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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그 소중한 이름(2)
이름 : 싱윈
2005-10-14
가족…그 소중한 이름(2)

결혼식 올리다.

 

 

 

눈물의 이별을 한 후 남자는 싱윈에게 계속 연락을 하며 하루라도 빨리 중국으로 나올수 있도록
해달라며 애원 반 공갈반식으로 독촉을 한다.
2003년 말 싱윈은 싱윈나름대로 참 어려운 시기였다.가족과 떨어진 시간도 길었으며
계속 이대로 가족과 헤어져 있다가는 큰일이 날 것같은 두려움에 하루하루가 살얼음 걷는
심정의 나날이었었다.특히 커가는 아이들 교육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설상가상으로 변종 한국인에게 어처구니 없는 사기를 당하고 상해를 뜰 수도 북경으로
옮김도 어려운 사정이었다.(이 사기사건은 가족 연재후 올릴예정임)
궁하면 통한다고…남자에게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왔다.싱윈의 일을 기다리다 지친 남자에게
엘쥐가 남경에 대단위의 단지를 건설하면서 많은 한국인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정보가
나오고 그 몇날이 지나지않아 엘쥐의 협력업체의 일원으로 남자는 다시 중국에 나올수있었다.
(남자의 직업은 CAD,공무 및 관리업무…싱윈이 점수주면 A..삼송에서 몇번이나 군침흘릴정도)
엘쥐가 남경에 투자한 액수는 천문학적이며 그 규모가 너무커서 싱윈이 보았을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엄청난 투자에 기분 좋아진 남경시에서는 이곳 진입도로 이름을 엘쥐로 라고
불렀다.이곳에 입주한 엘쥐화학,엘쥐필립스,엘쥐LCD등은 지역사회에 많은 영향을 줄것이다.
지역경제 발전 및 고용증대등..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생산되는 것들이 부메랑효과로 한국제품에 누를 끼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남자가 중국에 나온 때가 2004년 2월이었으니 그들의 헤어짐이 있고난 후 약4개월이 지난 시기였다.
그동안 그들이 통화한 내용의 명세표를 빼보면 그 길이가 지구에서 달나라 갈 정도였다고
뻥들을 친다.닭살 스럽다.ㅡ.ㅡ;
그렇지만 만남의 기쁨을 나누기엔 서로의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여자는 중국으로 오는즉시 북경에
자리잡은 한국 모벨트회사에 취직을 한 것이다.여자는 북경에 있고 남자는 남경에 있는 꼴이다.
여자의 유창한 한국말 구사와 세무관련 전문업무는 모벨트회사 법인장을 홀딱 반하게 하였다.
적지않은 급여에 주5일근무등 좋은조건으로 취직을 한 것을 보니 똑똑하긴 똑똑했던 모양이다.
하루 빨리 같이 있고 싶기만 한 이들이지만 남자의 사정상 한달에 한번 만나는 것도 감지덕지하며
감사했던 시간들이었다.
이때 싱윈도 북경 모지역에 2008년까지 근무하게 될 자리를 잡았다.2004년 5월 싱윈은 
북경에 부임하자마자 남자를 싱윈의 테두리로 불렀다.그렇게 다시 예전의 팀들을 만들고 나니
이제 남은것은 그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일 뿐이었다.
(싱윈도 이때 전가족을 북경의 왕징으로 불러 들였다.)
여자의 아버지는 노발대발 반대가 극심했다.금지옥엽으로 키운 단 하나뿐이 딸이 한국에 유학
간다고 해서 불안해도 보내주었더니만…공부는 않고 왠 한국남자에게 빠져 결혼하겠다고 하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하늘이 노래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후에 말했다.
개방이 되고 상호 왕래가 많다고 해도 자신은 아직도 엄연한 공산당원이고 나라와 이념이 틀린
한국의 한 사내에게 딸을 빼앗겼다가 내일이라도 당장 한국과 관계가 멀어지면 어찌될지
안봐도 뻔한 사태가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수 밖에 없었다고한다.
하지만 어느 어머니라서 딸에게 이기려고 하겠는가? 어머니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딸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만 바라며 아버지를 설득했다고 한다.
반대로 남자의 집에서는 약간의 근심은 있었지만 반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고 한다.
1남2녀중 막내이며 독자인 아들이 외국인과 결혼한다는 것에 실감이 나지 않았을 뿐이였다고했다.
남자의 매형(큰누나의 남편)은 쓸데없이 중국을 다니며 사업한다고 집안 거들내고 바람피다
걸려서 이혼당한 중국에 관련된 아픈 사연이 있는 집안이었지만 그래도 아들결혼은 대견하기만
하고 다큰 아들이 고맙게 생각될뿐이었다고했다.
남자가  여자의 집을 찾았을때 남자앞에는 수많은 그녀의 친척들이 그를 보려고 전날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고한다.반대를 한다해도 집안에 손님이 찾으면 성심성의 대접을 하는것이
이들에게는 최고의 덕목이였다.(이 부분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별 차이가 없다.)
이러한 여러 문제등 우여곡절끝에 남자와 여자는 2004년 4월 혼인신고를 하게된다.
중국에서의 혼인신고를 마친후 2004년 5월 한국에서의 혼인신고마저 끝내고 결혼식날짜를
2004년 9월로 잡고 한국의 한 예식장에 예약을 하였다.
심양의 영사관에 여자와 여자 부모의 초청비자를 신청하였는데…이곳 심양영사관은 참으로
말썽이 많은 곳이다.비자남발 및 비리로 인해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을 지경인 이곳에 
비자신청을 하고나니 11월 인터뷰 예정이 된다.(하도 말이많아 인터넷으로 접수를 한다.)
결혼식은 9월인데 비자인터뷰가 11월이라니…문제가 심각했다.이미 예식장과 친지들에게
청첩장을 다 돌린상태인데 신랑신부없는 결혼식을 하게 생긴것이다.
어쩔수없이 싱윈의 모든 채널을 동원하여 외교부쪽 연줄이 있는 분께 연락을 드렸다.
이분은 싱윈과 호형호제 하는 사이라 민감한 청탁 문제임에도 노력을 해 보겠노라고 하였다.
(이부분은 지금도 싱윈은 감사를 드린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후 비자업무는 대사도 손될수없는 문제이니 누구도 청탁이 불가능하다란
허탈한 답변의 메일이 도착하였다.그래도 고마워서 의력신 두박스 보내드렸다 ㅡ.ㅡ;
중국엔 상부에 상책이 있으면 하부엔 대책이 있다한다.한국인이라고 못할소냐 하고
편법을 썼다.남자는 여자가 다니는 직장에 가서 사정얘기를 하고 결국 여자의 초청장을 발급
받았다.부모는 관광비자로 가게 되었는데 일인당 공탁금이 10만 위안이었다.엄청난 공탁금을
걸어야 관광을 갈수있다니…아직 중국은 중국인 모양이다.
이러한 여러 고난 끝에 2005년 9월 그들은 그렇게도 원하는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북경 왕징근처 태양궁공원앞 새로지은 자그만 아파트에 새보금자리를 꾸민다.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문제도 모르는체…
-계속-
[재미없지요^^ 실화는 원래 재미없어요.다음편이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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