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氣 열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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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서 계속)
▶ 문화대혁명 이후 기공(1977~1990년)
1977년에 상해중의학원, 상해중의연구소, 중국과학원 상해원자핵 연구소는 공동으로 기공사들이 발공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구명하기 위하여 최초로 현대적인 장비들을 동원하여 측정하였다. 이 결과 기공사들이 발공할 때 적외선, 정전기, 자기, 특정 이온 등을 방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78년 7월에는 베이징에서 현장 감정 측정이 있었다.
이 당시에 중국과학원, 국가과학위원회, 중국과학협회, 위생부, 국가체육위원회에서 당과 정부 주요 인사 600여 명이 참석하여 기공사들의 공개시연을 보면서 감정하였는데, 기(氣)는 물질적인 존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후로 기(氣)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였고 의료기공에 관한 전국적 조직을 결성하기 시작하였다. 1981년에는 정부 승인 하에 “중화전국중의학회기공과학(氣功科學)연구회”(약칭; 중국기공과학연구회)를 설립하였으며 물리, 화학, 생물, 생리, 심리의 5개 조직으로 구성하였다.
뒤를 이어 “중국의학기공과학연구회”, “중국체육기공과학 연구회”, “중국교육기공과학 연구회”, “중국특이공능과학(特異功能科學)연구회”를 설립하였다. 이중 “특이공능과학연구회”는 후일 “인체과학(人體科學)학회”의 모체가 되었다. 이 당시 설립했던 관련 연구소로는 1983년에 세운 북경 중의약대학 산하 “기공과학연구소”, 1985년에 세운 “상해기공연구소”가 있으며 또한 1985년에는 상해중의약대학과 중국 중의연구원 침구연구소에서 공식적으로 의학기공의 석사학위과정을 개설하였다.
▶ 중국정부의 기공에 대한 삼불(三不)정책
이후 중의학(中醫學), 체육, 교육, 특이공능(特異功能) 등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으며 연구결과들은 주로 “자연잡지”, “기공과 과학”, “중국인체과학” 등과 같은 전문 학술 잡지에 실렸다. 90년대를 전후하여 기공관련 전문잡지는 30여 개를 헤아리기에 이르렀다. 기공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허용한 배경에는 유물론적 사상의 중국 공산당 정부가 기( 氣)의 물리적 실체를 인정하였다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 연구에 대해 논쟁이 심해지자 중국정부는 기공에 대하여 선전하지 않으며[不宣傳], 반대하지 않고[不批判], 논쟁하지 않는다[不爭論]는 소위 삼불(三不)정책을 표명하였다. 90년대에 중국에서 氣에 대한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은 약 500여 명에 달했다. 필자는 21세기에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적 강자로 부상할 수 있다면 그 가능성
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기공(氣功)과학은 다시 건강기공과 의료기공으로 나누며 건강기공을 체육기공이라고도 한다. 건강기공은 질병을 미연에 방지하고, 의료기공은 질병치료에 사용하는 것으로 아무 질병이나 치료할 수 있지는 않다. 장기의 기능이 약해지면 건강기공으로 쉽게 회복할 수 있으나 일단 기능을 상실하면 아무래도 치료가 어렵다고 한다.
현재 의학의 흐름이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옮겨가는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예방의학적 관점에서 기공을 적극 활용함이 적절한 방법 중 하나일 수 있으리라.
(다음호에 연재)
투고: 방건웅 박사
2004년 0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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