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 때 중국군이 두만강 넘어 침입… 확성기로 5년간 비방…
울며 겨자 먹기로 눈물 흘리면서 참았다』
1977년 호네커와의 정상회담록에서 金日成은 70년대 상반기에 중국으로부터 당했던 고통을 심각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협력과 관련하여 우리는 소련과 중국의 현재 관계 때문에 특별히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련 동지들이나 중국 동지들이나 다 역사적으로 우리와 함께 한 전우(戰友)들입니다. 우리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일본에 대해서만 함께 투쟁한 것이 아닙니다. 1945년 이후 중국혁명전쟁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함께 싸웠습니다.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자들로부터 빼앗은 무기를 중국 인민해방군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예부대와 포병을 중국에 보냈습니다. 조선대혁명군은 중국군대와 함께 중국의 끝인 하이난(海南)까지 갔습니다. 그렇기에 중국동지들은 조선인들도 피를 흘렸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관계가 밀접한 것입니다. 우리가 미국에 반대하여 투쟁할 때 그들은 의용군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1천5백㎞에 이르는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매우 밀접합니다.
우리가 밀접히 협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하는 모든 것을 다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중국이 하는 것처럼 단 한 분야에서만 기술건설을 수행하지는 않습니다. 중국이 인민공사를 건설했을 때 우리는 정상적인 동지관계가 되었습니다. 중국이 인민들의 내부모순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반대했습니다. 특히 소위 문화혁명을 수행할 때는 관계가 아주 나빴습니다. 그들은 1천5백㎞의 국경에 확성기를 설치하고 조선의 「수정주의자들」을 비난했습니다.
중국과의 국경지역에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들은 매일 확성기로 말했습니다. 우리 인민들은 밤에도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중국은 큰 나라이기 때문에 커다란 확성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민들에게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38선에서는 미군이 확성기로 우리를 반대하는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북쪽에선 중국이, 남측에선 미국이 양쪽으로 그랬던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확성기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는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했습니까? 우리와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된다면 우리는 조용히 그리고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등뒤에 적을 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북쪽과 남쪽에 동시에 우리의 군대를 집중시킬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한국 속담에 있는 것처럼 울며 매운 겨자를 먹었습니다. 겨자는 매우 매워서 우리 눈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매운 것을 먹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삼켰습니다. 문화혁명이 끝나갈 때쯤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였고 결국 개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중국이 소련을 제국주의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내?1975년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공동성명에 「헤게모니」(패권)와 같은 단어를 집어넣으려고 했습니다. 내가 반대했기 때문에 그것은 빠졌습니다. 그들은 많은 점에서 우리를 이해했습니다. 나는 우리가 적들과 싸워야 할 때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중국을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윱求?
다른 면에서 우리는 중국에 반대하는 소련의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레닌을, 10월혁명을 수행하고 인류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준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소련은 항상 경제적 정치적으로, 그리고 한국전쟁기간에도 우리를 지원해주었습니다. 소련은 의용군을 보내주지는 않았지만 고문단을 보내주었습니다. 전후(戰後) 건설시기에 그들은 우리를 지원했습니다. 현재 그들은 우리의 발전소와 제철소 건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련과 좋은 무역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우호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등소평(鄧小平)의 집권후 중국-북한 관계는 개선되었다. 1982년 4월 金日成의 70회 생일에 鄧은 호요방(胡耀邦)을 데리고 와 金日成에게 그가 중국공산당의 다음 번 총서기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胡耀邦은 金日成에게 소련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金日成은 이를 직접 소련 서기장 체르넨코에게 중계했다.
<1995년 11월 월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