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5-08-24 09:36]
중국교포 ‘잉꼬부부’가 상대방의 지병을 고쳐주기 위해 한국에서 온갖 고생을 다한 끝에 마침내 나란히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에 나오는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을 연상케 한다.
골다공증을 앓고 있는 아내의 치료비를 벌려고 한국에 건너와 일하다 신부전증을 얻은 남편은 오는 24일 신장이식 수술을 받게 된다. 남편 덕택에 골다공증을 치료한 아내는 남편의 치료를 위해 애써준 병원·시민단체 등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신장기증 수술을 25일 받는다.
주인공은 중국교포 박룡운씨(45) 부부다. 박씨는 수술을 하루 앞둔 23일 서울 강동성심병원 병실에서 “아내의 병을 고쳐보려고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내가 병을 얻었다”며 “아내에게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내의 병만 고치면 내가 할 몫은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나까지 도움을 얻게 돼 조국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중국 지린(吉林)성 출신인 박씨는 1997년 9월 아내 김순길씨(42)의 골다공증 수술비를 벌기 위해 산업연수생 비자로 입국했다. 현지에서 문짝을 만드는 기술자로 일하면서 생계를 이었지만 아내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살던 집을 팔고 빚을 내가며 입국한 그에게 닥친 외환위기는 그의 삶을 더욱 어렵게 했다. 일하던 공장이 문을 닫자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막노동판에 나가야 했다. 임금을 떼이기도 했지만 아껴 모은 1천4백만원으로 2000년 아내를 한국에 불러와 수술을 받게 했다. 골다공증이 심한 골반뼈 탓에 걷기조차 힘들었던 아내는 인공 뼈 이식 수술을 받고 새삶을 찾았다.
하지만 곧 박씨에게도 병마가 달려들었다. 같은 해 갑자기 눈이 침침해 병원을 찾았던 그에게 의사는 만성신부전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운영하는 인공신장실에서 무료 투석을 받으며 생활했다. 특히 부인이 3년여간의 회복기를 거친 뒤 남편 대신 생계를 챙기기 이전까지 이들 부부는 라면 하나로 하루 끼니를 때웠다.
결국 지난달에서야 장기기증운동본부가 딱한 사정을 알리고 모금운동을 벌이는 한편 박씨에 신장을 기증할 사람을 찾으러 나섰다. 4천만원 상당의 수술비 중 지금까지 모인 성금은 2천3백만원. 또 서울 강동성심병원이 비용을 일부 탕감해 박씨의 수술을 맡기로 했다. 때마침 박씨와 조직이 맞는 신장기증자도 나타났다.
아내 김씨는 도움을 준 사람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자신의 신장을 다른 환자에게 기증키로 했다. 박씨도 무료 투석을 받기 시작한 2000년 이미 사후 장기기증서약을 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