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2.이브의 사과)
사무실을 임대하지 못하고 거주하는 아파트 거실을 임시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을 때였다.
무려 40도에 육박하는 상하이의 습한 더위는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효과가 없다.
최소한의 의복만 걸친채 업무를 보고있을때 구성원중 마지막 행정보조요원으로 연변에서 온
18살의 조그만 아가씨가 도착하였다.
그 아가씨를 소개한 시행사측의 통역과 그녀의 어머니가 함께 아파트에 도착한 것이다.
부랴부랴 의복을 갖추고 서로의 인사를 나누고 난후 그녀의 어머니는 다시 3박4일의 여정으로
고향을 향해 돌아갔다.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딸을 연고도 없는 머나먼 곳에 남겨 놓고 가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할까? 가족을 두고 이역만리로 떠나온 싱윈과 그 아픔에 차이가 없을것이다.
하얀 투피스를 입은 작은 아가씨의 드러난 치마밑 두다리에는 수많은 모기물림 자욱이 있었다.
괜시리 안스러워 짐은 또 무엇인가?
하루이틀이 지나면서 서서히 이곳은 외국이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가장 애를 먹는것이 돈의 단위였다.물건을 사고 얼마냐고 물으면 10위안(콰이)한다.어이쿠 뭐가
이라싸냐 하고 계산하다보면 아차 곱하기 100원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 퍼득 든다.
천단위와 만단위로만 생활하다가 갑자기 50전 1원하는 단위로 내려가니 적응이 빨리 되질 않는다.
상하이의 물가라는 것이 참 이상스럽다.왠만한 식당의 음식값은 한국의 그것과 다름이 없는것에 놀랐고
쌀이라든가 과일값은 터무니없이 싸기때문이다.그리고 생경스러운 것은 과일을 잘라 판다는 것이다.
한국적 상식으론 멀쩡한 수박을 잘라 저울에 달아 판다는것이 저이 괴상스럽기까지했다.
하지만 모든 과일을 저울에 달아 파는 미터법을 보니 합리적이란 생각도 들긴 했지만 위생상태를
생각하면 잘라놓은 과일들을 사먹고 싶은 생각은 별로없었다.
하루는 관리과장이 밤늦게 싱윈을 찾아왔다.전문가로 채용된 싱윈은 일 외적인 대화는 업무시간에
거의 하지않는 타입이다 보니 관리과장과는 전혀 대화가 없었는데,왠일로 친히 찾아와 맥주한잔
하자는 것이다.관리과장은 기획조정실에서 판견된 전도가 양양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재택근무란 것이 여유있게 하는 사람들에겐 더 없이 좋은 환경일지 몰라도 시간에 촉박해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에겐 창살없는 감옥과도 같은 생활이다.하루하루 스트레스가 쌓여갈 무렵에
관리과장이 한잔하자는 말은 이유를 따져보기전에 고맙게 생각되었다.
생각없이 따라간 그곳은 맥주집이 아니고 일본인이 경영한다는 싸우나 였다.
아주 구석구석 까지 밀어주는 때를 벗기고 휴게실로 돌아오니 맥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둘이서 그 맥주를 마시고 나니 관리과장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우며 복무원(직원)을 따라가라 한다.
알고 보니 거미줄처럼 깔려있는 작은 미로를 지난곳에 자리한 밀실에서 변태영업을 하는 곳이었다.
당시의 상하이는 매매춘에 대해서 강력한 단속을 하는 중이었다.호텔로비마다 공안이 지켜서서
외국인 투숙자가 술집 여자나 홍등가의 여자를 대동하고 입실하면 바로 단속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싱윈이 도착한 일주일도 되질 않아 세명의 한국인이 이런 것을 모르고 매춘을 시도하다가
벌금을 맞고 추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서도 밀실영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체험하다보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직접 성행위를 하는 곳이 아니고 그저 남자의 배설만 도와주는 곳이었다.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성욕이 없다면 죽은목숨과 다름없을것,에라 모르겠다하고 하는대로 내 맡게 두었다.
