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달간 삼국지에 빠졌었다.
난 시간만 나면 책을 읽는 사람이다. 일요일날 강남 교보문고에서 김선생님 하고 부르면 나를 만날 수 있을 정도였다.
요즘은 이사가서 거기는 안간다.
유비는 돗자리짜다가 의병으로 황건적의 난에 공을 세워서 비로서 난세에 중원에 뛰어든것이다.
그후 동탁이 정권을 잡자 토벌대를 조직해서 제후들이 들고 일어났지만 주역은 조조였다.
유비의 의형제 관우, 장비가 있었고 나중에 조자룡이 합류하고 황충장군등 영웅들이 있었지만 역시 모사는 제갈공명이었다.
우리모두 삼고초려를 알 고있다. 왜 공명은 유비를 따라갔을까?
당대의 영웅 조조에게는 기라성같은 모사들이 있었고 떠오르는 오나라의 손권역시 주유장군과 제갈공명의 형인 제갈근이 모사로 있었고 영웅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유비는 별다른 모사가 없었다 잠시 있었던 서서가 조조에게 가버렸기 때문이다.
모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서서가 전략으로 위나라군대를 박살내자 싸움은 장수의 창과 칼로 하는 것보다 지략으로 싸워야지 승리한다는 것을 통감했다.
유비는 당대의 숨은영웅이며 위대한 전략가인 공명선생보다 20살이나 연상이지만 찾아가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청했다.
자기보다 20살이나 어린젊은이한테 무릅끓고 눈물로서 청하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진정한 영웅만이 할 수있는 것이다.
봉황은 천길을 날되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는다.
선비는 땅 한모퉁이에 숨어 살아도 주인아니이를 섬기지 않는다
큰꿈을 누가 먼저 깨닫는가
나만 스스로 평생을 알 뿐이네
초당의 봄잠이 넉넉한데
창밖의 해가 너무 길구나
공명은 이와같이 세상에 나가는것을 기다리고 있었던건지도 모른다.
형주는 지식인들이 많았다. 사마휘, 서서, 제갈량등 너무 유명한 유학자며 명법의 대가들이었다. 형주지역의 학문적 풍토는 한나라의 대유학자 정현선생의 영향이 컸다.
제갈량의 천하삼분계책은 형주 지금의 사천지방 형주와 익주를 찾이하여 근거지를 삼으라는 것이었다.
형주의 제후 유표가 병들어 늙어서 종친인 유비에게 이땅의 주인이 되달라고 부탁하자
유비는 당치도 않다면서 굴러들어온 여의주를 내 뱉음으로서 억지로 빼앗고 싶은 형주를 맡기는데 왜 거절했냐고 공명이 묻자 형님은 나를 예로서 대하는데 어찌 그분의 위태로움을 노려 내것으로 만들겠냐고 대답하자 공명은 참으로 너그럽고 의로운 주인이라고 감탄을 한다.
이름없던 유비가 드디어 조조와 손권에 대항할 수있는 힘을 기르게된것은 공명의 계책때문이었다.
영웅의 시대에 진정한 영웅으로 이름이 남는것은 유비의 인품때문인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