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의료보험천국’ 대만에 가다
지난해 미국의 <에이비시방송>은 대만을 ‘의료의 유토피아’로 극찬한 바 있다. 대만 사람들은 낮은 수준의 의료보험료와 본인부담금으로도 가고 싶은 병·의원을 자유롭게 선택해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만의 전민건강보험(전민건보)은 출범 10년만에 70% 이상의 국민들로부터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만 현지취재를 통해 세계로부터 호평받고 있는 전민건보의 의료 보장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본다.
암·에이즈 등 ‘중대상병’ 31종은 대부분 무료진료
“저기 저 사람은 에이즈 감염자인데 ‘중대상병카드’를 신청하러 왔어요”
우리나라 건강보험공단격인 대만 중앙건강보험국의 타이베이 분국 5층 민원실을 찾아가 만난 리더전 주임은 민원 접수창구 앞에 서있는 20대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민원실 책임자인 리 주임은 중대상병카드에 대해 암, 에이즈, 희귀질환 등 장기간 고액치료가 필요한 31종의 질환(표1)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본인부담을 면제해주는 일종의 의료복지제도라고 설명했다. 중대상병카드를 발급받으면 병·의원에서 거의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중대상병카드를 재발급받기 위해 타이베이 분국을 방문한 린메이윈(58)은 “지난 1995년 유방암으로 오른쪽 유방절제수술을 받았다”며 “보험 당국이 우리 같은 암 수술환자들의 의료비를 전액 지불해주어 고맙기 이를데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절제수술 뒤 10년간 대만 최고 수준의 국립대만대학 부속병원에서 추적치료를 받고 있다”면서 “부속병원에 직접 지불하는 돈이 한달에 고작 100대만달러(한화로 3474원, 2003년 평균기준환율 1대만달러=34.74원) 밖에 안된다”고 밝혔다.
100대만달러의 내역은 다음과 같았다. 자기처럼 유방암 수술환자는 한달에 한번씩 추적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여기서 이상이 발견되어 최근 6개월간 24차례 주사를 맞게 되었지만 한달치 병원비는 100대만달러가 전부라는 것이다.
즉 한달에 4차례 부속병원에 가 3차례는 주사만 맞고 한 차례는 주사와 함께 한달치 약을 타왔는데, 주사 맞을 때는 무료였고, 약을 타올 때만 진찰료로 100대만달러를 지불했을 뿐이다.
대만에서 진찰료는 등록비라고도 불리는데 동일질병에 대해 의료기관 첫 방문 때 한번만 내며 비급여 항목으로 금액은 의사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의원급은 50대만달러, 병원급은 100대만달러가 보통이고 한푼도 안받는 곳도 있다. 전민건보와 계약하지 않은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800대만달러의 고액을 받는 곳도 있다고 한다.
자식들은 장성해 외국에 체류중이고 남편과 함께 타이베이 근교에서 산다는 린메이윈은 “나처럼 자영업자가 아닌 지역가입자들은 매달 604대만달러의 건강보험료를 동사무소에 납부하고 있다”면서 “결국 매달 내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의료비는 모두 704대만달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본인부담금 평균 10%일정액 넘으면 면제 대만 정부는 지난 1995년 ‘전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각오로 10여개 의료보험을 통합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과 비슷한 ‘전민건강보험’(전민건보)의 돛을 올렸다. 린메이윈은 전민건보 출범 당해년도부터 중대상병카드를 비롯해 보험 적용을 받아온 전민건보의 1세대 수혜자이자 전민건보 역사의 산 증인들중 한 사람인 셈이다.
중대상병카드는 지난 8월 현재 전민건강보험 전체가입자 2100만여명중 3%에 해당하는 68만여명에게 발급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전민건강보험은 2003년 한해동안 중대상병카드 보유자들의 외래·입원 진료비를 의료기관에 지불하기 위해 총지출의 4분의1에 해당하는 859억6천만 대만달러를 투입했다. 전민건강보험 재정의 25%를 전체가입자의 3%에 불과한 중대상병 환자들이 쓰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대상병카드 보유자는 보험 당국으로부터 일반 가입자의 10배에 이르는 1인당 연평균 15만5천 대만달러의 의료비 지원을 받고 있다.
