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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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말도 많은 평양.. 대륙의 사서에서 위치를 찾아봅시다..
"...고구려는 평양성에 도읍하였는데, 이는 "장안성"이다. 산을 따라 굽이가 많고 남으로는 패수에 임하고 그 뒤에는 국내성과 한성이 나란히 있다..."
우리의 사학자들은 남쪽에 패수에 접해 있으니, 패수는 대동강이고 지금의 북한의 패수가 그 대동강이고, 그러니 지금의 평양이 고조선, 고구려의 평양이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북한은 그들나름대로 정통성운운하며 북한이 고구려의 계승자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지금의 평양이 고구려의 수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고조선과 고구려가 반도에 있었다는 가정(假定)에서 나온 것이고, 패수의 위치도 지금의 대동강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대동강(大同江)"이란, 여러 개의 강물이 모여서 흐르는 강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위수"에 해당합니다.
또, 국내성과 장안성과 한성이 나란히 있었다는 기록을 봐도 반도에서 지목하고 있는 평양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압록수는 국내성의 서쪽으로 흐른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도 얼마나 지금의 역사가 엉터리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역사대로라면 압록수는 국내성의 동쪽을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 사학자들은 이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함부로 기록이 틀렸다고 하는 것은 참 우습기까지 합니다. 무엇을 근거로 틀렸다는 것인지...
압록강의 물줄기는 백산에서 흘러나오는데, 압록강에 평양이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천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강이 압록강이고, 이 압록강이 험한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흘러가는 곳, 지금의 서안(옛 장안)에서 낙양으로 흐르는 강을 "압록수"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압록강이 헌한 산길을 돌아 나오는 곳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하나같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북한의 압록강이 당시의 압록수라면, 압록강 북쪽에 고구려, 남쪽에 백제와 신라가 나뉘어져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지.. 당연히 국사시간에서는 설명안합니다만..
고려사 현종때의 기록에는
"..... 이 달에 교서 내리기를 고구려, 백제, 신라왕릉, 묘당과 그 소재지 주현에 영을 내려서 수리를 깨끗이 하고, 나무하기를 금하고, 지나가는 자는 말에서 내려가도록 했다..."
고려 현종때라면 고려가 한반도라고 하니 북한이 압록강이 고려의 북쪽 끝인데 고구려 왕릉이 고려 강역안에 있었는지.. 또, 고려때까지 관리되었던 삼국의 왕릉이 왜 지금에 와서는 제대로 없는 것인지.. 특히 백제의 왕릉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우리는 통구에 있는 고분들을 고구려 왕릉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대로라면 만주지방에는 고구려이외에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후에는 후금, 청나라..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발해, 그 위치를 모른다고 주장하는 정안국등 수많은 고대왕조가 있었는데, 그들의 고분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찌해서 만주에 있는 고분군은 모두 고구려것이라고 주장을 합니까? 만주가 우리땅이 아니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주장이 고구려를 반도근처로 한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만들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신라말 신라왕족이었던 김헌창이 장안에서 반란을 일으켜 장안국을 세웁니다. 그 장안은 어디이며, 왜 장안국이라고 국호를 지었을까요?
지금의 역사대로라면 평양은 서경이었을텐데. 당시 고려의 수도라는 지금의 개성의 북쪽에 위치한 평양이 어째서 서경이 될 수가 있을까? 북경이면 몰라도.. 동서남북 하나 맞는 것이 없는 것이 지금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반도에 있는 지금의 평양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래의 것은 평양성 성벽에서 발견된 각자(刻字)입니다. 분명히 "평양"이 아닌 "한성"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우리가 알고 있는 평양성에 "한성"이라고 적혀 있는지..지금의 북한의 평양이 고구려의 수도이자, 고려의 서경이라면, 과연 900년 왕조 고구려의 궁성은 어디에 있으면, 왕의 집무실은 어디고, 왕비의 거처는 어디에 있으며, 황태자의 거소는 어디인가? 또한, 대신들이 정사를 의논하던 곳은 왜 없는가? 단지 성벽만 있고, 그 성벽에는 이곳인 "평양성"이라기 보다는 "한성"이라고 적고 있으니, 과연 이곳이 고구려의 서울 평양인가? 아니면, 장안이자, 평양이면, 상대적으로 서쪽에 있어 서경인 평양, 지금도 "서안"이라고 불리는 그곳이 고구려의 서울 평양인가? 관련 내용<패수와 서경>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1-01 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