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안 개구리
기본적 인원구성이 끝나고 상하이에서 근로행위를 하기위한 비자(Z비자:거류비자)를 취득하기
위해서 지정병원으로 향했다.신체검사를 받아야했기때문이다.
(주: 住:Zhu 의 병음 앞글자를 따서 Z비자라 한다.)
당시로서는 단항주책(한가지 프로젝트만을 영업허가 해주는 편법)이 있어서 그회사 및
구성원에게 상하이에서 근무할 수있도록 Z비자를 발급해주었다.
기간이 정해진 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현재는 이러한 편법이 없어졌다)
그것은 우리네회사가 외상투자회사의 협력업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후에 알았지만 상하이인들은 타지역민에 대하여 상당히 배타적인 성향이 있었다.
중국인 일지라도 상하이에서 노동행위를 하려면 그들이 제공하는 임시 거류증을 취득해야만 했다.
자전거에 번호표가 있고 신고를 해야 하는일 및 타지역 사람이 상하이에서 거류신고를
하는일등은 처음 중국땅을 밝은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일이었다.
특히 밥하고 빨래를 담당하는 상하이 남자들은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싱윈에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맞은편 아파트 17층에 사는 중년의 남자가 빨래를 널고 방바닥을 청소할 때
큰 대자로 여자는 침대에 누어 책을 보는 모습을 종종본다.창이라도 좀 닫지않고서리…
이런 상하이 남자들을 타지방사람들이 소남인(小男人:샤오난런)이라고 비웃지만 상하이 여성들은
모범장부(模範丈夫:모판장푸)라 하며 귀여워(?)한다.
상하인인들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별로 좋은 것이아니다.상하이인들을 평가함에 있어 첫째가
排外(배외:파이와이):상하이인외는 인정을 하지않는 오만함 이고 둘째가
精明能干(정명능간:징밍능깐):스스로 모든일을 다할수있다는 자가당착주의 그리고 셋째가
小氣(소기:샤오치):째째하고 치사한 본성이라 하니 중국에서는 썩 좋은 평가를 못받는 것 같다.
중국상하이에 와서 처음으로 병원을 가보는 것이다.
병원이라하면 눈부시게 하얀가운을 입은 의사 및 젊은간호사가 있는곳이란 생각만 있던 우리들은
동네이발소에서나 볼수 있을 듯한 때가 절여 색상까지 누런 그런 가운을 입은 의사와 그와 같은
가운을 걸친 나이든 간호사를 보고 할말을 잃고말았다. 피를 뽑는 저 주사기는 일회용인지,아닌지
혹 병이라도 옮지않을까 전전긍긍 불안해하면서도 결국 피를 뽑았다.
다행이 일행 모두가 정상이라는 결과가 며칠후 통보되었다.
그 병원에서 한국의 병원과는 또 다른 한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링겔을 맞는 모습이다.
한국에서는 침대에 누워 맞지만 이곳 상하이 병원에서는 나무의자에 쭉 앉아서 맞는다.
드디어 거류증이 나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본업을 착수할 때가 되었다.
상하이에 발을 디딘지 약 2개월만의 일이다.
모든 영업행위가 그러하듯 프로젝트에 대한 원가를 산정하고 얼마의 O & P(경비 및 이윤)를
확보해야 되는지 그일련의 작업을 진행하는 중에 뜻하지 않은 문제에 봉착했다.
당시의 환율은 1:100(중국인민폐1원:한국원100원)정도 되었는데 원가를 잡은 직원이 중국정액
에 대한 조사가 전혀 없었던것이다.(중국정액이란 것이 탐관오리의 치부수단의 하나다)
출국전,한달에 한국돈20만원만 있으면 살림도 차릴수있다고 농담하던 본부장의 말이 생각났다.
겪어보지않고 뜬구름 잡듯 남이 그러니 그렇겠커니하고 속단하여 철저한 조사가 없었던것이다.
국민소득이 천불도 되질않는 곳의 물가가 비싸면 얼마나 비싸랴 하는 생각이 오류를 일으킨것이다.
건축용 원자재의 가격이 대부분 한국의 물가보다 월등히 비쌌다.
스테인레스종류의 제품은 약 3배정도 더 비싸 엄두도 나질않고 동(銅) 제품또한 한국에 비해
두배가까운 금액에 거래가 되고있었다.