얼마후 다시 돌아온 휴게실엔 관리과장이 기다리고 있었으며,재미좋았지 하는 눈빛으로 싱윈을 바라본다.
그날 이후로 관리과장의 호의는 날이 갈수록 깊어져만 가는데 그 호의가 늘어나는 만큼 선배의 히스테리가
같이 늘어난다.참으로 난감한 자리 중간에 싱윈이 앉아있는 꼴이 되었다.
체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을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니 약간씩 시간이 남기시작하였다.
그러다 보니 외출의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는데 유독 싱윈이 외출 할때마다 꼬마아가씨가 따라다니는 것이다.
싱윈외에 선배나 관리과장,자재차장이 외출한다고 하면 따라가기 싫다고 하다가 싱윈만 가면
먼저 쪼르륵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다.직원들이 아버지와 딸같다고 놀림을 주기도 했다.ㅡ.ㅡ;
구성원중 스물한살의 젊은 직원도 있었는데 이친구는 병역특례로 나온것이다.어떻게 보면 상당한
행운아임이 틀림없는 이 직원과 꼬마아가씨가 어울리며 다닐만 한데 그러질 않고 싱윈하고만 다니려
하는지 무감한 싱윈은 그 이유를 전혀 생각해 보질 않았었다.
그저 객지에서 정 붙일 곳없다보니 그러겠거니…했었다.
외출을 하면 주로 동방로(東方路:뚱팡루)에 자리잡은 팔백반이라는 백화점을 구경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대낮은 너무 습하고 더워 밤에 주로 외출을 하는데…이 백화점에 가면 속이 그대로 비치는 잠옷을 입고
활보하는 상하이 여성들을 보게된다.대로에서도 잠옷을 입고 다니고 남자는 웃옷을 벗고 신이 주신
자연의 모습그대로 다닌다.그리고 길가의 잔디밭에 누워 서로를 애무하는 아베크 족 보는 재미에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다니는 것이었다.밤 열두시가 넘으면 그 모습이 절정에 달하는데 수많은
아베크족들이 잔디밭에 피어있는 하얀 꽃들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연출한다.
전직원이 상하이에 도착이후 처음으로 단체관광을 가게 되었다.목적지는 그래도 상하이에서는
가볼만 하다는 포서 동물원이다.라이거(사자와 호랑이의 결과물)가 있다기에 흥미도 있었다.
이곳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중국의 화장실에 접하게 된다.
급히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화장실의 문이 없었고 그 안에서는 길게 홈이 가로로 파인 콘크리트 구조물에
발을 밟고 엉덩이를 까고 일렬로 앉아 일을 보는 사람들을 보게 된것이다.
맨 앞사람의 덩어리가 떨어지는 모습을 바로 뒤에서 보며 일을 보는 사람들…정말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바로 그자리를 피하고 나와 일행에게 이런 이야길 했더니 전부다 우르르 구경간다.조선족 직원들만 빼고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왜 이런 화장실 문화가 생겼을까 의문이 들었다.싱윈의 개인생각으론
이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개방된 화장실이란 것이 일단 안전에 그 목적을 두는것이고
문화혁명시기를 거치면서 밀폐된 화장실에서 자살을 한다거나 피습을 두려워한
나머지 화장실을 개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하지만 보는 이러한 것은 보는이로 하여금 당혹감을
주기엔 충분하였다.
그래도 외국의 동물원을 구경하고,도심속에 있지만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뿜어내는 녹색의 향기들은
갇혀 지내던 싱윈의 가슴속에 청량함과 신선함을 듬뿍 주었다.
돌아온 다음날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싱윈의 옆에는 늘 꼬마아가씨가 바짝 붙어있는 것을 알았다.
싱윈은 사진찍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분위기에 휩싸여 그날은 꽤 많은 사진을 박았는데 한장도
빠짐없이 이 꼬마아가씨는 싱윈의 옆에 있었던 것이었다.그것도 바짝 붙어서…
설마하니 삼십대중반의 가정이 있는 싱윈에게 뭔 감정이 있었겠냐 하고 별 생각없이 사진들을
갈무리하고 다음날 할 일들을 위한 자료를 뒤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