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대기원시보 기자 webmaster@epochtimes.co.kr
츠하오톈(遲浩田, 전 인민해방군 국방부장)
동지들:
이 제목으로 글을 쓰는 내 심정은 매우 무겁다. 왜냐하면 중국 현대화의 과정은 여러 차례 외부 세력의 공격과 직접적인 침략을 받아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전형적인 것은 1927~37년의 이른바 ‘황금 10년’으로, 현대적인 시각에서 볼 때 전혀 황금이 아니었다. 이 중간에 1931년 9.18의 동북(東北)의 함락이 있고, 기동(冀東)의 어용 정권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1927~37년의 중국 경제발전 속도는 비교적 빨랐다. 기간시설 건설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군대 건설 또한 발전 추세를 보였으며 중국에는 약간의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것을 용인하지 못하고, 동북 3성을 점유하였다. 또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곧 총체적인 대(對)중국 전쟁을 개시하고, 중국은 8년 동안 고생스런 항전을 해야 했다. 참극 속에 비록 중국이 승리하긴 했어도, 그러나 몽고를 잃었고 원기를 크게 손상했으며 재산 손실은 6000억 불을 넘었다. 8년 전쟁의 파괴를 통해, 본래 빈약했던 중국은 더 빈곤해졌다. 일본의 침략은 중국 현대화 과정을 크게 연기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의 발전을 허락하지 않고, 중국의 현대화 과정을 방해하는 것은 줄곧 열강, 특히 일본의 언제나 변하지 않는 국책이었으며 우리는 이에 대해 아주 뼈아픈 역사적 교훈이 있다. 국가 간에도 협력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것은 경쟁과 충돌의 극단적인 형식 바로 전쟁이다. 협력은 잠시적인 것으로 조건적이지만, 경쟁과 충돌은 절대적인 것이며 역사의 주축이다. 이 때문에, 이른바 평화와 발전이란 지금의 주제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고, 이런 논조는 이론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사실과 역사경험에 부합되지 않는다.
중일(中日) 양국이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항상 숙적이었던 사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60 년대의 중소 분열로도 충분히 그 어떤 국가나 모두 국가이익을 유일한 행동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도덕에는 아무런 여지가 없음을 설명할 수 있다. 그 해 중국과 소련은 공동의 이데올로기가 있었고, 공동의 적을 대면하고 있었다. 게다가 중국의 낮은 과학기술수준은 소련에 대해 위협이 될 수 없었지만, 그러나 중소는 그래도 분열되었고 더욱 날카롭게 대항하였다. 그 속의 이유는 매우 많지만, 한 가지 기본적인 원인은 소련이 날로 발전하여 강대해지는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이런 발전 추세가 먼 장래의 일이며 현실이 아니라도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공동의 이데올로기와 공동의 적을 앞에 둔 강대국 소련과 약소국 중국마저도 분열될 수 있다고 할 때, 이른바 평화와 발전이 현재 중국 정치전략 및 외교의 주제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취약하며 아주 위험한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와 발전을 지금의 주제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고, 단편적이며 마비된 해로운 학설이다. 원인은 아래와 같다.
1. 열강들이 중국의 현대화과정을 공격하는 것은 일관된 국가 정책이다.
중국 근대의 역사 경험 및 교훈과, 중화인민공화국 50년 이래의 역사 경험과 교훈은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역사 법칙을 도출해냈다. 중국 현대화 과정에서 열강의 공격(전면적 전쟁수단을 포함)은 일관된 국책이라는 것이다. 지난 160년 간 이러했고 앞으로 160년도 여전히 이럴 것이다.
