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순영(42)씨는 북한의 영화배우 출신이다. 그것도 그냥 배우가 아니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생모 김정숙 역을 단골로 맡은 공훈배우였다.
그런 그가 지난 2000년 1월에 탈북했다. 북한 영화 <민족의 태양> <태양은 빛나리> 등으로 잘 나가던 그가 중국을 거쳐 시작한 서울 생활은 한 달 후면 딱 4년이 된다.
귀순 초기 ‘북에서 온 공훈 여배우’라는 타이틀 때문에 각종 매스컴의 단골손님이 되기도 했다. 한동안 잊혀졌던 그녀가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른바 ‘누드 파문’ 때문이다. 40대 중년의 그가 왜 옷을 벗어야 했을까.
일간스포츠(IS)는 그녀를 단독 취재. 누드 모델로 나선 이유와 그동안의 서울 생활을 들어봤다.
■돈 버는 지름길은 누드뿐?
“그래도 자존심을 팔 수는 없었다.”
키 160㎝ 남짓의 그는 큰 눈에 짙은 쌍꺼풀. 오똑한 콧날. 붉은 입술 등 젊은 시절 북한 뭇 남성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아름다움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4년 가까운 서울 생활에도 논리적이면서 딱 부러지는 말투는 영락없는 평양 여성이었다.
그런데 ‘누드’라는 말이 나오자 그의 큰 눈은 어느새 눈물로 가득하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자신을 탓했다. 경제적으로 너무 핍박 받으면서 앞뒤를 생각하지 못해 그같이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자책이었다.
세월을 거슬러 그는 2004년 가을 A(47)씨로부터 “누드 화보집을 만들자”는 제의를 받게 된다. 당시 그는 사기를 당해 극심한 빚 독촉에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컨셉트는 ‘김정일 엄마가 옷을 벗다’였다. 그는 “A씨가 부제로 중국에 흩어져 있는 수천 명. 어쩌면 수만 명에 이르는 탈북자들의 인권 문제를 붙여 인터넷에 띄우면 한국은 물론 일본·미국·중국 등지에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억원이 넘는 부채에 시달리며 경영하던 음식점이 남의 손에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로 인해 그같은 제의를 거절할 형편도 아니었다. 결국 계약금도 받지 않은 채 2004년 가을부터 약 8개월에 걸쳐 강원도 설악산·동해바다·무릉계곡 등지를 돌며 옷을 벗었다.
하지만 촬영 후 편집 과정에서 사진 작품을 살펴보던 그는 전문성이나 예술성에 문제가 있어 보였고. 또 A씨가 약속한 사이트 개설 시기를 차일피일 미루는 등 신뢰에 금이 가면서 이 이벤트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 생활을 통해 탈북 난민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들을 돕겠다는 데에는 이의를 달지 않았으나 굳이 옷을 벗어 가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한때 최고 배우였다는 자존심의 문제였다.
고민 끝에 그는 지난달 누드 사진 공개를 포기했고. A씨에게도 이를 통보했다. 때마침 모 방송국에서 자신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대한 출연 제의까지 있었던 터라 더욱 결심을 굳히게 됐다.
하지만 A씨는 이를 무시하고 11월 11일 이 사이트를 오픈. 그의 누드 사진을 공개했다. 결국 그는 한 푼의 돈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알몸 사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만 셈이 됐다.
■모퉁이 돌 때마다 찾아오는 시련. 시련
그는 2003년 1월 27일 서울 땅을 밟았다. 하지만 사회주의에 익숙했던 그녀에게 서울은 낯선 ‘동토의 땅’이었다. 곳곳이 가시밭길이고 허방다리였다.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탓이었다. 지난 약 4년은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을 남겨 준 세월이었다.
그의 시련은 귀순 첫 해 음식점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자신보다 5년 앞서 탈북한 한 남자로부터 돈을 빌렸다가 낭패를 보며 시작됐다. 그리고 이듬해 북한에서 영화를 제작하던 오 모씨를 만나면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 그보다 1년 전 서울에 정착한 오씨는 “배우가 카메라 앞에 서야지 주방은 어울리지 않는다.
같이 영화를 만들자”라며 접근했다. 당시 그의 음식점은 ‘북한 공훈배우’가 운영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손님으로 넘쳐났고. 영등포에도 분점을 내기에 이르렀다. 탈북자를 중심으로 50명 가까이 종업원을 부릴 만큼 성공적이었다.
이때 오씨를 만나게 됐는데 그는 영화를 만든다며 각종 명목으로 1억 5000만여 원을 받아 갔다. 그리고 돈이 없어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지 못하는 탈북자들을 도와야 한다면서 돈을 요구했다. 탈북자들을 돕는다는 말에 흔쾌히 2억원 가까이 내줬다. 하지만 오씨가 탈북자를 돕는 과정에서 중국 공안에 잡혀 7년형을 선고받는 바람에 모든 빚은 주씨가 모두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 다음에 나타난 남자가 누드 화보를 제작하자고 한 A씨다. 오씨를 통해 알게 된 A씨는 앞의 두 남자를 비난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주씨의 하소연에 “누드를 찍으면 된다”는 답을 내놓았다. 제목은 ‘김정일 엄마가 옷을 벗다’라는 것이었다.
A씨는 누드 사진 파문이 일자 모든 기획과 제작은 물론 초상권이나 판권도 모두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그는 “처음에는 충격도 많이 받았고.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앞으로 누드 사진에 대한 사용 정지 가처분 신청은 물론 명예훼손 부분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는 지난 4년 동안 순탄치 못한 인생을 보냈다. 지금도 많은 탈북자가 남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남 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주씨도 이 중 한 사람이다.
박상언 기자 [separk@ilgan.co.kr]
사진=이호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