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國府)라고도 한다. 중국국민당 제1기 전국대표대회 결의에 따라 1925년7월1일 광동[廣東]에서 조직되었다. 손문[孫文]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건국이념으로 삼고 국민혁명을 군정(軍政) ·훈정(訓政) ·헌정(憲政)이라는 3단계 시기를 거쳐서 성숙시키려는 방침과 함께 연소연공정책(聯蘇聯共政策)을 취하여 중국공산당과의 합작을 실현하였다.
이와 같은 국공합작 아래에서 국민혁명군을 조직하여 1926년 7월 북벌전쟁을 개시하였다. 1927년 2월 정부를 무한으로 옮겼는데, 국민당 내의 좌우 양파가 항쟁함으로써 정부는 무한[武漢] ·남경[南京]의 2개 정부로 분열되었다. 1927년 4월 국민혁명군 총사령관 장개석[蔣介石]에 의한 상해[上海]쿠데타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계기로 국공합작은 와해되었다. 이 사건 후 정부는 국민당 일당독재 아래 장개석이 정치 ·군사상의 독재자가 되었고 무한 ·남경 정부도 남경으로 합체되었다. 1937년 7월 발발한 중 ·일전쟁 중에는 국민정부를 중경[重慶]으로 옮겼고 전쟁 중에 제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졌다. 일본이 항복한 후 국민정부는 다시 남경으로 돌아왔으나 국공관계는 다시 결렬되어 중국 전토는 내전상태로 들어갔다. 4년간의 내전을 통하여 국민정부군은 괴멸상태에 빠졌고 결국 공산당에게 국토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으며 대만으로 나라를 옮겨 중국 국민정부를 재조직하여 중국 본토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였다. 한편, 대륙 본토에서는 1949년 10월 1일 중공이 성립하여 북경[北京]을 근거지로 정하였다. 북경의 중공 당국은 대만의 중국 정부를 인정하는 국가와는 일체의 외교관계를 체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1950년 이후 국제연합 총회 및 국제조직 ·기관들은 대만의 중국 정부와 북경의 중공 당국 중에서 어느 쪽을 중국의 합법적 정권으로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로 논란이 거듭되었는데 1971년 국제연합 총회에서 중공이 승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