답은 똑같다. 과학기술이다. 알짜배기 과학기술만이 냉정한 국제사회의 흐름에 뒤지지 않는 경제발전을 기약한다. 과학기술의 개발이 없는 경제는 단팥 없는 찐빵이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도, 통일로 가는 길도, 미래로 가는 모든 길은 과학기술로 통한다.
제2의 도약을 담당할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이 나라 과학기술의 원조, 그 분야 모든 연구기관의 ‘맏형’ KIST는 ‘제2의 박정희’를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