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학 1학년 때 역사답사(난 사학과 출신. 지금은 졸업)를 하러 5박 6일의 코스로 북경과 만리장성을 둘러보았습니다. 말이 답사(둘러보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지 사실은 놀러 간거죠^^.
특이한 것은 지금과 달리 중국인들은 착하고 순박했으며 한국인이라고 밝히면 잘 대해줬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광화문 거리에 해당하는 천안문 광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천안문광장하면 1989년 천안문사태가 떠오르죠? 좀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곳곳에 경비경찰이 있었고 쌍십절(신해혁명 때) 때라 꽃으로 만든 화환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녹색제복의 경찰 제복이 조금 멋져 보여서 여학생 몇명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경찰은 웃으면서 같이 포즈를 취해줬습니다. (대자보의 금보라 기자가 중국 경찰은 1980년대에 파란색으로 바뀌었다고 했는데 분명히 이때의 경찰 복장은 녹색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투숙하는 호텔(연경호텔)에 경비를 서는 경찰도 있었는데 그 경찰의 복장도 녹색이었습니다.)
천안문 광장에 특이한 것은 화장실이 하나 있는데 유료라는 점이죠.(돈은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50원으로 싼 편에 속했지만...) 사람들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장면이 독특해서 사진기를 들이댔더니 중국어로 무슨 욕같은게 나오면서...ㅡ.,ㅡ 저는 자리를 떴습니다.
천안문에 걸려 있는 모택동..... 그 건너편에 있는 신해혁명의 주역인 손문의 동상...
조선족 가이드의 말로는 '모 주석이 손문을 존경하기 때문에 세운 것' 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모택동이 손문보다 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세운 것 같았습니다. 하기야...신해역명은 원세개의 배신으로 이루어진거니 손문은 신해혁명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죠. 모택동은 당시 병사로서 참여했다고 하지만,... 원세개에게 중화민국 총통직을 줄테니 배신하라고 압력을 넣을 것 밖에는...
천안문의 뒤에는 명, 청황제가 살던 자금성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경복궁과는 달리 안에 쓰던 가구들이 잘 진열되어 있던 것을 보고는 놀랐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같은 건물이 자꾸 나와 짜증이 났습니다. 우리는 후문을 통해 명나라 숭정제(아주 재수없는 황제, 우리나라 고려의 공양왕, 대한제국의 고종, 순종과 같이 잘해보려고 했지만 이리 국운이 기울어 나라를 멸명당한 군주)가 자살했다는 만세산의 누각을 보고 버스로 왔습니다.
길거리를 버스로 둘러보니(버스에는 2002 일본 월드컵 홍보 스티커가 붙여 있었습니다), 로터리가 하나 있고 그것에 이자성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조선족 가이드(이 양반은 흑룡강성 출신으로 중화민족대학 학생임) 말을 들은 즉, 명나라 말기에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만주족인 청나라의 지배를 받는 계기를 만든 농민반란군 이자성을 모택동이 같은 농민 출신이라 존경한다고 동상을 세운 것이죠.
저는 그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만약 모택동이 소금장수 출신이면 '황소(당나라 말기의 농민 반란군 장수)' 동상을 세울건가?
다음날 우리는 만리장성으로 갔습니다. 만리장성은 길었지만 곳곳에 도로를 만들면서 버려진 성루, 성벽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는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려고 불도저로 공사를 하는 장면도 눈에 띄었습니다.
