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관할권 이전이 해체 가속할 것”… 조선족 인구비율 추락 ‘위기가 현실로’
‘우리의 장백산은 우리 손으로!!!’
지난 7월 25일 중국 정부가 장백산(중국의
백두산 명칭) 관할권을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길림성으로 이전하면서 촉발된 중국동포들의 반발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yanbian.e2008.org)에서 실시되고 있는 서명운동에는 8월 19일 현재 4413명이 참여했다. 중국동포들 사이에서만 떠돌던
소식이 국내 언론에도 보도되면서 각국의 해외동포들까지 서명에 동참했다.
홈페이지 운영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연변 출신의 조선족
대학생일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넷까지 엄격하게 검열하는 중국 당국의 통제 속에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운영되는 것은 서버가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가 사용하고 있는 IP는 한국통신 것으로 중국 당국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우회한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동포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서도 논란은 뜨겁다. 5만명이 넘는 회원을 거느린 ‘중국조선족대모임(cafe.daum.net /yanji123)’ 등 몇몇 중국동포
커뮤니티에는 “서명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시위에 나서자”는 의견도 올라와 있다. 조심스럽게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독립을 거론하는 주장도 찾아볼 수
있다.
자치주 독립 목소리도 들려
그러나 연변에 거주하는 중국동포와 외지로 이주한 중국동포 사이에는 미묘한
의견차이가 있다. 연변 독립이나 시위를 언급하는 회원들은 주로 연변을 떠나 생활하는 중국동포들이다. 연변에서 거주하는 동포들은 “안타깝지만
정부가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거나 “괜히 감정을 부추겨 동포들을 다치게 하지 말라”는 식의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베이징에서 유학하고
있는 한 조선족 대학생은 “연변에 있는 조선족 동포들은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 탓에 ‘우물 안 개구리’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다”면서 “그렇지만
이러다가 자치주가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같다”고 말했다.
중국동포들에게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붕괴는
이제 우려 수준을 넘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번 백두산 관할권 이전은 자치주 해체에 속도를 더할 것 우려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백두산 관할권을 길림성으로 이전하는 이유에 대해 “장백산자연보호구에 대한 보호강도를 높이고 길림성 관광우세산업을
재빨리 육성해 장백산에 대한 통일적인 계획, 보호, 개발과 관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간도협약 무효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김원웅 의원(열린우리당)은 “중국이 백두산을 직접 관할하겠다고 나선 것은
‘민족의 성지’라는 전래의 개념을 희석시켜 연변과 북한을 민족적으로 분리하려는 의도”라며 “남북의 화해무드를 고려한 정치적 포석”이라고
경계했다.
현지 소식통들은 “중국 당국이 백두산 관할권을 길림성으로 이전하기 일주일 전인 7월 16일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비밀리에 백두산을 찾았는데 여기에는 뭔가 정치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중국 중앙정부의 고위급 인사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찾는 일은 거의 10년에 한번꼴로 있을까 말까한 대대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
고위급 인사들의 방문은 비밀리에 빈번하게 이어지고 있다.
관광수입도 중국 호주머니 속으로
중국은 55개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가 화해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내재적인 독립 가능성이 높은 연변조선족자치주에 대한 단속이 더욱 심해지는
추세다. 중국은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한편으로는 자멸을 유도하기 위해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2003년에 두만강 인근 지역에 15만명의 병력을 집중배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북한의 핵무장을 포기시키는
동시에 탈북자를 막는다”는 구실을 내세웠지만 이 보다는 연변과 북한의 직접적인 연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동북공정은 영토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이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김우준 교수는
“백두산을 직할체제로 변경한 것은 북한 내부에 급박한 변화가 왔을 때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영토 문제를 한발 앞서 차단하려는 전략인데 우리
정부는 북핵 문제에만 집중할 뿐 주변 정세에 대해 손을 놓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전방위 압력은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 적극적인 동화정책과 이주정책의 효과로 1952년 자치주 설립 당시 64%에 달했던 조선족 인구비율은 1998년 39.7%로 떨어졌다.
그 이후의 상황은 통계자료가 없어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더 나빠지면 나빠지지 절대로 나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연변지역의 인구증가율이 0.4%에 불과하고 결혼과 취업을 위해 한국으로 건너가는 숫자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 조선족 인구비율은
30%에도 못미칠 것이라는 비관적인 의견도 있다. “10년 내에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사라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정설로 받아들여질 만큼
중국동포들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 백두산 관할권 이전은 연변 경제의 주름살을 더욱
깊게 하는 악재다. 백두산 관할권과 함께 관광수입도 중국 정부의 호주머니 속으로 고스란히 넘어가버리기 때문이다. 농업 이외에는 별다른 산업
기반이 없어 백두산 관광수입으로 근근이 연명하던 연변 경제는 이번 조치로 사형선고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결정타를 맞은 연변 경제는 살길을
찾아 떠나는 이주민을 양산하는 악순환의 고리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가뜩이나 줄어든 조선족 인구가 심리적 저항선마저 넘어선다면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존폐 문제가 중국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유병탁 기자
lum3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