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胡錦濤측근을 직격「대만문제에서 어떠한 양보도 있을 수 없다」
歲川隆雄(토시카와타카오)「인사이드라인」편집장 3월 14일 - 중국에서 대만 독립저지를 목적으로 하는「반국가분열법」(전10조)가 채택되었다. 그 순간을 목격한 포드 저널리스트인 山本晧一씨에 의하면,「투표 버턴을 누를 때까지 기침 소리 하나까지 조심할 정도로 엄숙한 공기가 인민대회당에 퍼져있었다」는데 게시판에 찬성표「2896」(반대표 0표, 기권 기타 5표)의 숫자가 표시되자마자「크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일어나고 그 직후에 우뢰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그리고「그때까지 죽 굳은 표정이었던 胡錦濤가 일전하여 부드러운 미소를 띠운 것이 인상적 이었다」고 한다.
독립저지의 수단으로서 무력행사를 용인한다고 하는 동법에 대해서는 일.미가 우려를 표명하였으며 陳水扁 대만총통이 법안반대의「100만 명 데모」를 호소하는 등, 금후의 동향으로부터도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인사이드 라인』편집장 歲川隆雄(토시카와타카오)가 북경을 방문. 胡錦濤 공산당총서기의 권력기반「공청단인맥」의 생각에서부터 대만이 준비하고 있는「총통부인 방일계획」까지 반국가분열법을 둘러싼 중.대의 「물밑 투쟁」을 보도한다.
3월의 북경은 얼어붙을 만큼 춥다. 중국국제교류협회(회장=李貴鮮 전국정치협상회의부주석)의 초대를 받아 2년 만에 중국을 방문했다. 때마침 개최중(5~14일)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일본의 국회에 상당. 의장에 吳邦國 상무위원장)방청을 위해 인민대회당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9·11테러」의 잔재는 중국에도 여전했다. 일본을 출발하기 전에 취재비자를 취득했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전인대 취재를 위한 기자증이 필요하고 입장에 임한 체크가 엄중했다. 제10기 전인대제3회 회의 첫날, 溫家寶수상은 모두의 정부활동보고를 했다. 이 보고의 포인트는 두 가지다.
그 하나는 금번회의에서 심의, 채택된「반국가분열법안」이었다. 溫家寶 수상은 보고 가운데서 동 법안을「대만독립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보이는 것」라고 설명한 다음 동법제정에 의하여 대만의 陳水扁정권이 나아가고 있는 독립화 노선을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저지할 생각임을 나타냈다.
한마디로 말하면 무력행사를 포함한 중국측의 모든 대응에 법적 근거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陳水扁정권이 강행하고 있는 주민투표를 통한 신헌법 만들기가 사실상의 독립으로 맺어지는 것이라고 胡錦濤 정권은 경계심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대만독립저지에 대한 강경자세에 대하여 부시 미 정권은 대만해협을 낀 일촉즉발의 중.대 관계를 우려하여 콘티 라이스 국무장관을 북경으로 파견했다. 한편 대만의 陳水扁 총통도 국민들에게 반국가분열법에 반대하는 100만 명 시위를 호소하는 등, 대만해협의 파도는 거칠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溫家寶 보고의 2번째의 포인트는 경기과열에 대해서다. 溫 수상은 정부활동보고에서 2005년의 경제성장률목표를 8%전후로 설정하여 과열되고 있는 경기억제를 위하여 종래의 적극재정으로부터 온건재정으로의 전환을 내놓았다. 작년의 GDP(국내총생산)은 13조6500억元(약 177조5000억엔), 성장률은 9.5%로, 1994년 이후 11년간의 평균성장률은 8.93%라는 경이적인 숫자이다. 작년의 경제성장률도 목표는 7%로 되어 있었으나 실적은 9.5%로 대폭으로 상회하여 목표의 형해화가 지적되었다. 이 때문에 금번은 현실적인 목표숫자를 설정한 것이다.
