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주인
동이족의 배 선박(船舶)
고대 동아시아의 배는 바닥모양과 추진체에 따라 크게 선(船)과 박(舶)으로 나눈다.
"船"은 바닥이 평평하고 배 옆의 도(櫂)를 저어 전진하는 카누와 같은 형태로 강과 운하를 항해할 수 있는데, "舶"은 흰 돛을 달아 바람을 이용하고 배 꼬리에 노(櫓)를 달아 전진하며 바닥이 뾰족해 파도를 해치고 대양을 항해할 수 있는 배로 중국인들은 이것을 '이(夷)의 배'라고 불렀다. 이 두가지 배를 총칭하여 "선박"이라고 불렀다.
A.D. 1세기부터 A.D. 15세기까지 무려 1,500년간 아시아의 동쪽 바다를 백제(유민)들은 이런 배를 타고 지배했고, 그들이 남긴 흔적은 지도에서 보듯이 동 아시아 곳곳에 남아있다. 이들은 명나라를 건국한 태조 주원장이 이전 왕조들과 달리 자신들을 명나라 지배 안에 강제 편입하려 하자, 목숨을 걸고 300년간 싸우다가, 대부분 고려, 일본, 필리핀, 대만, 인도차이나 반도 등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화교"로 알고 있는 이들이 사실은 중국인(화산족)이 아니라, 바로 명나라의 "海禁政策"에 대항하여 싸우다 피신해간 사람들이고 이들은 대부분 백제유민들의 후손이었다.
주산군도의 백제인
이들은 양자강 하구 항주만 입구에 있는 "주산군도"라는 섬을 중심으로 동 아시아의 바다를 지배했고, 그 문화는 멀리 사라센까지 전파되었다. 9세기에 사라센 여행가인 "이븐 후르다드베"와 "마우스디"는 이 땅을 일러
"이 나라는 "Syla(신라)"라는 나라로 금이 많고 경관이 아름답고
땅이 기름져 모든 것이 충족된 아름다운 나라"
라고 묘사했고, 10세기에 "알 이드리시"와 14세기에 "앗 다마시키"라는 사라센인은
"신라는 6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며, 그 곳 주민들은 개의 사슬이나 원숭이 목걸이도 모두 금으로 만들었다"라는 기록을 남겨, 이들이 말한 신라가 통일신라가 아니라 주산군도의 백제유민들이 세운 해상왕국임을 나타내고 있다.
나침반을 발명한 백제인
최근에 사라센에 나침반을 전한 것은 중국인이 아니라 바로 이들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유인즉, 사라센어(아랍어)로 나침반은 "Khann"이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어로 나침반을 뜻하는 침(針)과는 관계가 없고, 우리말 '가늘다'의 어근인 "가는(細)" 이란 말과 발음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또, 명태조가 주산군도의 주민들로부터 빼앗은 항해관련 서적들을 정리하면서 "항해 관련 서적들이 모두 오랑캐 말로 되어 있어 본토인들이 뜻을 알 수 없으므로 이를 모두 새로 번역하였다."는 명사(明史)의 기록은 바다의 주인이 중국인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신라방에 신라인들이 산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신라방 사람들이 "한가위"가 무엇을 하는 날인지 몰랐다는 唐書의 기록은, 그들이 바로 백제가 망하기 전부터 동아시아 바다를 지배하던 백제의 유민들이었기에 신라인으로 불리면서도 신라인의 최대명절인 "한가위"를 몰랐던 것이라고 한다.
등소평의 해외 화교자본 유치정책이 실시된 후, 화교들이 중국 땅에 들어와 최초로 한 일은 주산군도에 있던 백제인들의 절을 복원하고 여기서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은 화교의 정체가 무엇인지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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