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지킴이’ 서길수교수는 “내년 1월 동북공정의 일정이 끝난다 하더라도 중국의 역사침략은 계속된다”이라며 학계와 정부는 대책 마련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문석기자>
대학에서 경제사를 가르치는 서경대 서길수 교수(62)는 대학 밖에서는 고구려 전문가로 통한다. 1990년 중국 지안의 광개토왕릉과 환도산성을 답사한 뒤 그는 “우리 민족의 사대주의, 열등의식을 극복할 길은 고구려 역사 연구에 있다”고 확신하고 고구려사를 제2의 전공으로 택했다.
전문가 학술모임 ‘고구려연구회’를 주도하고, 만주의 고구려 산성을 답사한 지 십수년째. 그는 이제 고구려성(城)에 관한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권위자이다.
2003년 이후 벌어진 ‘한·중 역사전쟁’의 와중에서 서교수는 ‘고구려 역사 지킴이’로 변신했다. 기고, 강연, 학술대회 등을 통해 ‘동북공정’의 실체를 알렸고, 대책을 촉구했다. 이듬해 고구려연구재단이 출범하고 한·중간의 외교적 합의를 통해 전쟁이 잠잠해질
무렵, 그는 고구려연구회장직을 넘겨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고구려’를 떠나 있질 않았다. 2년 만에 만난 그의
손에는 ‘동북공정 고구려사’(마다정 외 지음·사계절)라는 두툼한 번역서가 들려 있었다.
“2년전 고구려연구회장을 그만두면서 ‘동북공정’에서 손을 떼려고 했지요. 그러나 어디에서도 ‘공정’의 문제를 파헤친 반론이 나오질 않은 것을 보고 다시 나섰습니다. 그 즈음 중국사회과학출판사에서 나온 ‘고대 중국 고구려역사 속론’(이하 ‘속론’)을 접했는데, 중국의 동북공정의 이론과 연구성과가 상세히 나와있어 바로 번역에 들어갔지요.”
‘동북공정 고구려사’는 ‘속론’을 우리말로 옮긴 것. 중국 사회과학원이 펴낸 ‘동북공정 종합보고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에는 동북공정의 이론적 배경, 중국인의 고구려사침탈, 한국·북한·중국학자들의 고구려사 연구현황이 상세히 수록돼 있다. 모두 820쪽으로, 마다정을 비롯한 4명의 필자는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의 핵심멤버다.
“흔히 중국의 고구려사왜곡이라고 하는데, 동북공정은 역사왜곡이 아니라 침탈입니다. 왜곡은 해석을 달리할 때 붙이는 말인데, 동북공정에는 역사를 빼앗으려는 침탈의 의도가 뚜렷하게 드러나있지 않습니까.”
서교수는 원저에 ‘중국 고구려사…’라는 매우 이례적인 이름을 붙인데에서도 침탈의 의도가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역사책의 이름에 중국 당사, 중국 송사, 중국 남북조사와 같은 이름이 들어가있는 것을 보았느냐”며 “‘중국 고구려사’라는 말에 이미 고구려사가 침탈돼 있다”고 밝혔다.
서교수는 현재 중국의 고구려사 침탈은 ‘서울만 빼고 전국이 다 먹힌 형국’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한·중 외교부간의 합의’만 믿고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결과 중국의 서적·박물관 등 어디에서도 역사침탈을 시정되지 않고 있다고 것. 그는 “고구려사 침탈을 항의받자 중국 정부는 세계사 교과서에서 한국사를 통째로 빼버렸다”면서 “우리가 최후의 보루로 여기는 교과서에서도 침탈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 1월이면 동북공정이 마무리된다. 그러나 서교수는 “연구프로젝트로서의 동북공정은 끝날 지 모르지만 중국의 역사침략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 것을 주문했다. 서교수가 강조한 것은 중국의 역사침탈에 대한 학술적 반박 논리를 개발하는 일. 그는 한 실례로 ‘일사양용’(一史兩用)을 들었다. 우리는 ‘한 역사를 두 나라가 공유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정작 중국은 ‘한국의 고구려사 논의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교수는 지금부터라도 중국 및 동북아와 고대사를 포괄하는 전문 연구기관 설립하고 중국을 평화국가로 이끌기 위해 중국 인접국가들과 함께 상호존중하는 역사관을 창조하는 ‘아시아 프로젝트’가 준비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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