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는 중국인의 ‘일상’
2005/08/02 오전 12:51 | 사회문제들 | [람2담]
[화제]‘야바위’에서 인신매매까지
뉴스메이커 631호
중국 사기꾼의 기상천외한 수법들… 경제발전에서 소외된 빈곤층 “속여야 산다”
“중국에선 한발짝 옮길 때마다 조심하라.”
연변에서 베이징으로 유학온 지 3년 됐다는 한 조선족 대학생의 말이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크고 작은 사기에 휘말릴 수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충고였다.
범죄와 전쟁이라도 치러야 할 만큼 중국의 범죄 증가율은 연일 ‘상한가’다. 특히 자잘한 사기 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이제는 중국 사회의 보편적인 단면으로까지 인정될 정도다.
중국 사기꾼들의 범죄행각은 어디서나 쉽게 목격된다. 속이 보이지 않는 유리컵을 엎어놓고 장기알이 어느 곳에 들어있는지 맞히는 내기는 우리의 ‘야바위 노름’와 흡사하다. 바람잡이를 대동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현혹하는 기술은 세계 공통인 모양이다.
사기는 중국인의 ‘일상’
베이징 거리에서 갓난아기를 업고 ‘집에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도움을 청하는 여인이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배가 고프니 자비심을 베풀라’는 청년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이 정도는 사기 범주에 넣기 미안할 정도의 ‘애교’에 속한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환전이나 거스름돈 사기도 많다. 기념품을 살 요량으로 돈을 낸 다음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낭패를 볼 수 있다. “돈을 안 받았다”고 잡아떼기도 하고, 100위안을 받고도 “50위안밖에 안 받았다”고 우기는 일은 예사다. 그래도 그나마 이 정도는 나은 상황. 지불한 돈을 가짜돈으로 바꿔친 뒤 위폐를 사용했다고 몰아세우는 일도 흔하게 벌어진다.
잔돈이 많아 불편하니 바꿔달라며 접근하는 사람들도 요주의 대상이다. 10위안 짜리 10장을 세어서 보여준 다음 100위안 짜리와 바꿔가는데 나중에 세어보면 돈이 모자라기 일쑤다. 돈을 건넬 때 교묘하게 한두장을 빼내기 때문이다.
은행 앞에는 좋은 조건으로 외국돈을 위안화로 바꿔준다는 암달러상들이 죽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체로 사기꾼들이다. 이들은 관광객뿐 아니라 어리숙한 중국인들의 주머니를 털기도 한다. 달러보다 훨씬 가치가 낮은 외국돈을 달러라고 속이고는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며 위안화와 바꾸는 방식이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사기를 치는 행상형 사기꾼도 있다. 보통 판매자는 자신을 중국의 유명대학 졸업생이라고 소개하면서 약이나 상품을 안내한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월부 장수’와 비슷하다. 백화점이나 전문 판매점에서도 같은 물건을 팔고 있는데 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특별공급한다며 현혹한다. 하지만 거의 가짜거나 저질상품이다.
배달원을 가장한 사기꾼도 활개를 치고 있다. 쌀 등의 식료품을 들고 찾아와서 다짜고짜 배달왔다며 지불을 요구한다. 처음 당하는 사람은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배달을 시킨 것으로 여기고 아무 의심없이 돈을 건네기 마련이다. 나중에 보면 물건은 물건대로 형편없고 원래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지불했음을 깨닫게 된다. 가족이 배달시킨 물건이 아님은 물론이다. 통신회사 직원을 가장해 집집이 방문한 다음 혜택이 좋은 값싼 전화요금 상품으로 전환하라며 보증금을 먼저 받은 뒤 가로채는 수법도 있다.
휴대전화 보급이 늘어나면서 이를 이용한 사기도 급증하는 추세다. 복권이나 사은행사에 당첨됐다는 문자를 보낸 뒤 상품을 부칠 배송비를 보내라고 요구하는데, 일단 보내면 그 돈은 날아간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중국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방법이다.
값비싼 휴대전화를 가로채기 위한 사기 수법도 있다. 사기꾼은 달리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내 휴대전화가 없어졌다”며 소란을 피우다가 미리 점찍어둔 사람의 휴대전화를 빌려 자신의 전화에 전화를 건다. 승객들 사이에서 벨이 울리면 동시에 한 사람이 버스 밖으로 도망치는데, 이때 전화를 잃어버렸다는 사람은 “저 놈 잡아라”를 외치며 쫓아간다. 물론 두 사람은 공범이다. 소동이 끝나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전화를 빌려준 사람은 자신의 전화가 없어졌음을 깨닫게 된다.
중국의 사기 수법은 날이 갈수록 진화한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중국인도 미리 사례를 알아놓지 않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십상이다.
미혼약으로 판단력 마비시켜
최근 중국 CCTV는 대학가에 퍼지고 있는 신종 사기수법을 보도했는데 매우 치밀하게 준비된 범죄여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주로 출장을 다니는 회사원이나 장기간 외지에 나가 있는 유학생의 피해가 많았다.
먼저 사기꾼은 대상 인물의 기본 정보를 수집해 약점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사람의 전화에 지속적으로 소란스러운 목소리로 장난전화를 건다. 이 장난전화는 상대방이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거나 전화선을 뽑아놓을 때까지 계속된다. 상대방에게 전화 연결이 안 되면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사기꾼들은 즉시 대상 인물의 가족이나 친지에게 연락해 위급한 상황이라며 급히 돈을 보내라고 요구한다. 가족은 확인을 위해 이리저리 연락을 취하지만 연락이 될 리 없다. 다급한 마음에 돈을 보내면 상황은 끝난다.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종종 발생하는 ‘나야 나’ 범죄와 비슷한데 목표물의 기본 정보를 파악한 다음 ‘작업’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더 치밀하다.
중국에서는 길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도 함부로 받아서는 안 된다. 건네주는 전단지에 종류를 알 수 없는 약품이 발라져 냄새를 조금만 맡아도 정신이 몽롱해져서 판단력을 잃게 한다. 길을 묻다가 약도를 그려달라며 건네는 볼펜에 약이 묻어 있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물어보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다가 정신을 잃기도 한다. 미혼약을 이용한 범죄는 인신매매와 연계돼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중국에서 길을 물어보거나 도움을 요청해도 별 반응이 없는 것은 이런 범죄에 휘말릴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중국내 사기 범죄의 만연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중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경제발전의 지역차가 커지면서 절대빈곤층에 속하는 농촌인구가 대도시로 몰려드는 중이다. 대도시로 이주한다고 해서 이들에게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제한된 일자리에서조차 낙오된 사람들은 더 심각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해마다 중국 당국은 수만명의 사기꾼을 단속·처벌하고 있지만 효과는 그때뿐이다. 사기꾼 대부분이 사기를 치지 않으면 굶어 죽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권이 없는 절대빈곤층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유병탁 기자 lum3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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