나는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李肇星 외상의 기자회견에도 임했다. 놀랍게도 홍콩과 대만을 포함해서 해외로부터의 보도진이 1300명에 달했다. 외상회담에서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은 앞서 워싱턴에서 개최된 미일안보협의위원회(2플러스2)에서 합의된 「공통전략목표」가운데서 대만해협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요구한데 대하여 내정간섭이라고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의 초청자인 중국국제교류협회고문인 李淑 전 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장도 날카롭게 언급했다. 「어떠한 형태라도 대만을 포함시키는 것은 우리나라의 고유의 영토라고 하는 사실로 해서 중국에 대한 주권 침해이며 내정간섭이다. 결코 인정할 수 없다. 李淑 여사는 온건한 말로 돌려서 계속했다. 「일본이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것은 일본이 선택한 길이다. 하지만 미일동맹은 어디까지나 2국간의 틀에 엄격히 한정되어야 하며 대만문제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반국가분열법은 전쟁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李 고문의 주장은 시종 중국의 원칙론에서 이탈함이 없이 듣고 있으니 약간 욕구불만이 되었다. 필시 그 주장하고 싶은 말은 당 간부로서의 그녀가 자기의 주장을 확인 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서도 상해에서는 약간 뉴앙스가 다른 흥미 있는 발언을 들을 수가 있었다. 상해국제문제연구소의 吳奇南 부소장의 견해가 그러했다. 동씨와는 면식이 있었던 것과 동석한 兪新天소장이 陳良宇 상해당서기(공산당정치국원)의 돌연한 예방으로 중도에 퇴석한 일도 있었었기 때문일까 속마음 페이스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吳 소장은 말한다. 「12월의 대만 입법원 선거(여당111의석 야당 114의석)의 메시지는 이곳의 사람들이 안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당 신민당의 宋楚瑜(주석)이 금후 국민당(連戰 주석)에 접근하면 케스팅보드를 쥐게 될 것이다.
陳水扁이 나가는 노선은 李登輝(전 총통)와 차이가 있다. 따라서 대륙에서 보면 지금은 대만 인민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일본은 주의 깊게 대화의 가능성을 지켜보았으면 한다. 현재의 중국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흉내를 내면서 말하는 일은 없어졌다. 하나의 예외만을 제외하고.
「상해벌」을 대신하여 대두하고 있는 「공청단인맥」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우리나라는 타국을 침략한 일이 없습니다. 명 시대, 鄭成功이 인도까지 진출했지만, 그것은 침략이 아니라, 지금의 말로 하자면 비즈니스였습니다.
일본신문은『패권』의 논조가 눈에 띠지만 중국을 두려워할 일은 아닙니다. 이데올로기나 무력에 의한 해결은 전쟁을 부를 뿐입니다. 다만 대만문제는 우리나라의 내정문제이기 때문에 어떠한 양보도 절대로 없다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중화 전국청년연합회(전청련),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본부에서 기다리고 있은 사람은 넘버2의 江康平 전청련 부비서 실장, 공청단 국제국장이었다. 구미유학파인 동씨는 스마트하고 태도가 부드러운 국제파였지만 한 시간의 인터뷰 중 그의 눈이 웃는 일이 결코 없었다.
원래 공청단이란 무엇인가. 학생들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약 7000만 명의 단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공산당의 하부조직으로서 胡錦濤체제의 유력한 권력기반이다. 胡錦濤 국가주석이 지난날 제1서기를 맡았던 출신모체로서 李(이) 공청단에서 젊은 간부들이 배출되고 있다.
차세대의 톱 리더인 李克强 요령성 당서기(49)는 전제1서기다. 그 외의 젊은 간부에는 宋秀岩·청해성 당서기(49), 楊傳堂· 티베트自治區당서기(50), 劉寄?·광서티완族 자치구 당부서기(52), 令計畵 당중앙변공청부주임(47), 王-寧· 당중앙정책연구실부주임(49), 王晨 인민일보총편집(53), 袁純淸·합서성부서기(52),劉鵬·국무원교육부국가체육총국장(53), 그리고 周强·현제1서기(44) 등이 있다.
