뤄간(羅干)은 어떤 인물인가?
며칠 전 뤄간(羅干)의 아르헨티나 방문 기간에 중공 대사관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폭력배들을 동원해 평화적인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구타와 공격을 가했고, 아울러 그들의 현수막과 진상자료 및 개인물품을 약탈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뤄간이란 인물의 신분과 역할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부각되었다.
뤄간은 중공 고급 간부 가문에서 출생했으며, 문화혁명 당시 혈통론(血統論)을 숭배하는 반동조직인 '롄둥(聯動)'의 두목으로 도처에서 암살과 폭행, 파괴, 약탈을 자행했고 수많은 죄행을 저질렀다.
문화혁명 이후 뤄간은 자신의 출신배경 및 처가와의 관계를 이용하여 정법(政法)부문에 들어갔다. 그 사람됨이 음험하고 교활하며, 수단이 악랄할 뿐만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르고 권모술수에 능해 사사로이 무리를 짓고 사욕을 추구했던바,
한마디로 중국의 베리야(스탈린의 충복이자 악명 높은 비밀경찰 책임자. 살아있을 때 소련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온갖 죄행을 저지르다 결국 스탈린 사후에 총살당함)였다.
뤄간은 수단이 악랄하고 야심이 큰 인물로 권력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가 단지 살인에 만족하지 않고 국가 최고 권력을 넘보고 있다는 것은 그의 수하들도 모두 알고 있을 정도이다.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 중에 소위 '폭도들이 탱크에 불을 지르고 차량을 태웠다'는 등등의 사기극은 바로 뤄간의 작품이었다.
뤄간은 중공이 내부적으로 실시하는 국가테러리즘의 최고위 직접지휘자로 정법(政法), 국가안전부, 무장경찰, 공안 등의 계통을 조종하여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당간부, 지식인 및 일반 백성들을 박해하고 탄압했다.
후야오방의 전(前) 비서였던 린무(林牧)선생은 뤄간을 파시스트, 특무분자라고 칭했다. 뤄간은 반(反)부패의 구실로 정적을 타도했으며 수많은 반부패 안건에서 자신의 이익집단에 속하지 않은 대량의 고위관료들을 공격하여 많은 관원들이 조사받는 도중에 분분히 자살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뤄간이 지시한 잔인한 핍박수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뤄간은 또한 국가전복죄 및 국가기밀누설죄라는 구실로 공산당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나 학자들을 공격했으며 일체 독립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위협하고 탄압했고, 화교학자들을 인질로 잡고 파렴치한 외교수단으로 삼았다.
뤄간은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을 잡기 위해 처음부터 기공(氣功)이나 신앙과 같은 정치 및 세속분쟁과 무관한 영역들을 눈여겨 보아왔다. 일찍이 중국대륙에서 5백만 명의 수련생이 있었던 '천창 인체과학'의 창시인인 천창은 장쑤성(江蘇省) 쑤저우시(蘇州市) 인민검찰원에서 '군중을 선동하여 사회질서를 교란'하고 '탈세'를 했다는 등의 체목으로 체포되었다. 이와 비슷한 종류의 악운은 다른 십여 종의 규모가 큰 기공에도 가해졌다.
그리하여 일반 백성들로 하여금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려는 자유마저 박탈하였다. 동시에 천 명이 넘는 기독교신자들과 천주교 성당이 파괴되었으며, 종교인사들이 체포되어 혹형과 고문을 당하거나 판결 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것은 파룬궁에 대한 박해였다. 비록 당시 국무원은 기공에 대해 '3不'정책을 취하고 있었지만 뤄간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대량의 특무(特務)들을 기공단체에 파견한 후 각지에서 정보를 날조하여 각종 사건을 일으켰다. 그는 한편으로는 '미신' 등의 모자를 씌워 선전하고 자신의 동서인 허쭤슈를 시켜 '사이비과학'을 비평한다는 문장을 쓰게 하여 파룬궁을 모함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공 중앙에 거짓 정보를 흘리고 과장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거짓 뉴스를 날조하여, 파룬궁 탄압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자본으로 삼았다. 1994년 4월 뤄간은 또 그 친척인 허쭤슈를 이용하여 톈진에서 파룬궁 사건을 도발시키고, 톈진 공안에 평화적으로 청원하는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공격을 가하게 하여 사건을 확대시켰다. 이리하여 막후에서 중국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소위 4.25 중난하이 사건을 연출하였다.
장쩌민이 파룬궁 탄압을 시작한 이후 뤄간은 나치의 게슈타포나 마피아 식 비밀조직인 610 사무실의 두목이 되어 장쩌민의 충실한 공격수 노릇을 했다. 뤄간은 도처에서 활동하며 전국 각지의 정법계통이나, 노교소에 가서 머물거나 현장지도를 하고, 각급 정부를 협박하여 '명예를 더럽히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하라'는 장쩌민이 지시한 파룬궁 탄압을 위한 비밀 명령을 시행하며, 무소불위의 악랄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였다.
그가 랴오닝에 머물던 기간에는, 랴오닝 마싼자(馬三家) 노교소에서 18명의 파룬궁 여자 수련생들을 발가벗겨 범죄자 남자 감옥에 집어넣는, 세계를 경악케하는 참극을 일으켰다. 후베이(湖北)에서는 공안이 파룬궁 수련생 왕화쥔(王華君)을 때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상황에서 진(鎭) 정부 문 앞에 끌어내 산채로 불에 태워죽이고는 주위 사람들에게 '분신자살'을 했다고 거짓선전을 했다.
장쑤성(江蘇省)에서는 파룬궁 수련생 장정강(張正剛)을 심하게 구타한 후, 수술을 하던 도중 심장발작으로 혼수상태에 빠지자, 그를 강제로 화장해버린 경우도 있다. 쯔보(淄博) 공안은 파룬궁 수련생 쑤강(蘇剛)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집어넣고 매일 대량의 신경파괴 약물을 주사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랴오닝에서는 가오룽룽(高蓉蓉)이 악경들의 6~7시간에 걸친 안면 전기충격 고문으로 엄중한 손상을 입었다가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으나, 결국 뤄간의 지시 하에 그녀는 다시 체포되어 병원에서 박해로 사망하였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적어도 2970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박해로 사망했으나 이것은 아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뤄간은 또 2001년 소위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조작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으며, 심지어 그중 한 명을 때려죽이기까지 했다. 당시 장쩌민이 파룬궁 탄압을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뤄간은 고집스럽게 장쩌민의 파룬궁 탄압을 추종하였고, 그 공로로 결국 중공 권력의 핵심인 정치국 중앙상무위원으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써도 하늘을 당할 수는 없다. 파룬궁은 6년 간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고, 파룬궁 박해의 진상은 날로 퍼져나가 '분신자살사건'이 조작된 거짓임은 이미 만천하에 폭로되었다. 홍색테러를 일삼고 무고한 백성들을 잔혹하게 박해한 뤄간이 인민들의 심판을 받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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