만리장성의 입구에도 역시 화장실은 유료였습니다(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800원). 화장실에서 일 좀 보고 올라갔는데 이건 마치 등산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만리장성의 성벽길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먼저 평길, 계단길, 비탈길. 비탈길은가파르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조선족 가이드는 30분의 시간을 줄테니 구경하고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일단 개발된 만리장성의 맨 끝에는 철판으로 성의없이 만든 무슨 비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모택동의 글씨라고 하던데....뭐랬더라.... (기억이 안남)
만리장성을 구경 다하고 내려오면서 밑에서 난간을 잡고 올라오던 어느 중국 여성(조금 통통한 체격)과 부딪힐뻔해서 앞으로 손을 내밀었는데 그것이 그 중국 여성의 가슴을 만진 것이었습니다. 순간 내 뺨은 그 여자의 손을 맞아 얼얼했고, 중국어로 무슨 욕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한국어로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난 중국어 못함). 그러자 그 여자는 영어로 내 국적이 어디냐고 물었고, 나는 수첩을 찢어 한문으로 朝鮮 民主主義 人民共和國이라고 적어 그 여자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욕을 여러번 하더니 가 버렸습니다.(욕 중의 하나는 '꺼우리 펑즈'였던가 그랬는데 기억이 잘 안남. 무슨 말인지?) 그 때의 여자분 이 글을 빌어 용서를 빕니다. ㅠ.ㅠ 저는 사실 북한인이 아닌 한국인입니다.
하여튼 만리장성 구경을 다 하고 어느 장소로 왔습니다.
즉,..... 쉽게 말해 약파는 곳인데 중국에는 발모제가 조금 유명하죠.
서커스 공연하는 곳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화상약을 광고하면서 불에 달군 쇠고챙이에 자기 손을 데어 화상을 입은 후, 약을 바르면 낫는다는 것을 광고하는 행위를 했습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어느 남자였는데, 저는 그 남자를 보고 속으로 한마디했습니다.(쯧쯧, 젊은 나이에...안됐군. 약파는게 그리 좋다고는 해도....) 그러나 광고 효과는 백발백중이어서 저 이외에는 다들 약을 사갔습니다. 저는 그 남자의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보관중입니다.
다음날,.....
우리는 서태후의 별장이라는 이화원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정말 화려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았습니다. 옆에는 중국 여자해군이라는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이드들이 접선을 잘해 저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내 실수로 카메라의 필름 두껑을 열어 필름이 못 쓰게 되어 저는 같이 간 사람들에게 인민재판(?)을 당했습니다.
다은은 북양공원, 천단공원.........
그 다음 북경대학(우리나라의 서울대학교 정도)........
가이드의 말을 듣자니 중국은 외국인이 대학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네요. 천안문 사태 때문이던가... 그래서 정문 앞에서 사진만 찍고 끝냈습니다. 그런데 정문(전통 한옥 형식으로 된 문) 앞에 웬 푸세식 화장실이...ㅠ.ㅠ
다음날.......우리는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우리끼리 놀이공원에도 갔고 동물원에도 갔고(판다곰은 우리 동아리 회원들에게 인기였습니다. 사진을 팔아 2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죠. ^^V), 시장통에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동물원에서 조선족이라고 밝힌 어느 남자 한명이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현대전자에서 만든 카메라의 작동법을 물어보며 접근했습니다. 우리는 이 남자에게 의심이 가지 않아서 접근을 허락했고 사용법을 가르켜 주었습니다. 그런데...일행중 어린 여자 한명이 지갑을 분실했다고 울었습니다. 다행이 여권은 가이드가 모아서 가지고 있더군요.
우리는 그 동물원에 진입하려 했지만, 표를 사라면서 입장이 불허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가지고 간 중국어 안내책자를 보여주며 '지갑이 분실되었습니다.' 라는 문구를 찾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그 직원은 잃어버렸다는 여학생 한명에게만 통과를 허용했고(우리는 그 직원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햇습니다.
우리는 그 조선족 청년을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했고 욕을 엄청 많이 했습니다.
"정말 우리 동포 맞아?"
"XXX들!"
결국 그녀의 위로겸 마지막 밤을 술로서 보냈습니다.
술파는 아줌마랑, 꼬치구이를 파는 아저씨 등은 다 좋은 사람들이더군요.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밝히자 좀 더 주는 화끈함도 보였습니다.
지금 일련의 사태(파룬궁 사태나 공개처형 장면에 중국인들이 발끈을 하고 부정해도 저는 그들이 미워지지 않습니다.
그들도 자신의 국가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게 싫었을 뿐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되어 보면 절실히 느낄테니까.........
다음날 우리는 북경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갔습니다.
다음에는 연길로 가고 싶네요. 단 주머니 보안은 튼튼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