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상하이의 한 국내 은행 지점장은 필자에게 전화를 해왔다. 다소 흥분한 목소리였다. "이 기자, 알고 있어요. 아 글쎄, 중국놈들이 장보고 장군이 중국인이라고 강변한데요, 나 참.." 그는 마침, 산둥(山東)성 진출 한국기업들과 투자관련 회의를 하러 갔다가 돌아오던 길이었다. 기왕 간김에 산둥성 스다오(石島)시의 적산(赤山.중국명 치산)에 들렀던 모양이다.
설악산을 찌그러뜨려 작게 만들어놓은 것 같은 붉은 산이 스다오 항 바로 뒤에 병풍처럼 둘러 쌓여 있다. 스다오는 고대부터 풍경이 매우 수려하다고 알려진 곳이다. 해상왕 장보고(?-846)는 여기에 ‘적산 법화원(法華院)’을 세웠다. 이는 당시 해상 무역으로 삶을 살았던 신라인들이 안정 항해를 기원하고 당시 신라방에 살던 신라인들의 교화처였다. 한마디로 교민 사회 결속의 미개처 역할을 했던 곳이다. 적산 법화원은 교통이 편리하여 석도항으로부터 4km 거리에 있으며 배를 이용하여 칭다오나 다롄 등 인근 주요 도시로 쉽게 닿을 수 있다.
적산 아랫자락에 가면서 ‘장가촌(張家村)’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또 인근 바닷가에 가면 `장가부(張家埠)’가 있다. “장씨가 세운 부두”라는 뜻인데, 이쯤되면 대충 장보고가 남긴 중국땅의 흔적이란 것을 금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산둥성 적산일대는 장보고가 한반도 서남해의 청해진과 함께 해상활동의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한 지점이다.
비슷한 시기에 회사 후배가 쓴 기사에서는 법화원을 갔다온 일부 인사들이 중국인들이 기념관에 걸어놓은 고지도에 `분노'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 지도에는 중국땅이 한반도를 거의 다 차지하는 것으로 돼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한반도의 존재를 송두리째 앗아버린 것이다. 그후 들리는 소문으로는 중국측에서 이 지도를 철거했다고 들었는데, 그거야 나중에 다시 달면 그만이고,
은행지점장을 흥분케 한 것은 법화원이었다. 법화원에 가면 최근 360억원을 들여 만들었다는 장보고 기념관이 들어서있다. 게다가 높이 8m, 무게 6t짜리 거대한 장보고 동상까지 들어서 있다.
원래는 법화원 앞산에 장보고 기념탑이 있고, 그 탑에 김영삼 대통령의 친필이 있다. 이 탑은 1991년 한국 성신여대 교수, 세계한민족연합회(世界韓民族聯合會)회장 최민자(崔珉子)교수가 법화원에 왔다가 `한민족의 영웅' 장보고대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인데 1994년 7월 24일에 준공됐다. 탑의 설계가 특이하다. 탑의 모양은 양쪽 손바닥을 마주한 모양이며 <장보고기념탑(張保皐紀念塔)> 여섯 글자가 김영삼 전대통령의 친필이다. 이 탑은 한중 양국 국민의 친선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법화원 앞으로 거대한 동상은 일본 천태종의 효시인 옌닌의 동상이 있었다. 한때 관광객들이 이를 혼동해 장보고의 거대한 동상이 산둥성에 있다고 했으나 이는 옌닌의 동상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예 장보고 동상을 만들었으니 명실상부한 장보고 기념관이 된 것이다. 문제는 중국인들의 의식이다.
요즈음 한민족의 영웅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는 장보고장군을 중국인들이 동상까지 세운 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중국인들은 외국인의 동상이나 형상물을 외부에 설치하는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상하이에 와서 임시정부 청사나 윤봉길의사가 있는 훙커우 공원에 가면 두분의 흉상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있다. 이는 모두 `외국인의 상징물을 중국인민이 직접 볼 수 없다'는 중국의 고집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중국땅이라는 산둥성에는 요즘 10만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진출해있다. 수교 13년만에 산둥성에는 `서울시 칭다오(靑島)구'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한국의 흔적이 물씬 풍기고 있다. 필자가 스다오시가 있는 웨이하이(威海)시를 들었을 때도 한국기업인들이 크게 반겼다. 그들은 자신들을 `장보고 장군의 후예'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장보고 장군을 중국인이라니.. 요즘을 사는 한국사람이라면 흥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장보고가 어떤 인물인가. 1200년전에 동아시아 바다를 호령했던 한민족의 영웅이 아닌가. 적어도 오늘을 사는 한국인에게는 그렇게 각인돼있다. 그리고 쪼그라든 반도땅에 갖힌 한국인들의 `한(恨)'을 다소라도 달래주는데 장보고 장군만한 위인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해신'이라는 드라마에 한국인들이 열광하지 않는가. 그만큼 작은 나라 한국에게 장보고는 그 어떤 것과 바꿀수 없는 보물같은 존재로 부상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가 계속 장보고의 해양 개척정신을 유지했다면 한국인의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며 흐뭇해하기도 한단다.