간부로서 이미 권력의 요로에 있는 자들도 적지 않다. 왕도국·전인대상무부위원장(63), 張福森 · 국무원사법부장(64), 孫家正 · 국무원문화부장(60), 張德江 · 광동성당서기(정치국원 59), 李源朝 · 강소성당서기(55), 宋德福 · 복건성당서기(58)등이 그렇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江澤民 전 국가주석시대는「상해벌」이 날뛰고 발호했으나 지금부터는「공청단인맥」이 무대표면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금번의 전인대에서 江澤民은 국가중앙군사위원회주석직도 물러나 명실상부하게 胡錦濤체제가 확립되었다. 금후는 胡錦濤칼라가 전면적으로 나오게 될 것인데 그때야말로 공청단이 나갈 차례가 본격적이 될 것이다. 江康平 국제국장은 「우리나라에는 청년육성이 점차 중요한 과제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을 지니고 도덕을 겸비하고 그리고 실용력이 있는 청년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전청련과 공청단이 국가에 바쳐야 할 책무는 무겁고도 큰 것입니다」 라고 말한 다음 이렇게 계속했다.
「이것만은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 세계대전에 대한 물리적 책임은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발생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소천수상의 야수쿠니 신사참배는 절대로 용인할 수가 없습니다」
외무성 톱의 저지로 치닫고 있는 「대만총통부인」의 방일 -
3월 25일, 愛知万博(아이치 만국박람회)이 9월 25일까지의 일정으로 개막된다. 개항하고 얼마 안 되는 중부국제공항의 번화함으로 상징되듯이 최근의 나고야경제권은 국내유일의 “활기의 상징”이다. 이 愛知万博이 지금 실은 국제정치의 파워게임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연초, 대만의 陳水扁총통의 부인 吳叔珍 여사가 愛知万博 견학을 이유로 5월 9일부터 14일까지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고 대북 주일경제문화대표처를 통해서 외무성에 타진해 왔다. 이 吳叔珍 여사의 방일요청은 내전승구 교류협회대북연락사무소장(전 주캐나다大使-61년 입성)이 대만측에 제공한 지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內田勝久所長이라고 하면 재작년 12월 12일에 대북시내의 호텔에서 천황탄생축하 리셉션을 열어 물의를 일으킨 것이 기억에 새롭다. 그 축하 리셉션에서 內田勝久所長은 내빈인 簡又 신외교부장 등의 앞에서「陳水扁총통을시작으로 모든 분의 발전을 축하합니다」하고 인사를 하면서 외무성의 阿南惟茂주중대사(67년)를 필두로 한 「차이나 스쿨」을 격노시켰다. 省내의 친중파로부터 내전은 「일중 트러블 메이커」「친대만파」로 보였다.
그러면 왜 총통부인의 방일이 문제시 되는가? 박람회기간중인 5월19일은「중국 나셔날데이」로서 이 날의 이벤트 개최에 맞추어서 吳儀 부수상(공산당정치국원)의 방일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소천 수상의 靖國신사참배문제로 일중양국의 정치관계는 냉각상태에 있고 吳儀 부수상도 방일하게 되었어, 동경에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吳儀방일이 실현되면 중국요인의 일본방문은 朱鎔基수상(당시)이래 5년만의 일이다. 또한 5월 6일부터 2일간 경도에서 ASEM(구주아시아회의) 외상회의가 열린다. 회의에 출석하는 李肇星 외상과 町村일본외상의 일중외상회의가 확정되어 있다.
즉, 吳叔珍여사의 방일목표는 중국의 부수상과 외상의 일본방문의 간극을 뚫고 일중 양국에 쐐기를 박는 데에 있다. 이러한 일본, 중국, 대만의 3파의 외교공세가 수면 하에서 한창 전개되고 있는 시기에 주목의 외무성 인사가 이루어졌다. 谷內正太郞 외무사무차관(69년)은 內田을 경질하고 池田維前 전 주 브라질 대사(64년)를 후임으로 기용하기로 내정했다고한다. 渡邊美智雄 외상시대의 아시아국장을 역임하였고 일중관계 심화를 담당했던 역시 「차이나 스쿨」의 지전을 대북으로 배치함으로서 총통부인 방일에 스톱을 걸겠다는 배포일 것이다.
그러나 일을 복잡하게 한 것은 竹內行夫 전 사무차관(67년)이 池田기용에 반대한 것이다. 4월9일로 예정되어 있던 차기 대북연락사무소 인사 여하에 따라서는 또 한번의 파란이 있을 듯하다.
「현재의 일중관계는 과거에 예를 보지 못했을 정도로 엄중함이 있다. 그것만으로 고도의 정치판단이 요구되고 있다」 阿南 대사가 나의 귀에 속삭인 말 한마디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