타이베이 시내에 자리잡은 대만골수이식환우회 사무실에서 만난 양위칭 환우회장은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 행복하다”는 말로 전민건보의 의료 보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양 회장은 “백혈병 등 골수이식을 해야 하는 환자들은 발병후 이식수술에 이르기까지 전민건강보험으로부터 1인당 보통 200만대만달러(약 7천만원)에서 최고 400만대만달러의 비용을 지원받을 뿐만 아니라 이식후 추적치료에 대해서는 중대상병 혜택까지 누린다”고 말했다. 그는 “전민건강보험이 출범한 해인 95년 이전에는 골수이식환자들이 집 팔고 땅 팔아 치료비를 조달했다”며 “나처럼 집도 땅도 없는 사람은 치료도 못받고 그냥 죽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 나라에 태어나 행복하다” 보혐료 못내도 의료서비스
전민건강보험은 골수이식 환자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중대상병카드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의료의 보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무분별한 병·의원 이용을 방지하기 위해 진료비의 일부를 수진자에게 직접 부담시키는 본인부담제도(표2)를 운영하고 있으나, 총진료비중 본인부담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평균 10%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또 일정 액수를 넘는 본인부담액은 상한제를 적용해 상한액 초과분을 면제해주고 있다. 상한액은 입원당 2만3천대만달러, 연간누적 상한액은 3만9천대만달러에 불과하다.
전민건보는 빈곤층을 위해서는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도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있다. 미납 보험료는 세금에서 보조하거나 다른 재원에서 미납자의 보험료를 보충하도록 규정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또 도서벽지에서 개업하는 의사를 지원해 해당 주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여주고, 희귀질환용으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의약품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있다.
이밖에 치과 진료에서는 예방의학 차원에서 14살 이상 가입자를 대상으로 치석제거 스케일링을 연 2회 보험처리해주고 있으며, 중의 진료에서는 의약 당국이 허가해준 가루 한약을 증상에 따라 섞어 조제해주는 것에 대해 보험을 적용해주고 있다.
타이베이/글·사진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건강보험공단 후원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 : 天下無雙 >
<기고> 건강보험, 대만에서 배우자
[한겨레] 정부 의지·의료계 협조로 선진 의보 결실
우리나라가 1989년 모든 국민의 손에 의료보험증을 쥐여준 이른바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달성하였을 무렵, 대만은 고작 국민의 절반만이 의료보험증을 직종 조합별로 보유한 의료보장 후진국이었다.
대만 보건당국인 위생서는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세계 각국의 의료보장 제도를 조사하러 다녔으며, 우리나라도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들의 노력은 95년 전민건강보험법으로 열매를 맺어,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의료보장 제도를 둔 나라로 우뚝 섰다. 이제 의료보장 후발국들이 대만의 제도를 배우기 위해 몰려들고 있고, 대만 보건 당국은 이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잘 짜인 선진 의료보장 제도가 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대만 건강보험 제도가 세계적 제도로 발돋움하는 동안 우리는 의료보험의 관리운영 방식을 통합할 것이냐, 그대로 조합별로 할 것이냐를 두고 지난한 논쟁만 일삼았다. 그러는 사이 89년 이래 지난 15년 동안 건강보험 제도의 보장성은 여전히 50%대에 머물고 있다. 반면에 대만 전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90%이고, 암 등 중증질환자는 사실상 무상의료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의 기술적 수준이 세계적으로 높은 나라에 속한다. 대만의 의료수준도 우리보다 결코 뒤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대만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민의료비 수준은 2003년 현재 6.0%로 우리나라의 6.2%보다 낮다. 보험료는 우리보다 조금 더 내지만 보험 혜택인 보장성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대만 의료체계가 그만큼 더 효율적이란 얘기다.
왜 그럴까? 대만 정부는 우선 보건의료의 사회 전체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강력한 정책 개입을 추구하고 있다. 의료계도 소위 통제된 의료수가 속에서도 대국적 견지에서 국민건강을 위해 협력할 때는 확실히 협력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비중이 보건의료 재정과 공공의료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우리보다 크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의료비 지출 중 공공부문 지출의 비율은 53%(2001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저수준)로, 대만의 65%에 비해 크게 낮고, 공공의료의 비중도 우리나라가 병상 기준으로 10% 수준이나 대만은 33%나 된다. 대만의 대형 병원들은 거의가 다 공공병원이다.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7개 질병군에 대해 시범사업을 해오던 포괄 수가제의 본 사업 시행을 무작정 미루고 있다. 과잉진료를 부추기는 행위별 수가제의 병폐는 누구나 인정하고 있되, 그 해법을 토론하는 데는 정부도 의료계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
의료계는 연간 진료비 총액을 미리 정해 운영하는 방식의 총액계약제도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이것들이 필요함을 알고는 있으되, 이해 당사자들의 처지를 고려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만은 단일보험자 방식의 통합 의료보험을 선택하였고, 세계적 수준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대만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암 등 중대 질병에 대해 과감하게 무상의료의 이상을 거의 실현하고, 포괄 수가제를 53개 질병군에 두루 적용하였으며, 총액계약제를 모든 의료 분야에 걸쳐 시행하고 있는 대만 전민건강보험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이미 보고 있는 것이다.
이상이 /제주대의대 의료관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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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4-10-12 19:20:06
< 출처 : 天下無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