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칭따오市
중국의 氣 열풍[1]
과학부 science_all@epochtimes.co.kr
중국에서 기공의 역사는 매우 유구하며 심지어 일부 사가(史家)는 중국 문화사는 기공의 역사라고까지 말한다. 중국에서 氣가 다시 주목을 끈 시기는 1980년대에 개혁개방이 이루어진 이후이다. 기공(氣功) 붐이 일어 대중에게 퍼져나갔고, 전통문화에 대한 대 토론장에서 주역과 기공이 주로 떠올랐다.
이 토론에서 중국 의학의 기(氣)이론과 현대 과학의 물질론은 서로 다른 세계관이고 이 둘을 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주장의 배경에는 중국의 공산주의 유물론적인 사상 때문에 형이상학적인 氣보다 실제로 존재하는 氣에 관심이 있었던 이유도 있다.
氣에 대한 연구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氣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인체과학(人體科學), 그리고 氣와 물질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분야는 기공과학(氣功科學) 이라고 부른다. 기공과학은 氣과학에 해당하며 인체과학은 氣의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 건강을 위한 기공 (1954~1965년)
근대에 들어 기공을 치료목적으로 임상에 응용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이며 기공의 현대화 기초를 다지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으로서 리우퀘이첸(劉貴珍, 1912~1983)을 꼽는다. 일찍이 공산혁명에 참가하였던 그는 악성 위궤양을 비롯하여 여러 병으로 시달리다가 기공수련으로 완쾌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기공수련을 하였다. 1954년에는 중국 최초의 기공전문 의료시설인 “당산(唐山) 기공요양원”을 개설하였다. 리우(劉貴珍)는 샹(商權后)과 함께 많은 고문헌을 조사하고 정리하여 1953년에 “기공요법실천(氣功療法實踐)”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그 당시, 기공요법이 20여 종의 질병에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북쪽의 활발한 움직임에 자극을 받은 남쪽에서는 1956년에 “상하이 기공요양소”를 설립하였다. 1956년부터 1958년까지 약 2년 동안에 걸쳐 중국 각지에서 약 70여 기공요양원, 기공병실 등 기공의료시설을 개설하였다. 1959년에 중국 정부의 보건담당 부서인 위생부(衛生部)의 지원 하에 개최한 “제1차 전국 기공경험 교류회”에서는 기공이 유효한 것으로 확인한 질병의 숫자가 증가하여 위궤양, 위하수, 폐기종, 만성 간염, 고혈압, 성기능 장애 등 50여 종 이상이었다.
1954년부터 문화혁명이 시작되기 전인 1965년에 이르는 약 10여 년 동안에 주로 기공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인체의 호흡생리, 심장박동, 혈압, 소화기능, 중추신경 기능 등의 생리 작용에 미치는 기공의 영향에 대해 연구한 논문이 약 300여 편 나왔으며 이 시기에 학문으로서 기공학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는 위생부(衛生部)의 지도 하에 각 성(省)과 시(市)에서 자체적으로 기공의사들을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 기공의 대중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던 공법은 ‘궈린 기공’이다. 화가였던 궈린(郭林, 1908~1984)은 50세에 자궁암에 걸렸고 수술을 하여 자궁과 방광의 일부를 떼어 냈으나 이미 암세포가 온몸에 전이되어 가망이 없었다. 그녀는 예전에 그림을 그리러 산으로 다닐 때 만난 도사들에게서 배운 기공을 생각해 내고 이를 스스로 실천하여 암을 고쳤다. 여사는 이 기공의 핵심만 추려서 현대인들이 하기 쉽게 간략하게 만들어 ‘궈린 신 기공 요법’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보급하였으며 그 이후로 궈린 기공은 암에 유효한 것으로 속속 드러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수련하고 있다.
▶ 문화대혁명과 기공말살 정책
(1966~1976년)
그러나 1966년부터 시작하여 10여 년에 걸친 중국의 문화혁명 기간 동안에는 氣 또한 낡은 관습으로 간주하였고 무수한 기공사(氣功士)들이 탄압을 받았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氣는 허망한 것이며 척결해야 할 봉건미신의 잔재라는 주장과 함께 氣라는 말이 역사 문헌상의 용어로만 남을 운명에 처했다.
1976년에 문화혁명이 끝나고 마오저뚱(毛擇東)이 1977년에 죽으면서 氣가 다시 살아났다. 되살아난 가장 큰 이유는 기공이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에서 회복하는 데 효험이 있다는 것을 여러 사람들이 경험을 통하여 확인한 데 있다. (다음호에 연재)
투고: 방건웅 박사
2004년 07월 03일
과학부의 다른기사 보기
http://www.epoch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