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의 너무나 달라진 중국과 한국을 비교해봅니다.
중국이 공산사상만 버린다면 다른 나라의 화교들처럼 지금쯤
아마 꽤 잘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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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작가 장은 "3백년간의 3편 기행문"이라는 에세이에서 같지 않은 중국과 한국의 작가들의 3편의 기행문을 예로 들면서 3백연간의 발전사를 희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첫번째 기행문은 바로 한문으로 씌여진 조선조의 실학파작가 박지원의 "열하일기"이다.
중국 청나라 건륭 45년 6월, 실학파의 박지원은 조선의 사신들을 따라 평양에서 출발하여 청나라 건륭황제의 70수(壽)를 경축하는 행사에 참가하게 되어 중국의 열하지방(지금의 요령, 내몽골, 길림성의 접경 일대)을 두루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때 쓴 기행문들이 "열하일기"에 수록되어 있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조선인의 시각으로 중국사회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점포들은 모두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고, 대충대충 하는 일이 없으며 여기 저기 흩어진 물건들도 볼 수 없다. 외양간이나 돼지우리마저도 반듯하게 지었으며, 땔나무나 거름마저도 그림처럼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130년 후인 1893년 가을, 중국의 무관 섭사성은 동북을 순시하는 길에 조선을 돌아보고 보고 들은 바를 적었는데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마다 작은 상을 쓰고, 기물들은 놋그릇을 많이 쓰며, 음식들은 냄새가 나 먹을 수 없다. 시가지들은 황페하고... 백성들은 나태하며, 저축할 줄을 모르고, 변통할 줄을 몰라 옛법만 따르며, 책 읽기를 싫어하고...세상 일을 말할라치면 불만만 쏟는다. 실로 가련하기도 하고 가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뒤, 한국을 다녀온 중국인들의 기행문은 이렇게 적고 있다.
"베이징(北京)과 완전히 다른 점이라면 서울 거리에서 우리들은 여기서(중국) 습관된 흩날리는 먼지와 오염된 기류를 느낄 수 없는 것이다."
3백년 사이, 세상은 뒤집혀, 한국인들은 자기들의 국민성을 개변해 시대의 흐름에 따랐으며, 또 이로하여 오늘의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으며 1인당 국민소득이 92달러라는 시대는 이제 영영 역사로 되었다는 것이 작가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