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이 남한의 인터넷 신문에 북한 내부의 비리를 제보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북한전문 인터넷신문 <데일리엔케이>는 "자신을 북한 신의주 주민 '김씨'라고 밝힌 한 남자가 26일 전화를 걸어 왔다"며 북한 조선노동당 원자력지도국 산하 강성무역회사 강영세(47) 사장의 비리를 30일 보도했다.
"중국 쏘지(手機 ; 핸드폰의 중국식 표현)로 전화하는 중"이라고 소개한 그는 "반드시 폭로해야 할 것이 있다며 2차례에 걸쳐 30여분간 강 사장의 악행을 얘기했다. 강성무역회사는 연간 60만 달러 정도의 수익을 남기는데, 강 사장이 이중 20만 달러를 중앙당에 바치고 나머지를 자신의 이익으로 남기고 있다는 게 제보의 골자.
강씨가 평북 남부의 해안도시 곽산군에 기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수십여 명의 주민들을 동원하고도 노임을 지급하지 않았는데, 건설책임자 P씨가 대금 지급을 요구하다가 흥분해서 기지 유리창을 깨는 바람에 '국가건물파괴죄'로 몰려 13년 징역을 선고받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강 사장이 첩을 4명이나 두고 있다", "나이가 40대 후반인데 예순 넘은 노인한테도 욕설과 구타를 일삼는다", "중학교 다니는 아들이 학교에서 양담배를 핀다"는 얘기도 나왔다. 북한에는 간부들의 비리와 잘못을 제보하는 신소(伸訴)제도가 있지만, 신소를 한다고 해도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주민들은 이 제도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신의주 출신 탈북자 김은철씨는 "신의주에서 무역회사 사장의 끗발은 당 간부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여서 권세가 하늘을 찌른다"며 "국가에 바치는 돈이 많은 데다 연줄이 있기 때문에 중앙당에서 단속을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김씨는 "오죽했으면 중국에 있는 조선대사관을 통해 투서를 해볼까 생각도 했다"며 "지금 신의주 주민들은 강영세를 미국놈들 보다 더 나쁘다고 말한다. 소설에 나오는 일제 지주놈들이 우리 눈앞에 나타나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중 북한대사관에 투서를 하려다가 한 화교가 <데일리엔케이>의 전화번호를 인터넷에서 찾아줘 전화를 하게 됐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남한의 인터넷뉴스를 모니터하니 북한 지도부도 이를 인지하게 될 것이라는 게 김씨의 계산이었다.
<데일리엔케이> 기자는 31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처음에는 남한 탈북자가 장난전화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제보자가 바로 엊그제 신의주에서 벌어진 일과 장마당 물가 등을 정확하고 생생하게 알고 있었다"며 "단둥(丹東) 특파원과 신의주 내부소식통 등을 통해 확인해보니 제보 내용도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데일리엔케이>는 "발신지가 신의주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과 인접한 신의주·회령·혜산 등에서는 휴대전화가 가능하다. 통화내용을 다른 탈북자에게 들려주니 '신의주 주민이 건 전화가 맞다'는 의견이었다"고 덧붙였다.- ⓒ 2005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