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같은 무녕왕릉 발굴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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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녕왕릉.. 현재 발견된 백제의 유일한 왕릉으로 알려진 송산리의 고분..
하지만, 이것이 진짜 무녕왕릉입니까? 우선 맞다고 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말하실 것입니다.고분안에서 무녕왕릉임을 증명하는 지석이 발견되었고, 그 위치가 백제의 영역이고등등..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우선 그 발굴보고라는 것을 살펴봅시다.
" 처음에 송산리에서 어떤 왕릉을 발견하고 들어가보니, 열고 들어가는 순간 찬란한 빛이 비춰서 눈이 부셨다. 왕릉내부에 있던 금은보화가 한꺼번에 빛을 발하더니 이내 곧 그 빛이 없어지고 말았다. 발굴하는 순간까지도 벽에 있던 등불이 켜져 있었다. 내부에는 어떤 동자가 있다가 나와서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동자도 곧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무슨 무협지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것이 무녕왕릉 발굴당시의 기록입니다. 무녕왕릉이라고 하는 곳에는 몇가지 금은붙이가 나왔는데, 하나같이 빛이 바래어 있습니다. 물론, 오래되어도 그 가치가 그대로 있어 보석으로서의 가치가 있는데,세월이 오래되어 그럴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봉분을 열자마자 그대로 있던 것이 누렇게 변했다는 것은 화학의 기본을 무시한 것입니다. 물론, 고대 백제 사람들이 화학을 아주 잘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금(金)이 가치 있는 이유는 불변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래되면 아무래도 광택이 없어지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산소와 접하자마자 바로 변했다면 글세.. 저도 화학계통을 공부했지만, 이것이 현대인의 기록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더군단, 벽에 등불이 수 백년동안 켜져 있었다고 한 것은 무슨 소리며, 그 자리는 천연가스가 나오는 곳도 아닌데, 어디서 그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보관되어 있었는지, 또, 왠 동자가 나타나서 돌아다니다가 말을 했다는 것은 우습기까지 합니다.(중국영화 진용인가를 보는 것 같습니다.) 물론, 발굴당시 너무 감격하고 흥분해서 그러한 기록을 남겼을 수도 있습니다만, 올바른 자세는 아닙니다. 이것은 이곳을 신비롭게 만드려는 애처로운 노력같아 보입니다.
무녕왕릉에서 발견되었다는 지석을 보면 참 간단해서 좋습니다. 사마왕과 왕비가 죽어 장사지내다..지신에게 땅을 돈주고 샀다.. 이것이 끝입니다. 사마는 무녕왕릉이 이름이었으니, 이것을 가지고 이곳은 무녕왕릉이 됩니다. 그동안 신라의 서울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주의 왕릉과 통구의 고구려 왕릉은 있어도 구색을 맞출 백제 왕릉이 나타나 얼른 이곳은 백제 무녕왕릉이 되었느지 모릅니다. 마치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역사스페셜을 보니 백제의 의자왕의 아들은 당나라로 잡혀가서 죽었는데, 그 지석에는 그의 생전부터 죽을 때의 까지의 행적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그 당시의 양식이기도 합니다만, 무녕왕릉의 지석은 완전히 이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왕이 죽으면 주위에 배총을 만드는 것이 전통적인 관례였습니다. 즉, 왕릉주위에 그 생전의 정승, 장군, 공주, 왕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도 딱 2개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세월의 흐름속에서 없어질 수도 있지만, 심지어 조작되었다는 느낌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신라의 왕릉은 경주에 마치 공동묘지처럼 있다고 합니다만, 그 옆나라인 백제는 주위에 왕릉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백제의 유물하나 제대로 없는 무녕왕릉. 누렇게 조잡한 금붙이 몇 개와 돌맹이에 새긴 초라한 글자 몇 개가 대륙의 여러 왕조를 위협하고 지배한 백제의 왕릉의 모습인가요..아니면, 그 누구의 작품인가요.
또한 무녕왕릉은 단 3시간의 발굴로 모든 발굴을 마무리한 졸속발굴이라고 합니다. 단 3시간만에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든 진실을 알아 버린 것입니다. 어떤 왕릉 발굴이 단 3시간만에 이루워집니까? 한낱 유물을 조사하여도 그런 시간에 불가능한 것인데, 수백년만에 발견한 왕릉을 단 3시간만에 모든 것을 알아 버리다니.. 아마 발굴하기전에 이미 그곳이 무녕왕릉이었다는 것을 알아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남조의 영향을 받은 것... 과연 그들은 정말로 무녕왕릉을 발견한 것인가요? 아니면 무녕왕릉이라고 믿어주기를 바라는 어떤 자들의 작품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그 사람들이 발견한 것인지 아니면 만든 것인지...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1-05 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