장보고가 중국인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필자는 이 은행장의 전화 이전에도 이런 얘기를 들어왔다. 어떤 산둥성 주재 기업인은 "고구려는 물론이고 장보고까지 다 자기 것이라고 하는데 나중에는 한국인 모두 중화민족의 일원이라고 하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언젠가 열린우리당 장영달(張永達. 전주 완산갑) 의원이 산둥성 영성시를 방문하고 나서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장보고와 분명 연관이 있을 장의원은 "중국이 고구려사외에 통일신라 시대 해상왕인 장보고(張保皐) 대사에 대해 서도 왜곡하고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역사적 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아마 그곳에 중국인 안내원의 설명에 당황했던 것같다. 이 안내원은 장보고 장군에 대해 `장보고 대사의 부친은 중국사람이고 그 아버지가 신라에 건너가 장보고를 낳았으며 이후 장 대사가 당나라 장수로 활동했다'고 성명했다"
장의원은 더 나아가 "일본 역사학자도 장보고 대사가 신라인의 안식처로 사용하기 위해 영성시에 건립한 법화원을 일본 천태종의 창시자인 `엔닌'이 세운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당시 신라,중국, 일본에 걸쳐 왕성한 해상활동을 한 장보고 대사의 역사적 사실 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렇다. 중국인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서 필자는 징기스칸 얘기를 하고 싶다. 요즘 중국일각에서는 징기스칸을 `중화민족의 영웅'으로 미화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곧 중국의 관영 CCTV에서는 징기스칸의 영웅담을 담은 대하 드라마가 등장한다고 한다. 필자는 이런 기류에 호기심이 일어 만나는 중국인들에게 `징기스칸이 중국인인가' 묻곤한다. 일부 중국인들은 "몽고의 영웅"이라고 하지만 절반 이상은 "중화민족의 영웅"이라고 대답하기 일쑤다. 중화민족이라니.. 그런 민족이 역사에 있었던가.
아마도 중국인들은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징기스칸을 자신들의 영웅으로 만들어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아니 어쩌면 후진타오를 정점으로 한 중국의 신지도부가 `중화주의'를 주창하는 배경에는 거대한 시나리오가 있다고 봐야 정확할 듯하다. 중국사를 전공한 기자는 징기스칸을 `중국인'이라고 우기는 그들에게 "몽골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탈바꿈해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라고 물으면 그들은 오히려 기자를 `미친 놈아냐'하는 표정으로 처다본다. 징기스칸의 후예가 중국땅에 세운 원나라마저 4등급의 차별적 신분을 고수했다. 1등급은 몽고인, 2등급은 색목인, 3등급은 거란이나 여진족, 4등급이 바로 한족인 남인(南人)인 것이다. 당시 한족은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들이대도 그들은 "엉뚱한 시비"를 건다고 나무란다.
그만큼 중화주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또 한가지 항저우에 가보면 `악비상'이 있다. 악비라면 남송시절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 한족을 지키려다 비운에 간 사람을 말한다. 한동안 악비는 중국인에게 `민족의 영웅'이었다. 그런데 최근들어 그는 교과서에서마저 사라지고 만다. 이유는 `한족과 이민족은 모두 중화인'이라는 근거를 대면서 "따라서 악비는 민족의 영웅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지침'은 그대로 중국인들에게 전파된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의 무서움이 여기에 있다.
중국을 정복했던 몽고족의 영웅마저 `중국인'으로 탈바꿈 시키는 마당에 장보고 장군을 중국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은 어쩌면 쉬운 일인지 모른다. 상하이 특파원으로서 필자는 `반일(反日) 시위'의 이면에는 `중화주의의 용솟음'이 숨어있음을 지적하곤 했다. 고구려사 역사 왜곡은 물론이고, 모든 것이 새로운 중화주의를 일으키려는 중국의 전략과 맞닿아있다.
하기야, 중국인들이 장보고 장군의 거대한 동상을 세우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요즘에야 드라마다 뭐다 해서 장보고 장군에 대해 흥분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는 `한민족의 영웅' 장보고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던가.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는 이론이 요즘 정치권에서 떠돌고 있는 모양이다. 필자는 `장보고를 잃는 민족'이라면 동북아를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지키는 자에게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사 문제에서 보듯 중국과는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실을 놓고 충돌하게 될 불길한 예감이 든다. 생각하는 백성이라면 이 시점에서 한민족의 의미를 냉철하게 되짚어보는 노력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기자는 고구려사 문제가 현안이 됐을때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사진은 최근에 제가 법화원을 다녀오지 못해서 다른 기자가 찍은 것을 올려놓았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올 여름 다녀올까 합니다)
이우탁기자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