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실명·주민번호 中 인터넷서 대량 도용
일부 인터넷사이트, 한국 대학생·회사원·교인들 주소·휴대폰 번호까지 무상 제공
中 누리꾼들 한국 사이트 회원가입 때 써…“한국인 개인정보 구하기 쉽다”
미디어다음 / 온기홍 프리랜서 기자
지난 3일 오후(현지시간) 중국 난징시 난징이공대학 근처의 한 인터넷 PC방. 중국 국경절 연휴로 학교들도 방학에 들어간 때문인지 PC방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교환학생 자격으로 난징 소재 모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김효섭(27) 씨는 가끔씩 들르는 이 PC방에서 이날도 한국 인터넷사이트에 들어가 뉴스를 보고 필요한 자료도 찾고 있었다.
마침 그때 김 씨는 문득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한국의 인터넷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을 보게 됐다.
20대 나이의 옆 사람은 한국의 게임업체가 개발한 퓨전 무협액션 온라인게임 ‘묵향’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일행들도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한국 인터넷사이트에 가입해 한국 온라인게임을 즐겼다.
“인터넷사이트 회원 가입은 실명 확인이 돼야 가입이 가능할 텐데, 그때 주위의 중국인들은 한글을 모르는데도 한국 인터넷사이트에 척척 가입하더라고요. 혹시 조선족인가 생각하고 말을 걸어봤는데, 한국어는 하나도 모르는 중국인이었죠.”
김 씨는 “그 중국인들에게 신분증 번호와 이름 입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중국 사람인 것처럼 하고 물어봤더니, 그들이 한국인 주민등록번호를 생성해주고 한국인 실명·주민등록번호가 나와 있는 중국 인터넷사이트들을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중국인들이 알려준 인터넷사이트에 곧바로 들어가서 내용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중국 인터넷사이트에 한국인 수백 명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 등이 떠 있었기 때문.
그는 “한국인 주민등록번호 생성기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 인터넷에서 한국인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한 일체의 개인정보가 너무나도 쉽게 획득, 도용되고 있는 점”이라면서 “만일 이를 다른 목적으로 악용한다면 매우 큰 문제”라며 이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중국 인터넷사이트, 한국인 개인정보 및 주민등록번호 생성서비스 제공= 이날 중국인들이 들어간 중국 인터넷사이트는 한국인 실명과 주민등록번호 등을 무료 제공하는 인터넷사이트 A와 한국인 주민등록번호 생성기를 제공하는 인터넷사이트 B.
이들 인터넷사이트는 중국 누리꾼들이 한국인 개인정보를 무료로 쉽게 이용할 수 있게 서비스 하고 있다.
A사이트에는 ‘한국과 대만 신분증, 집 주소, 전화’라는 제목 아래 약 30명의 일반인을 비롯, 경기도 소재 ‘ㄷ’보건대학 소속 학생 50여 명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올라와 있다.
경기도 고양시 거주자들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휴대폰 번호를 무상제공하고 있는 중국의 A사이트.
더욱이 ‘상세자료’ 항목에는 대부분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약 30명의 개인정보(이름·주민등록번호·우편번호·주소·전화번호)는 물론, ㅇ·ㅅ·ㅎ·ㄷ 교회 등의 정보가 자세히 공개돼 있다.
아울러 A사이트의 다른 코너에도 한국 기업명·주소·전화번호와 150여 개의 주민등록번호가 올라와 있다.
B사이트에서는 ‘한국 신분증번호 생성’ 방법을 공개하고 있다. 먼저 이용자가 생일과 임의의 다섯 자리를 입력하면 주민등록번호가 화면에 즉시 나타난다.
이 사이트는 또 한국 주민등록번호를 자동 생성해 주는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이용자가 선택메뉴 1개 또는 10개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자동으로 주민등록번호가 뜬다. 실제로 10개 버튼을 누르자마자 즉시 각기 다른 10개의 주민등록번호가 생성됐다.
B사이트는 초기 화면 하단에 “한국의 일부 웹사이트에서는 실명과 신분증이 일치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여기서 제공할 수 없다”고 공지하고 있다.
이들 인터넷사이트 말고도 불법적으로 해킹된 한국인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다른 중국 인터넷사이트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중국 누리꾼들 “인터넷에서 한국인 개인정보 구하기 어렵지 않아”= 이처럼 중국에서 한국인 개인정보가 줄줄 새고 있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인터넷에서 한국인들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 같은 정보가 버젓이 흘러 다니고 있는 것. 이에 따라 한국인의 사생활 침해는 물론,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중국에서 도용되는 한국인 실명과 주민등록번호 등은 한국 온라인 쇼핑몰, 공공기관, 여행사 및 보안이 허술한 인터넷사이트에서 해킹을 통해 빼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말에는 중국인과 한국인이 짜고 한국 전자상거래 사이트와 여행사 한국인 주민등록번호 5만여 개를 훔친 다음 12만개의 인터넷 게임 계정(ID)을 만들고,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벌어들이거나 직접 만들어 1000억 원어치를 유통시켰다가 적발됐다.
이들은 중국 동북부 지린성 등에서 임금이 값싼 중국인 종업원을 대규모로 고용해 이러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5일 오전 베이징 중관춘의 한 인터넷 PC방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중국인 장 씨는 인터넷에서 한국인 신분증 번호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아냐고 묻자 “한국인 신분증 정보를 인터넷에서 구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는 또 “불법인 줄은 알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인터넷사이트에서 한국인 신분증 번호와 실명을 구해 한국 인터넷사이트에 가입해서 각종 자료도 보고 게임도 한 적이 있다”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같은 날 오후, 베이징 시내 북서쪽에 있는 하이덴치 류다오커우의 한 인터넷 PC방. 400석을 갖춘 이 인터넷 PC방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국인 남자 3명이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한국 온라인 게임을 해봤다는 이들은 “한국인 신분증 번호를 도용해 한국 인터넷사이트에 가입해 본 적은 없다”면서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인터넷에서 한국인 신분증 정보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베이징위앤원화대학 4학년에 유학중인 한국인 한모(27) 씨는 “인터넷에서 불법적으로 도용되는 개인정보 가운데 내 것도 들어 있을까 걱정이 된다”며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국인이나 다른 사람들이 내 명의를 도용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물질적 피해를 끼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칭화대학 1학년 정모(21) 씨는 “한국인의 개인정보 해킹과 도용이 국경을 넘어 이뤄지고 있어 불안하다”며 “인터넷 사기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 기관에서 개인정보 유출과 악용에 대해 서둘러 대책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