2. 발전은 곧 위험과 위협을 의미하며‘전쟁할 권리’가 없다면 발전할 권리도 없다
발전이 곧 위험과 위협을 의미한다는 이것은 세계 역사의 통칙이다. 단지 중국 역사상에 한대(漢代)에 ‘관문을 닫고’ 발전하면서 ‘천하주의’를 표방한 특수한 사례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때는 인구, 군사, 경제, 문화 그 어떤 방면을 고려해보아도 한족에 대항할 만한 어떠한 세력도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전국시대의 예를 들면, 어떤 한 나라의 발전은 다른 나라에겐 바로 위협이다. 이것이 세계 역사의 통칙이자 서방 외교의 핵심과 초석이다. 서양 외교학의 시조로 불리는 프랑스의 리슐리외(Richelieu) 추기경은 처음으로 외교 분야에서 중세의 질곡에서 벗어나 현대 외교를 창립하였다. 그 어떤 도덕과 종교의 속박도 버리고 모든 것은 국가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가 제정한 외교정책 덕분에 프랑스는 200여 년간 그 혜택을 입었고 유럽을 주재하였다. 그러나 그가 추진한 30년 전쟁 때문에 독일인민들이 학살되고 많은 소국으로 분열되어 끊임없는 불안에 처하게 되었다. 나중에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하지만 독일 통일과정이 나타낸 것은 ‘전쟁권’이 없이면, 국가의 통일은 물론 발전할 권리도 없다는 것이다.
3. 군사력 중심의 현대화는 중국의 유일한 선택이다
중국 위협론은 완전히 정확한 것으로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서양적 사유이다. “내가 문을 닫아걸고 우리나라 경제를 발전시킨다는데 누가 간섭한단 말인가?”라는 사유는 전형적인 중국식 사고이다. 이는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흐름에도 부합할 수 없는 것이다. 전국시대에 국익을 위해서라면 잔인함만 있을 뿐 조금의 온정도 용납하지 않았다. 누가 조금이라도 환상을 품기만 하면 역사의 잔혹한 징벌을 받아야 했다. 중국의 발전은 당연히 일본에는 위협으로 작용한다. 중국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일본 등 열강의 인식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상기점은 마땅히 중국의 발전은 당연히 일본에게 위협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 20년 이래의 평화와 발전 정책은 이미 끝에 이르고, 국제 환경은 이미 질의 변화가 발생하고, 열강은 이미 중국 현대화 과정을 끊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이 발전하려면, 자신의 발전권을 지켜야 하며, 곧 전쟁을 준비하고, 단지 싸움을 준비해야만 발전하는 공간과 시간이 있다.
‘이캄상으로 본다면 매 국가와 민족은 모두 자신의 생존권과 발전권이 있다. 가령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려면 석유를 수입해야 하고 생태를 보존하려면 중국의 산림을 보호하고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더 이상 자연적인 ‘이캄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열강에게는 열강의 ‘이캄가 있는데 2010년 중국의 석유수입량은 총 1억 톤에 달하며 2020년에는 2억 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열강들이 용인할 수 있겠는가?
토지와 해양과 같은 기초 자원의 쟁탈은 역사상 절대다수 전쟁의 근원이며 지금이 비록 정보화시대라고 해도 본질은 마찬가지이다. 발전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중국은 전쟁을 준비해야 하며 이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국제관례’와 열강들의 의도에 따라 결정된다. 중국의 최근 20년간의 평화와 발전정책은 이미 그 끝에 도달했으며 국제환경에도 질적인 변화가 발생했다. 열강들은 이미 중국의 현대화노정을 또 한 차례 꺽어 놓을 준비를 하고 있기에 중국이 발전하려면 자신의 발전권을 지키려면 오직 발전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얻기 위해 전쟁을 준비해야만 한다.
20년 간의 평화적이고 목가적인 발전은 이미 끝났으며 다음에 공연할 프로그램은 오직 군사력 중심의 현대화이다.
4. 외교가 내정을 결정한다
비록 우리에게는 전쟁을 치를만한 충분한 이유―국가 통일이나 남해를 수호하기 위해서 등―가 있지만 설령 중국 현재의 가장 매파라도 반드시 지금 당장 전쟁을 치르자는 것은 아니다. 발전권을 위하여 이것이 날로 위협받는 시기가 오면 그때에 무기를 들고 중국인의 발전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내정이 외교를 결정한다는 이것은 착오적이다. 전국시대에는 외교가 내정을 결정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이것은 단지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며 더욱이 중공의 경험속에도 있다. 70년대에 중국의 국방비 지출은 과학, 교육, 문화, 위생에 대한 지출 총계를 초과하였다(당시 중국이 매우 빈곤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지금 당장 중국의 군사비가 과학, 교육, 문화, 위생 지출의 총계를 초과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중국에 가장 필요한 투자수요는 바로 교육이다. 그러나 열강들이 이를 허락하겠는가?