분석해보니 증치세(한국의 부가가치세에 해당) 17%가 포함되어 있었으며,환급을 받는 방법또한
몰라 증치세를 포함한 가격에 자재를 구매해야할 상황이 된것이다.
한마디로 비상이 걸린것이다.
통역을 대동한 발품을 팔며 조금이라도 싼곳이 있나 수일 헛고생을 한후
자재가의 손실분에 대한 대안이 없어 결국은 일부 자재를 한국및 외국에서 수입키로 하였다.
다행히 100%면세이다 보니 조금은 손실을 막을 방법을 찾은것이다.
도대체 중국의 자재비가 왜그리도 비쌌는지 당시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후 그렇게 비싼 이유를 알고는 쓴웃음이 나왔다.
손실을 감안하고 구매해야할 장비 및 자재와 수입자재의 구분을 짓고나니
어느정도 원가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었다.
자재에서는 약간의 손실을 보았지만 아직도 공사비와 경비에 여유가 조금있어 실망할 단계는 아니였다.
그렇지만 냉온 열원장비 및 압력탱크류에 대한 조사가 없어 이 또한 시장조사가 시급했다.
장비에 대한 시장조사는 먼저 시공업자와 계약한 후에 하기로 잠정결정하였다.
본격적으로 시공을 담당할 현지 업체와 계약할 시간이 다가왔다.승패는 여기에 달렸다.
하지만 이런우리의 바램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다른 함정이 숨어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현지법에 의해서 소방공사는 그들이 지정하는 업체와 계약을 체결해야만
하였다.입찰을 하여 최저가로 업체를 선정한다는 당초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상하이에서 왕성한 수주활동을 하고있는 "웨이황"이라는 홍콩업체와 공사금액을 두고
밀고 당기기를 한달여 동안 하였다.
깍아야 만 살수있는 업체,한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업체의 보이지 않는 싸움은 거의 전쟁에 가까웠다.
현지소방국과 커넥션(Connection)이 되어있는 업체로써는 먹기좋은 떡이 바로 우리들 이었다.
울며겨자먹기로 당사가 수주한 금액에 더 붙여서 계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말그대로 죽쑤어서 개준다고..이런결정을 해야했던 이유는
더 이상 버텨나갈 시간이 촉박하였기 때문이었다.계약된 공기가 넉넉하질않았었다.
동사장(회장)이 우람한 몸매를 흔들며 승리의미소를 띠우고 나타나면 그 뒤로 그녀가 마실 차(茶)병을
들고 한걸음뒤에서 따라오는 그녀의 남편이 보였다.부인은 회장이고 남편은 기사겸조수다.
한달내내 내고(Nego)작업을 할때도 한번도 보이질 않던 그녀…승리가 확정되자 나타난것이다.
그들의 영업사원은 전부 여자였었다.특히 싱윈을 담당한 "우빈"이란 여자아이는 19살이었었다.
그녀의 수많은 술자리요청도 마다하고 한푼이라도 더 깍아보려 했던 시간들이 너무나 아쉬어졌다.
결국은 목표도 달성못하고 시간만 낭비한 꼴이 되어버린것이다.
이제는 2전2패다.하지만 아직 하나의 공정이 남아있었다.HVAC(공기조화)시공업체를 찾는일이다.
이곳에서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땐 정말 심각해진다.가장 금액이 큰부분이기 때문이다.
다행이 이업종은 소방국이나 전력국의 간섭을 받지않는다고 한다. 처음으로 안심이 되었다.
북경의 중건1국과 강소성의 장자강지역 업체에게 공개입찰을 하였다.
두업체가 제시한 입찰금액을 비교해 보고 또한 두업체의 시공능력을 평가한 후
장자강 안장공사로 최종 결론을 보았다.(아직도 이업체는 싱윈과 관계를 맺고있다)
생각보다는 만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앞서의 손실은 어느정도 막아주는 결과를 얻었다고 자평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함을 나중에 알게된다. 경험이 스승이란 말이 정말 실감나는 중국건설시장이었다.
어찌 되었던 간에 일을 시작할 수있는 모든 준비가 된것이다.
중국상하이 땅을 밟은지 딱 3개월하고도 보름이 지난후의 일이다.