어떤 사람은 말한다. 소련에서 해제된 비밀문건에 의하면 70년 대 소련은 중국을 전면침입할 계획이 없었다고. 설령 이 비밀문건이 정확하다 하더라도 역사적인 진실을 설명할 수는 없다. 정세란 항상 변하기 마련이며 마오쩌둥 시대에 철저한 물질적, 정신적 준비가 없었다면 소련 침입의 위험이 아주 증가했을 것이며 역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연약한 자는 단지 침략을 초래할 뿐인데 이런 각도에서 보아야만 진정으로 평화를 수호할 수 있다.
5. 선(善)을 추구하면 악(惡)을 얻으니 중국 미래의 10년이 평화로울 수 있겠는가?
중국 현대화노정을 꺽고, 중국인의 발전권을 박탈하기 위하여, 열강들은 여러 가지 상표를 내걸고 있다. 그중 가장 분명한 것이 바로 ‘3 섬이다.’ 그 중에서도 대만이란 상표가 가장 유효하다. 대만해협의 전쟁이 언제 발생하는가 하는 결정권은 우리 수중에 없을 뿐만 아니라 또 대만 독립파들의 수중에도 없다. 바로 미국과 일본의 수중에 있다. 대만해협에 만약 전쟁이 발생한다면 이는 통일전쟁일 뿐만 아니라 더 심층은 미일(美日)이 중국의 발전권을 박탈하기로 결심한 것이자 재차 중국 현대화노정을 끊는 것이다. 바로 역사상 갑오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전면적으로 중국을 침략하여 단지 영토를 나누고 배상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중국 현대화노정을 끊고 중국인의 발전권을 박탈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전략과 결전의 고도에서 대만해협 전쟁을 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군사력 수준으로, 미일을 상대한다면 전략결전을 말할 것도 못된다. 특히 미국에 대한 전략결전이라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다. 중국은 단지 많지 않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있을 뿐이며, 게다가 미국은 이미 NMD를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해협에 전쟁이 발생하는 시간을 연기하는 것은, 우선 반드시 대만해협의 전쟁을 ‘비슷한 전략 결전’의 수준까지 상승시켜야만 한다. 우리가 만약 대만해협 전쟁을 이길 수 없다면, 결과는 갑오 패전보다 더 비참할 것이다. 이 때문에, 싸우지 않으면 몰라도 전쟁을 한다면 곧 전면적으로 일본을 섬멸해야 하고, 미국을 불구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핵전쟁만이 감당할 수 있다.
선을 구하고자 하면 악을 얻는다. 이것은 우리 현재 정책의 최종 결론이다. 악을 추구하면 선을 얻는다. 오직 일본을 섬멸하고, 미국을 불구로 만들어야만 비로소 평화를 얻을 수 있으며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대만문제는 10년이상 끌지 못할 것이며 10년 안에 반드시 대전(大戰)이 있을 것이다!
6. 패권은 대국에 존재하는 본질적 특징이다
무엇이 대국(大國)인가? 패권(覇權)이 곧 대국이다. 패권이 없으면 곧 남에게 마음대로 유린당할 뿐, 다른 사람에게 운명이 통제당한 꼭두각시와 같다. 패권은 전국시대에 이미 객관적으로 존재했으며, ‘사람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단지 당신이 의식하는가 의식하지 못하는가, 주동적으로 추구하는가 아니면 피동적으로 끌려가는가 하는 것이다. 중국의 모든 문제는, 3개 섬 문제를 포함하여, 전략 산업을 발전시키는 문제이고 국내 각 계층 이익의 조정 문제는 결국 모두 중화민족을 위해 패권을 쟁탈하는 문제이다.
패권을 쟁탈하려면 반드시 내정이 안정되어야 한다. 내부가 안정되고 단결해야한다. 영국은 일찍이 해외에 대량의 식민지를 개척하여 노동계급을 귀족화 시켰고, 일본은 중국에서 거액의 배상금과 시장을 얻어 일본 하층민까지도 거액의 이익을 얻었다. 시대가 달라졌고 국정도 같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우리는 단지 패권의 시각에서 군사와 외교문제를 대해야 할 뿐만 아니라 패권의 시각에서 내부 계층의 문제, 계급이익의 조정문제를 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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